‹ 목록으로 스타님, 오늘 밤 처형입니다

1화

편의점 형광등이 유난히 밝은 밤이었다. "이봐, 이거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야?" 남자가 삼각김밥을 계산대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바코드를 확인했다. "오늘 오전까지입니다. 아직 유효합니다." "뭐? 지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야, F급이 사람 무시하는 거야?" 남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계산대 옆 명찰에 붙은 작은 등급 배지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F. 최하위 등급. 사람들은 그 배지 하나로 나를 판단했다. 능력 없는 인간, 게이트 하나 제대로 못 뚫는 낙오자. "확인해 드릴까요?" 나는 침착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제품 정보를 띄웠다. 남자는 코웃음을 치더니 김밥을 도로 집어 들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짜증스럽게 울렸다. 딸랑. 이런 일은 하루에 한 번꼴로 있었다. 처음엔 억울했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소음처럼 들렸다.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였다. 등급이라는 게 그런 거였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F급이 뭐라 하면 그저 F급의 발언으로 취급됐다. 계산대 아래 놓인 CCTV 모니터에 내 얼굴이 작게 비쳤다. 무표정한 얼굴.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저 얼굴 뒤에 뭐가 숨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다. 100년 전, 서울 한복판에 처음 게이트가 열렸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힘을 얻어 나왔다. 등급이 매겨졌고, 세상의 위계가 새로 짜였다. S급은 신처럼 떠받들어졌고, F급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취급받았다. 나는 그 밑바닥에 있었다. 한때는 나도 다른 꿈을 꿨다. 열일곱, 첫 게이트 각성 테스트를 받던 날. 커다란 홀 안에 수백 명의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고, 차례가 되면 측정기 위에 손을 얹었다. 내 앞에 선 아이는 B급이 나와서 주변이 들썩였다. 부모들이 환호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측정기는 별다른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숫자를 뱉었다. 시험관은 내 수치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F급. 다음." 간단했다. 그 한마디로 내 미래가 결정됐다. 줄 서 있던 다른 아이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길드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서류를 넣어본 적도 있었다. 반려 통보서는 늘 같은 문구였다. "귀하의 등급으로는 본 길드의 최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런 서류를 더 이상 넣지 않았다. *** 야간 근무가 끝난 건 새벽 여섯 시였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반지하 방으로 돌아왔다. 창문 하나가 겨우 사람 얼굴만큼 뚫려 있는 방. 그 창으로 새벽빛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지하철 안은 늘 비슷한 얼굴들로 채워졌다. 야간 근무를 마친 사람들, 새벽 배송을 나가는 사람들. 다들 등급증을 목에 걸고 있지 않았다. 등급증은 필요할 때만 꺼내면 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습관처럼 주머니 속 등급증을 만졌다. F. 손끝에 닿는 그 글자가 유난히 차가웠다. 가족은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아홉 살 때 게이트 붕괴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날의 뉴스 화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붕괴 현장을 비추던 헬리캠, 붉은 경고등, 구조대의 다급한 목소리. 화면 속에는 부모님의 얼굴이 없었다. 그저 숫자로만 존재했다. 사망자 열두 명 중 두 명. 그날 이후로 나는 보육원에서 자랐고, 열아홉이 되던 해 그곳에서 나왔다. 도와줄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보육원 원장님은 마지막 날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살아. 그냥 살아있기만 해도 잘하는 거야."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살아있기만 해도 잘하는 거라는 말. 위로인지 포기인지 아직도 헷갈렸다. 외롭다는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는 것과 아무렇지 않다는 건 다른 얘기였지만. 씻고 침대에 눕기 전, 나는 방구석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몇 가지 잡동사니와 함께 낡은 등급증 하나가 들어 있었다. F급 모험자 등록증. 사진 속 얼굴은 지금보다 조금 어렸다. 표정도 지금보다 조금 더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 밤이 깊으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됐다. 서울 외곽, 폐쇄된 낡은 게이트 하나가 있었다. 3년 전 등급 판정 이후 방치된 곳. 길드도, 경찰청도 관심 없는 버려진 구멍. 주변엔 녹슨 펜스가 둘러져 있었고,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반쯤 떼어진 채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그곳에 몰래 드나들었다. 