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문을 열었다.
경첩이 미끄러지듯 돌아갔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은밀화 상태에서는 발소리조차 죽는다.
대기실 안, 신도현은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은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만 보던 얼굴이었다. 방송용 조끼를 입은 스태프 한 명이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스태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거, 스케줄 표가 또 바뀌었는데—"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신도현이 휴대폰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때 문 쪽에서 바람이 스쳤는지, 그가 미간을 좁혔다.
"거기 누구야?"
신도현이 문 쪽을 향해 짜증스럽게 물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은밀화 상태였으니 그가 나를 볼 리는 없었다. 착각이었을 뿐이다. 감각이 예민한 모험자들 중에는 은밀화의 미세한 마나 흔들림까지 느끼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다. 신도현도 그런 부류인가.
스태프가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다가, 이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떨궜다.
"됐고, 넌 나가."
신도현이 손을 휘저었다. 스태프가 서둘러 방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쿵.
둘만 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와 나, 둘만.
발밑의 카펫이 두툼했다. 발소리를 죽이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나는 벽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소파 뒤편으로, 그의 등 뒤로.
숨을 죽였다. 은밀화를 유지하는 마나가 조금씩 소모되는 감각이 배 속에서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손끝에 마나를 모았다. 압축된 독성 마나가 바늘 형태로 뭉치는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차갑고, 동시에 뜨거운 감각이었다. 마나가 응축되며 손끝이 저릿했다.
'실수하면 끝이다.'
머릿속에서 짧은 문장이 스쳤다. 신도현은 나름대로 실력 있는 모험자였다. 반응이 빠르다면, 침이 박히기 전에 눈치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시선은 온전히 휴대폰 화면에 고정돼 있었다.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독침 투척.
촤악ㅡ!
작은 침 하나가 신도현의 목덜미에 박혔다. 그는 순간 멈칫하더니, 목을 만지며 뒤를 돌아봤다.
"뭐야, 방금 뭐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기울었다. 독은 빠르게 퍼졌다.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종류였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손가락이 허공을 몇 번 허우적거렸다.
쿠웅ㅡ.
신도현이 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부릅뜬 채, 입에서 거품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를 내려다봤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감각뿐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손이 여전히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화면이 켜진 채였다. 방금까지 그가 뭘 보고 있었는지,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
그때, 대기실 벽에 붙은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생방송 송출 모니터였다.
작은 보조 카메라 하나가 대기실 구석에 설치돼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촬영 장비를 미리 확인했었는데, 저 각도는 사각이라고 판단했었다. 판단이 틀렸다.
화면 하단에 붉은 글자가 떠 있었다.
LIVE. 시청자 3,200,000명.
숨이 턱 막혔다.
실시간으로 이 장면이 그대로 전 세계에 송출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신도현이 소파에서 일어나 목을 만지고,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모습부터 쓰러지는 순간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화면 아래로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뭐야 방금??]
[신도현 왜 저래]
[장난하는 거 아니지??]
[관리자님 이거 진짜예요??]
미쳤다, 이 타이밍에.
은밀화 상태였으니 화면에 내 모습은 잡히지 않았을 거였다. 카메라는 마나 흔적을 잡아낼 정밀도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신도현이 쓰러지는 장면은, 그가 목을 만지며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부터 고스란히 잡혔을 것이다.
손끝이 떨렸다.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나는 문을 향해 뛰었다.
문틈으로 복도를 살폈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스태프들이 대기실 소식을 듣고 몰려오기까지 몇 분의 여유가 있을 터였다. 그 몇 분이 전부였다.
***
계단을 오르는 도중, 몸이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은밀화를 이십 분 가까이 유지한 탓이었다. 마나가 다리를 타고 흘러나가는 느낌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비틀.
계단 모서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겨우 벽을 짚고 버텼다. 손바닥이 벽에 부딪히며 얼얼한 통증이 올라왔다.
숨이 가빠졌다. 시야가 흔들렸다. 눈앞이 잠깐 하얘졌다가 다시 초점이 돌아왔다.
'조금만 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기서 쓰러지면 전부 끝이었다.
뒤편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급실! 응급실 불러!"
"저 안에 아무도 없었는데 왜—"
"카메라 봤어? 갑자기 목을 만지더니 쓰러졌어!"
"모니터실에 연락해! 방송 끊어야 돼!"
혼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발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뒤엉켰다. 누군가는 뛰어오고, 누군가는 소리쳐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다시 배관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통로는 좁고 어두웠다. 몸을 웅크린 채로 기어야 했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좁은 통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은밀화가 서서히 풀리는 게 느껴졌다.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몸의 윤곽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감각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골목 한복판에서 형체가 드러났을 거였다.
'제발.'
속으로 빌었다. 마나가 완전히 끊기는 그 순간이 두려웠다.
***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나왔을 때, 마나가 완전히 사라지는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은밀화가 풀렸다. 나는 후드를 최대한 눌러쓰고 마스크를 다시 고쳐 썼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몸을 섞었다.
거리는 이미 소란스러웠다. 거리 곳곳의 전자 광고판에 뉴스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속보: 인기 모험자 신도현, 생방송 도중 의식불명]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올려다봤다.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더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뭐야, 방금 죽은 거야?"
"누가 그랬다는 거야? 아무도 없었다며?"
"저거 생방인데? 소름 돋는다 진짜."
"신도현 팬인데 어떡해, 병원 어디로 갔대?"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이 귓가를 스쳤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 사이를 지나쳤다. 마스크 안으로 숨이 뜨겁게 부딪혔다.
심장이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끝이 후들거렸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다리가 자꾸 풀리려 했다.
일은 끝났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방송이었다.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어도, 소리는 남았을 거였다. 침이 박히는 순간의 미세한 소음, 그의 대사, 쓰러지는 소리까지. 그 짧은 순간의 음향까지도 누군가는 캡처해 뒀을 것이다.
누군가는 분석할 거였다.
전문가들이 나설 거였다. 소리의 패턴을, 침입 경로를, 사각지대의 흔적을. 그리고 그 끝에 나라는 존재가 걸릴지도 몰랐다.
'괜찮아. 은밀화였어. 흔적은 없어.'
스스로에게 되풀이해 말했다. 그런데도 심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손등에 남은 미세한 상처 하나를 발견했다. 통로를 빠져나올 때 배관에 긁힌 자국이었다.
별거 아닌 상처였다.
핏기도 거의 없는, 아주 얕은 생채기였다.
하지만 왠지 그게 자꾸 눈에 밟혔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만이 낯설게 느껴졌다. 손등의 상처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되풀이했다.
혹시 그 통로에, 내가 놓친 게 또 있었던 건 아닐까.
카메라가 하나였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 대기실에 다른 감시 장치가 더 있었을지도 몰랐다. 사각이라 믿었던 자리가 틀렸던 것처럼, 또 다른 착각이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다음 역으로 향했다. 승객들 몇몇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여전히 속보 알림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터널이 스쳐 지나갔다.
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끝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