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스타님, 오늘 밤 처형입니다

2화

첨부된 파일을 열자, 화면 가득 영상 목록이 떴다. 파일 개수만 스무 개가 넘었다. 제목도 없이 날짜만 적혀 있는 파일들.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첫 번째 영상 위에 올렸다. 손이 살짝 떨렸다. '왜 나한테 이런 걸 보내는 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파일은 내려받아졌고, 나는 그걸 지울 생각이 없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어두운 촬영 현장이 화면을 채웠다. 조명이 반쯤만 켜진 세트장, 그 구석에서 신도현이 스태프의 뒷목을 붙잡고 벽에 밀어붙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다시 찍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데, 방송에서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팬미팅에서 웃으며 손 흔들던 그 톤이 아니었다. 짝. 손바닥이 여자의 얼굴을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화면 너머로도 보였다. 나는 숨을 삼켰다. 다음 영상. 다음 영상. 다음 영상.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폭행, 협박, 금품 요구. 어떤 영상에서는 신도현이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에게 봉투를 건네며 웃었다. "이번에도 잘 처리해줘." 그 말투가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 파일에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의 진술서 사본이 첨부돼 있었다. [신고했지만 소속사와 길드가 사건을 덮었습니다. 저는 계약 위반으로 오히려 위약금을 물었습니다.] 짧은 문장 하나가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진술서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글자들이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신도현은 화면 밖에서는 3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스타였다. 유튜브를 켜면 항상 웃는 얼굴로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웃음 뒤에 이런 게 있었다는 걸, 세상은 몰랐다. 알아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을 거였다. S급이었으니까. S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나는 알고 있었다. 길드에서 그 등급을 가진 사람은 거의 신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경찰도, 방송국도, 그 어떤 기관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존재. 그런 사람을, 내가. *** 나는 밤새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몇 번이고. 화가 나서가 아니라, 확신을 얻고 싶어서였다. 혹시 조작된 영상이 아닐까 싶어서 화질을 확대해 보고, 음성의 떨림까지 들어봤다. 편집의 흔적은 없었다. 시간대도, 배경도 일관됐다. 이게 진짜라면. 이게 사실이라면. 법이, 길드가, 경찰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이 인간을 내가 건드려도 되는 걸까. '가능할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이상하게도 쉽게 나왔다.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해야 했다. 새벽 세 시. 창밖은 조용했고, 나는 노트북 화면 앞에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방 안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거렸다. '내가 지금 이걸 결심한다고 해서, 정말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 다음 날 밤, 나는 신도현의 스케줄을 조사했다. 첨부 파일에는 그가 이틀 뒤 생방송으로 팬미팅을 진행할 거라는 정보까지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 실시간 시청자 수백만 명이 예상되는 대형 방송. 포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넣자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신도현, 이틀 후 대형 팬미팅 예고] [기대되는 신도현의 신곡 발표] 댓글창에는 하트 이모지가 도배되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생방송 중에 하라는 뜻인가.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방송 중 그의 대기실 접근이 가능합니다. 09:00PM, 지하 3층 B구역.] 구체적이었다.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마치 이미 그 장소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발신자가 누구인지, 왜 이런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걸 캐물을 시간이 없었다. *** 이틀 동안 나는 스튜디오 주변을 세 번 돌았다. 편의점 근무가 없는 낮 시간을 이용해서였다. 첫날은 스튜디오 정문 근처를 훑었다. 경비 인력이 셋, 출입 카드 리더기가 두 개. 두 번째로 갔을 때는 건물 측면 배관 위치를 확인했다. 세 번째는 실제로 그 배관을 타고 올라가는 척 걸음을 옮기며 발판의 강도를 손으로 눌러봤다. 지하 3층 B구역—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카메라가 곳곳에 있었지만, 은밀화 상태로 움직이면 문제없었다. 다만 문제는 있었다. 은밀화는 오래 유지할수록 마나를 빠르게 소모했다. 게이트 안에서 시험해 본 최장 시간은 이십 분 정도. 그 이후로는 몸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마나가 바닥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그 상태로 발각되는 게 최악의 경우였다. 계획 시간을 짜야 했다. 입장, 접근, 처리, 도주. 전체 과정을 십오 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동선을 그려봤다. 배관을 타고 내려가는 데 삼 분, 지하 계단에서 경비를 피하는 데 이 분, B구역까지 이동하는 데 삼 분. 남는 시간은 칠 분. 그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칠 분이면 충분할까.'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계획은 없었다. *** 방송 당일, 나는 평소처럼 편의점 근무를 마치고 곧장 강남으로 이동했다. 유니폼 위에 후드를 걸치고,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신도현의 팬미팅 예고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옆자리 여학생 둘이 소리를 죽이며 꺅꺅거렸다. "오늘 실시간 시청자 백만 넘는대." "나도 라이브 볼 거야."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지하철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스튜디오 뒷골목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며 골목을 비췄다. 쓰레기통 옆에 서서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건물 뒤편 배관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사전에 확인해 둔 길이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차가웠다.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08시 47분. 예정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배관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은밀화. 나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고, 내 몸은 주변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옆을 지나가던 경비원이 나를 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다. 됐다. 배관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손끝에 쇠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발밑으로 미끄러질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벽을 짚고 균형을 잡았다. 지하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벽을 짚고 한 발씩. 저벅저벅. 앞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벽에 몸을 붙이고 멈췄다. 경비원 하나가 손전등을 든 채 지나갔다. 불빛이 내 발끝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숨을 죽인 채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B구역 표지판이 눈앞에 보였다. 그 안, 대기실 문 너머로 익숙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신도현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건 아까 말했잖아. 다시 촬영하라니까?" 문 너머로 여자의 겁먹은 대답이 들렸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08시 59분. 은밀화를 유지한 지 이미 십이 분이 지나 있었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지금이었다. 문고리에 손을 얹는 순간, 나는 이 밤이 끝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문 안쪽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나는 문고리를 천천히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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