일반 모험자는 자신의 등급에 맞는 게이트만 입장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등급을 인식해 강제로 튕겨 냈다. 등급이 맞지 않으면 게이트 경계에 손을 대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시스템이 정한 규칙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떤 게이트든, 어떤 등급이든, 나는 그 문을 힘으로 뜯어 열 수 있었다. 게이트 강제진입. 그게 내가 가진 진짜 능력의 이름이었다. 몸에서 검은 안개 같은 기운이 흘러나와 게이트의 경계를 짓씹었다. 우우웅ㅡ 경계면이 일그러지며 균열이 생겼다. 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 시스템의 거부 반응이 살갗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처음엔 그 통증이 무서웠다. 이제는 익숙한 통과의례였다. 그렇게 억지로 밀고 들어가면, 등급 제한 따위는 무의미해졌다. 안에서 나는 혼자 싸우고, 혼자 배웠다.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익힌 것들이었다. 은밀화—몸을 완전히 지워 시야에서 사라지는 능력. 처음 이 능력을 깨달았을 때, 나는 게이트 안 몬스터의 눈앞에서 그대로 사라졌다. 몬스터가 어리둥절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리고 독침 투척—손끝에서 마나를 압축해 독성 침을 만들어 던지는 능력. 처음 몇 번은 마나 조절에 실패해서 손가락 끝이 며칠 동안 얼얼했다. 둘 다 F급이 가질 수 없는 힘이었다. 왜 이런 능력을 가졌는지는 나도 몰랐다. 각성 테스트 때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인터넷을 뒤져봐도 비슷한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등급과 실제 능력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괴담처럼 떠돌긴 했지만, 확실한 증거를 본 적은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세상에 이 사실을 알리는 순간, 나는 사냥당할 거였다. 등급을 속인 자, 시스템의 균열을 이용하는 자. 길드도, 국가기관도, 어쩌면 다른 F급들조차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낙오자들 사이에도 위계가 있었고, 그 위계를 흔드는 존재는 누구에게도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숨겼다. F급으로, 편의점 알바생으로. *** 그날 밤도 나는 게이트 안에서 세 시간을 보냈다. 3층 규모의 던전이었고, 낮은 등급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는 곳이었다. 은밀화를 쓰며 몬스터들 사이를 지나다녔고, 필요할 때만 독침을 날려 처리했다. 촤악ㅡ! 마지막 몬스터가 녹아내리듯 스러졌다. 마나 코어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런 코어들은 암시장에 팔면 생활비에 조금 도움이 됐다. 나오는 길에 스마트폰을 확인했는데, 낯선 번호로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 표시 없음. 손끝이 저절로 멈췄다. [신도현. S급, 랭킹 12위. 표면상 국민적 인플루언서. 실제로는 스태프 폭행, 성적학대, 금품갈취를 반복해 온 인간입니다. 증거 자료 첨부. 처리 보상 300만 원.] 메시지 아래로 파일 하나가 첨부돼 있었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신도현이라는 이름은 나도 알고 있었다. 방송에 자주 나오는 얼굴이었다. 밝은 미소, 선한 이미지. 팬클럽 규모도 상당했다. 그런 사람이 저런 짓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앞뒤가 뒤틀려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누가 보낸 건지,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무엇보다도—왜 나에게 이런 걸 보냈는지. 답을 알 수 없었다. 혹시 이게 함정은 아닐까. 내 능력을 눈치챈 누군가가 나를 시험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단순한 스팸이거나, 장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처리'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다. 처리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메시지를 받은 게 처음이 아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몇 달 전, 비슷한 형식의 메시지가 딱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무시했다. 삭제하고 잊었다. 별일 없이 지나갔다. 이번엔 왜 손이 멈추지 않는 걸까. 나는 첨부된 파일을 눌렀다. 로딩 화면이 잠깐 이어지다가,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어두운 조명 아래, 신도현의 얼굴이 선명하게 잡혔다. 화면 속 그는 방송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 목소리에는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영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몇 초 안에 담긴 내용은, 메시지에 적혀 있던 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화면을 끄고, 나는 잠시 어두운 골목길에 서 있었다. 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이미 파일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메시지 하나가, 곧이어 도착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