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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함은 반드시 큰 사건에만 적용되는 이치가 아니었으니, 작은 손짓 하나에도 그 이치는 어김없이 작동하는 법이었다. *인과응보: 원인에 따라 결과가 따라온다는 뜻 서울의 무림맹, 아니 헌터협회라는 곳에서 본좌를 내쳤을 때만 해도, 이 몸은 그저 세상의 야박함을 탓하며 낙향할 뿐이었다. 하나 하늘의 이치란 참으로 공평무사(公平無私)*하여, 버려진 자리에는 반드시 새로운 인연이 싹트는 법이었다. *공평무사: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음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 마당에는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산골의 밤은 서울의 밤과 달랐다. 가로등 하나 없이도 어둠이 두렵지 않았고, 벌레 우는 소리가 요란한데도 그것이 소란스럽다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 손길이 하루 이틀의 습관이 아님을, 본좌는 단박에 알아보았다. "아버지, 잠시 이리로 오시지요." "뭐 하려고 그러냐." "손 좀 대볼까 합니다." "됐다, 됐어. 그런 거 안 해도 돼." 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이 마치 침 맞기 싫어하는 어린아이 같았으나, 본좌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낯설지 않았다. 원래 이 땅의 어른들이란 자식의 손길을 쉽게 받지 않는 법이었으니, 이는 무뚝뚝함이 아니라 일종의 겸양(謙讓)*이었다. *겸양: 겸손하게 사양함 "가만있어봐, 아들이 뭐 해준대잖아." 어머니가 옆에서 눈을 흘겼다. 그 눈빛 한 번에 아버지의 저항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참으로 안방의 권력이란 무림 최강의 검법보다 위력적이로다, 본좌는 속으로 감탄했다. 결국 아버지가 마루에 앉았고, 본좌는 그 뒤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손바닥을 어깨 위에 올리자, 익숙한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퍼져 나왔다. 이 온기는 서울에서도 지녔던 것이었으나, 그곳에서는 언제나 화려한 이펙트에 가려져 정작 이 손끝의 감각을 느껴볼 여유조차 없었다. [치유술 발동. 대상: 이재훈.] [만성 손상 감지. 회복 진행 중.] [초당 30HP 회복.] 본좌는 눈을 감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서울에서라면 이 정도 회복량은 '화면에 안 뜬다'는 이유로 조롱받았을 것이었다. 동료 헌터들은 화려한 빛기둥이 솟구치는 술사들에게만 환호했고, 본좌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치유는 눈요기가 안 된다며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하나 지금, 이곳에서는 그 조롱조차 없었다. 오직 아버지의 어깨와 본좌의 손, 그리고 흐르는 시간뿐이었다. 일 분, 이 분, 삼 분이 흘렀다. 풀벌레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어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거, 뭐지. 뭔가 시원한데." "움직여 보시지요." 아버지가 팔을 크게 돌렸다. 몇 년간 삐걱거리던 관절이, 마치 새 기름을 먹은 문틀처럼 부드럽게 돌아갔다. 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전에는 팔을 들 때마다 뚝, 뚝 소리가 났었다는데, 이제는 그 소리마저 사라진 것이었다. "이, 이게 뭔 일이여."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아버지는 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어깨를 붙잡았다 놓았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마치 새 신발을 신은 아이 같아, 본좌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치유 완료. 회복량 12,600.] [※ 첫 민간 치유 성공. 히든 조건 충족.] [보상 지급: 치유술 효율 +5%.] 본좌는 그 알림을 읽으며 눈을 크게 떴다. '허어.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서울에서는 아무리 술법을 부려도 이런 보상이 없었다. 협회 배치판, 즉 무림맹의 지령서에 올라와야만 보상이 지급되었고, 그 지령서에 오르지 못한 치유는 그저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었다. 하나 배치 시스템 밖에서, 순수하게 사람을 도왔을 때, 비로소 새로운 보상이 열린 것이었다. '하늘이 무심치 않도다. 낙향하여 오히려 새 길이 열리는구나.' 본좌는 자못 감격에 겨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유독 많았다. 서울에서는 미세먼지에 가려 보이지도 않던 별들이, 이곳에서는 마치 무리를 지어 은하수를 이루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기, 저것도 좀 해줘. 나 허리도 몇 년째 안 좋아."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안 무거워? 