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협회 차량이 골목 앞에 멈춰 서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저 문이 열리면 뭐가 나올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은 정장을 입은 여자 하나였는데, 걸음걸이부터 뭔가 훈련받은 듯 절도가 있었고, 명찰에는 '헌터관리국 특수사안팀 박서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위험물 취급하듯 조심스러웠는데, 그 조심스러움이 묘하게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폭탄 처리반이 폭탄을 보는 눈빛 같았다.
"강태현 씨 맞으시죠."
"네."
"저희랑 잠깐 이야기 좀 나누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존댓말이 아주 예의 발랐지만, 나는 저 여자 손에 이미 진압용 마나 수갑이 들려 있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
하-, 이 씨발. 예의는 예의고 손에 든 건 또 저건 뭐냐.
협회 특수사안팀은 미등록 초각성체나 규정 외 전투력 노출 사건을 전담 처리하는 부서다. 일반 헌터관리국 소속이지만 권한은 훨씬 넓어서, 필요시 즉시 신병 확보와 격리 조사가 가능하고, 사안이 심각하면 국가안전처로 이송할 수도 있다. 이론상으로는 인권 보호 절차가 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절차가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는 순순히 따라갔다.
어차피 도망친다고 될 일도 아니었고, 여기서 또 뭔가를 저지르면 지은이랑 태민이한테까지 불똥이 튈 게 뻔했으니까. 애초에 도망칠 이유도 없었다. 나는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진압봉을 튕겨낸 죄, 그거 하나였다.
협회 건물로 들어서는 길에, 나는 로비에 서 있는 각종 홍보 배너들을 슬쩍 훑어봤다. '안전한 헌터 생태계를 위한 협회의 약속', '미등록 각성자, 지금 바로 신고하세요' 같은 문구들이 형광색으로 번쩍였다. 그 배너들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거 다 눈속임이지 뭐. 신고하면 좋은 대우 받을 것처럼 써놨는데, 실상은 저 조사실 벽에 마나 차단재나 발라놓고 사람 겁주는 거잖아.
조사실은 특이하게 생겼는데, 벽면 전체가 마나 차단재로 발려 있어서 방 안에 있으면 몸에서 마나가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목욕탕에서 온수 빠지듯 서서히, 근질근질하게 몸속 마나가 빨려나가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딱히 아프거나 힘든 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더러웠다. 남의 집 안방에서 옷 벗겨진 채로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
"영상은 이미 확보했습니다."
박서인이 태블릿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화면에는 아까 그 스튜디오 CCTV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진압봉을 튕겨내는 그 장면에서 화면이 멈춰 있었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 진압봉이 내 손끝에 닿는 순간의 각도와, 그게 튕겨나가며 그리는 궤적까지 친절하게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주 꼼꼼하게 분석해놨네. 이럴 시간에 다른 급한 사건이나 처리하지.
"이 정도 물리력이면, 최소 A급 이상의 반응속도와 근력을 갖고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요."
"모르겠는데요."
"각성 검사는 받아보신 적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각성 검사는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지만, 검사받으러 갈 시간도 아꼈던 게 나였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에, 각성 검사 받겠다고 반나절을 협회 건물에서 대기표 뽑고 앉아 있을 여유가 어디 있었겠나. 그딴 거 받아봤자 등급 나오면 뭐, 최하급이라고 도장 찍히고 끝날 텐데.
박서인이 잠시 서류를 뒤적이더니 미간을 좁혔다. 그 표정이 진짜로 골치 아파하는 표정이었다는 게, 이게 저 여자한테도 흔한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런 케이스는 저희 팀에서도 흔하지 않아요. 무등록 상태에서 갑자기 A급 이상 전투력이 노출된 경우, 대부분 두 가지로 처리됩니다. 첫째, 국가안전처로 신병 인계, 둘째, 협회 정식 편입 후 감시하 활동."
"둘 다 별로인 것 같은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서인이 뜻밖에 순순히 인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꽤 진심처럼 들려서, 나는 잠깐 이 여자를 다시 봤다. 겉으로는 사무적인데, 속으로는 나름 사람 취급을 해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연기가 뛰어난 걸 수도 있고. 하-,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 사실 지금 이 사건, 저희만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 황금기사단 쪽도 이미 자체 방송 영상을 백업받았을 거고, 그쪽 로펌이랑 방송사가 이걸 어떻게 써먹을지 계산 중일 거예요."
"저를 미등록 위험인물로 몰아서요?"
"아니면, 자기 길드 스카웃 대상으로 포장해서요."
박서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이 상황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지훈 입장에서는, 나를 위험인물로 몰아 책임을 피하는 것보다, 아예 자기 길드 소속으로 포섭해서 '숨은 인재 발견'이라는 그림으로 방송을 뽑는 게 더 이득이었다. 시청률이니 화제성이니 다 챙길 수 있고, 자기가 던진 진압봉이 튕겨나간 그 굴욕적인 순간도 '내가 진짜 실력자를 알아본 사람'이라는 서사로 덧칠할 수 있었다.
