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던전 5층, 습기 찬 돌벽 사이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헤드셋 너머로 채팅창이 스크롤됐다.
[하늘님 오늘도 5층까지 오셨네요 ㅎㅇㅎㅇ]
[900명 언제 채워짐;;]
[돈 안 되는 방송 왜 계속함;;]
···알고 있다고, 나도.
수익화 승인 기준이 딱 1000명인데, 100명이 모자란 채로 벌써 석 달째였다.
편의점 삼각김밥이랑 컵라면으로 하루를 때우면서 던전에 들어오는 이유가 뭐겠어. 광고 하나만 붙어도 그날은 삼겹살이었다.
"오늘은 좀 다를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딱히 근거는 없었다.
이 대사도 벌써 스무 번째쯤 하는 것 같은데, 정작 다른 날은 한 번도 없었다.
횃불 하나 없는 던전 통로를 헬멧에 달린 조명등으로 밝히며 걸었다.
돌바닥에 스니커즈 밑창이 쩍쩍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등에는 카메라 짐벌, 허리에는 소검 한 자루.
장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프로토타입 마력 배터리가 벨트에 매달려 있었다.
이거, 중고로 3만 원 주고 산 물건이었다. 정가는 30만 원인데 액정에 실금이 갔다고 10분의 1 가격에 넘겨받았다. 배터리 용량은 절반쯤 됐으려나.
[탐색자 등록번호 22071번, 김하늘. 5층 몬스터 감지 없음.]
담담한 목소리가 헤드셋 안쪽에서 울렸다.
내 능력이라기보다는,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 들어와 상황을 알려주는 목소리였다.
존댓말을 쓰는 게 특징인데, 나는 얘를 그냥 '가이드'라고 불렀다.
"고마워, 가이드. 근데 5층까지 왔는데 몬스터 한 마리도 없으면 시청자들 다 나가겠다."
[방송 지속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니가 수익화 기준을 안 채워봐서 하는 말이고."
채팅창에서 몇 명이 ㅋㅋㅋ를 남겼다.
[가이드도 은근 츤데레네]
[하늘님 가이드한테 너무 갈굼]
적어도 나 혼자 떠드는 방송은 아니라는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십 분쯤 더 걸었을까.
던전 통로가 슬쩍 넓어지면서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은 아래로, 오른쪽은 평평하게 이어졌다.
"가이드, 이거 왼쪽 가면 6층으로 바로 뚫리는 거 아니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
[하늘 님 레벨로는 6층 진입이 무리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무리라고 딱 잘라서 말하면 내가 뭐가 돼."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오른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차피 가이드 말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공기가 바뀌었다.
온도가 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훅 끼쳤다.
썩은 고기 냄새와 비슷했는데, 그보다 훨씬 지독했다.
위장이 먼저 반응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침이 바짝바짝 말랐고, 목구멍 안쪽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어우, 뭐야 이 냄새."
채팅창에서도 반응이 왔다.
[헐 하늘님 표정 왜 저러심]
[방구 뀌셨어요?]
"아니거든, 시청자 여러분. 방금 그거 진짜 심각한 냄새였어요."
말은 가볍게 했지만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레귤러 개체 감지. 등급 산정 불가.】
건조한 시스템 알림이 시야 한쪽에 떠올랐다.
"등급 산정이 왜 안 되는데?"
혼잣말이었는데 가이드가 대답했다.
[5층에 있어서는 안 될 개체라는 뜻입니다.]
"있어서는 안 될 개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5층 몬스터 도감에 없는 애란 뜻이야?"
[정확히는, 이 층에 존재할 확률이 0에 가까운 개체입니다.]
"그럼 있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가이드,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로 끝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크기가 상상 이상이었다.
어깨 높이만 해도 내 키의 두 배는 됐다.
적색 털가죽 위로 비늘 같은 게 듬성듬성 박혀 있었고, 눈에서는 탁한 녹색 빛이 새어 나왔다.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이 하얗게 얼어붙었다가 흩어졌다.
크르르르르릉···
낮게 울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졌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저거 뭐야."
[특급 등급으로 추정됩니다. 개체명 '썩은 대늑대룡'.]
"특급? 여기 5층인데?"
[예. 최심부 몬스터로 알려진 개체가 왜 여기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 좀 그만해. 너 원래 다 아는 애 아니었어?"
[전지전능하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그럼 지금 그걸 말할 때가 아니라 도망치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도망치십시오.]
"타이밍 죽인다, 진짜."
대늑대룡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앙!
소리가 통로 전체를 흔들었다.
돌가루가 천장에서 후두둑 떨어졌다.
카메라 짐벌이 흔들리면서 화면이 위아래로 크게 튀었다.
채팅창이 폭주하는 게 보였다.
[헐 저거 뭐임]
[하늘님 뛰세요!!!]
[방송 끄고 튀어요 제발]
[저거 특급이면 나라에서 헌터 부대 보내야 하는 거 아님??]
[수익화보다 목숨이 중요하잖아요 제발]
수익화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상황에서도 그 생각이 드는 나도 참.
나는 몸을 돌려 뛰었다.
스니커즈가 돌바닥에 미끄러졌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 스니커즈 밑창이 이렇게 잘 미끄러지는 물건이었나. 다음에 살아 돌아가면 등산화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뒤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콰앙!
돌 파편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따끔한 통증이 늦게 도착했다.
"저게 왜 쫓아와,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냄새를 맡은 것 같습니다.]
"내 냄새가 그렇게 매력적이야?"
대답이 없었다.
가이드가 대답을 안 하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이 녀석은 꼭 이럴 때만 입을 다물었다. 좋은 소식일 땐 필요 이상으로 떠들면서.
통로를 세 번쯤 꺾어 달렸을 무렵, 다리 근육이 뻐근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목구멍 안쪽이 쇠맛이 났다.
이러다 몬스터한테 안 죽고 그냥 심장마비로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셋 한쪽에서 낯선 신호음이 울렸다.
삐이익.
【인근 구조 요청 신호 수신. 발신자 위치: 서쪽 100미터.】
"구조 요청? 누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확인할 시간이 어딨어, 지금!"
등 뒤에서 대늑대룡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발소리 하나하나가 땅을 울릴 정도로 무거웠다. 그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뼈까지 흔드는 느낌이었다.
지금 저 신호를 따라가는 게 맞는 선택인지, 판단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발은 이미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채팅창에서도 다급한 반응이 쏟아졌다.
[거기로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늘님 직진하세요 직진!!!]
[구조 요청이 함정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숨이 가빴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머릿속 한쪽에서는 그냥 반대쪽으로 뛰어야 한다는 계산이 선명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도 발은 말을 안 들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서쪽 통로 안쪽에서, 누군가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엔 훨씬 가까웠고, 훨씬 다급했다.
목소리의 높낮이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저건 이제 몇 초 안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가이드, 저거 사람 맞지?"
[생체 신호 확인 중입니다.]
"확인 중이라는 말 좀 그만하라니까!"
뒤에서 대늑대룡의 포효가 다시 한번 통로를 뒤흔들었다.
앞에서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비명이, 뒤에서는 특급 몬스터의 추격이.
양쪽에서 조여 오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서쪽 통로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