힘들면 나중에 해도 돼." "본좌에게 이 정도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조족지혈: 새 발의 피, 즉 매우 적은 양을 뜻함 "뭐라는 겨." 어머니가 자리에 앉자, 본좌는 다시 손을 올렸다. 이번엔 오랜 농사일로 굳은 허리였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아버지의 어깨와는 달랐다. 굽었다 펴지지 않는 뼈마디, 오랜 세월 쌓인 피로가 마치 돌덩이처럼 뭉쳐 있었다. [치유술 발동. 대상: 김명자.] [만성 손상 감지. 회복 진행 중.] 십여 분이 지나자, 어머니가 허리를 곧게 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러다 점차 크게, 마치 오랜만에 만난 몸을 확인하듯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고 펴기를 반복했다. "어이구야. 이게 몇 년 만이여. 허리가 이렇게 펴지는 게." 어머니는 마당 한가운데서 허리를 뒤로 젖히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랜 수련을 마친 무인이 몸을 푸는 것 같아, 본좌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가, 이내 손등으로 급히 훔쳐졌다. "울긴 왜 울어." 아버지가 옆에서 놀리듯 말했다. "누가 울었대!" 어머니가 버럭 소리쳤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보다, 뭘." "눈에 뭐가 들어가긴, 눈물이 들어가긴, 눈물이 들어갔지." "아, 조용히 좀 해!" 본좌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실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로다. 서울의 규칙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더냐.' *도가도비상도: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 즉 통용되는 규칙만이 진리가 아니라는 뜻으로 원용 부모의 웃음을 보며, 본좌는 오랜만에 가슴 깊은 곳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큰 던전을 클리어하고 아무리 많은 이를 살려도 이런 따뜻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등급으로 매겨지는 실력, 숫자로 환산되는 공헌도, 그 무엇도 지금 이 마당의 온기를 대신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마당 앞에 낯익은 얼굴이 자전거를 세우고 서 있었다. 삐걱거리는 체인 소리가 먼저 도착했고, 그 뒤를 따라 목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야, 이도현!" 윤소라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뒹굴며 자란 벗이었다. 그 시절 함께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고 뒷산을 오르내리던 기억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소라냐." "소라냐가 뭐야, 몇 년 만인데. 서울서 잘렸다는 얘기 들었어." "···벌써 그 소식이 퍼졌다는 것이냐." "동네가 좁잖아." 소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스탠드를 세우는 손짓이 무심할 만큼 익숙했다. "이장님이 어제 저녁에 벌써 다 말하고 다니셨어. 서울서 힐러 하다가 짐 싸서 내려온 이도현 아들이라고." "참으로 발이 빠른 소식이로다." "근데 너 아직도 힐러야?" "그러하다." "그럼 잘됐네." 소라가 손뼉을 마주쳤다. "우리 접골원 원장님이 요즘 손이 모자라서 사람 구하는데, 너 한번 와볼래?" 본좌는 잠시 고민했다. 접골원이라 함은 무엇인가, 지구 무림에서 흔히 보는 소규모 치료소, 즉 하급 의원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자, 마음이 이미 정해진 듯했다. "좋다. 가보리라." "오, 시원하게 대답하네." "본좌는 본래 결단이 빠른 자니라." 소라가 씩 웃었다. "기대는 하지 마. 원장님 성격 진짜 무뚝뚝해. 말 한마디도 안 붙이려고 해." "본좌가 그깟 노인네 성격 하나에 흔들릴 것 같으냐." "...아니, 뭐래." 소라가 헛웃음을 지으며 자전거에 다시 올라탔다. 페달을 밟기 전, 잠시 본좌를 돌아보았다.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니까. 진짜 무섭다니까 그러네." "흥, 걱정 마라." 소라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전거를 몰고 사라졌다. 본좌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서울에서는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졌던 이 몸. 하지만 이 작은 산골, 규칙 없는 이 땅에서라면. 본좌는 문득 예감했다. 접골원이라는 곳에서, 또 다른 굴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예감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본좌는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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