반대로 협회 입장에서는, 미등록 초각성체가 대형 길드에 흡수되는 게 관리상 골칫거리였다. 통제 안 되는 힘이 대형 길드 산하로 들어가버리면, 그 힘의 방향이 협회 손을 완전히 떠나는 셈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나 하나를 두고 협회와 황금기사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줄 끝에 매달린 깡통 신세였고.
"제안 하나 드릴까요."
박서인이 태블릿을 덮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그 눈빛에서 나는 이 여자가 위에서 시켜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생각으로 이러는 거라는 걸 느꼈다.
"신분을 재정비하시는 겁니다."
"재정비요?"
"강태현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사건 기록을 잠시 봉인하고, 새로운 등록증으로 처음부터 헌터 자격을 취득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사건은 '미등록 상태에서의 우발적 사고'로 종결 처리하고, 새 신분에서는 정식 자격시험을 거쳐 등급을 받게 됩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저희 팀 권한으로는 어렵지만, 저희 팀장님이 이런 케이스를 몇 번 처리해본 경험이 있으세요. 다만."
박서인이 잠시 말을 끌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새 등록 후에는 최하급 등급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특혜성 등급 부여는 절대 안 됩니다. 형식상 완전히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시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최하급.
하-, 이게 무슨 개그야.
방금 A급 이상 전투력을 보여준 놈한테 다시 E급부터 시작하라고? 이게 무슨 국가대표 선수한테 초등학교 운동회 참가시키는 소리야. 이럴 거면 처음부터 봉인 얘기를 왜 꺼낸 건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오히려 나한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밑바닥에서 시작하면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을 것이고, 조용히 등급을 올리면서 지은이랑 태민이 부양할 자금도 벌 수 있을 거고, 무엇보다 이 골치 아픈 협회니 황금기사단이니 하는 시선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었다. 남들 눈에는 다시 시작하는 초짜 헌터로 보이겠지만, 나야 뭐, 이미 다 해본 놈이니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밑바닥에서 다시 기어오르는 것쯤이야 나한테는 산책 수준이었다.
"하겠습니다."
"결정 빠르시네요."
"어차피 지금 이름으로 계속 활동해도 좋을 게 없잖아요."
박서인이 그 말에 살짝 웃었는데, 그게 처음으로 본 그 여자의 사람다운 표정이었다. 여태까지는 사무적인 표정만 짓고 있었는데, 저렇게 웃으니까 나이도 훨씬 어려 보이고 사람 냄새가 났다.
"그럼 새 이름 정하셔야 하는데, 혹시 생각해두신 거 있으세요?"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문득 게임 시절 부캐로 썼던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그 부캐로 별의별 서버를 돌면서 별의별 진상들을 상대했었는데, 그 이름 하나는 꽤 마음에 들었었다.
"강도현으로 하겠습니다."
"강도현."
박서인이 서류에 그 이름을 적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강도현 씨, 그럼 일주일 뒤에 헌터 자격시험 접수하시고, 시험장에서 뵙겠습니다."
"일주일이면 시간이 좀 빠듯하지 않습니까?"
"자격시험은 매주 열려요. 접수만 하시면 바로 응시 가능하세요. 필기는 형식적인 거고, 실기가 중요한데, 강도현 씨한테는 그것도 형식적이겠죠."
박서인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살짝 웃었다. 이 여자, 은근히 사람을 놀리는 재주가 있네.
그렇게 나는 강태현이라는 이름을 잠시 서류 밑에 묻어두고, 강도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서류에 서명을 하는 손끝이 묘하게 저렸다. 이름 하나 바꾸는 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펜을 쥐고 낯선 이름을 적어 넣으려니 손이 좀 굳었다. 강태현으로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이제부터는 강도현으로 살아야 한다니.
하지만 뭐,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조사실을 나오는 길에, 나는 복도 끝에서 낯익은 얼굴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잠깐 걸음을 멈췄다.
오지훈이었다.
그 자식은 복도 벽에 기대선 채 팔짱을 끼고 나를 빤히 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에서 나는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계산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스튜디오에서 봤던 그 오만한 표정은 사라지고, 대신 뭔가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한, 혹은 이득을 계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옆에는 정장 입은 남자 둘이 서 있었는데, 딱 봐도 매니저나 로펌 직원 같았고, 그중 한 명은 손에 태블릿을 들고 뭔가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강태현 씨."
지훈이가 낮게 불렀는데, 나는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쳐 걸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 이름 이제 나 아닌데, 어쩌라고. 부르고 싶으면 강도현이라고 불러봐라 이 자식아.
"오늘 일, 나는 안 잊을 겁니다."
등 뒤에서 그렇게 던져진 말이, 왠지 협박이 아니라 다짐처럼 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지만, 등 뒤에 꽂히는 그 시선만큼은 계속 느껴졌다. 저 자식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던진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오지훈이라는 인간이 이 일을 그냥 넘길 성격은 아니라는 것이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마주치게 될 거라는 예감만큼은 지워지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 사이에 이름이 바뀌고, 신분이 바뀌고, 등급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는데, 정작 내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는 건 그 복도 끝에서 나를 쳐다보던 오지훈의 눈빛이었다.
그게 왜 그렇게 신경 쓰였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