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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대늑대룡이 낮게 몸을 웅크렸다. 먹이를 앞에 둔 짐승 특유의, 조용하고 소름 돋는 자세였다. 크르르르릉··· 낮은 울림이 공동 전체를 채웠다. 바닥이 그 울림에 맞춰 미세하게 진동하는 게 발바닥으로 그대로 느껴졌다. 돌기둥에 붙어 있던 먼지 같은 부스러기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전신에서 검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냄새가 순식간에 몇 배로 짙어졌다. 썩은 살, 곰팡이, 시큼한 산성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거기다 뭔가 탄내 같은 것까지 섞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조합이야. 향수 회사에 취직해도 망할 것 같은 냄새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눕지도 못하고 그냥 버텼다. 이 상황에 구토라도 하면 그림이 얼마나 처참할지 상상이 갔다. 【부패 기운 필드 전개. 반경 10미터 내 지속 피해.】 "저건 또 뭔데." [접촉 없이도 피해를 입습니다.] "미리 좀 말해주지!" 정말이지, 이 시스템이라는 놈은 항상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설명을 해준다. 마치 사고가 터진 뒤에 보험 약관 읽어주는 것처럼. 나는 설화를 부축해 돌기둥 반대편으로 조금 더 물러났다. 발밑에서 부글거리는 검은 자국이 조금씩 우리 쪽으로 번져오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나 자신도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두려움 때문인지, 방금 마신 부패 기운 탓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마 둘 다일 거다. 대늑대룡의 눈이 나를 정확히 겨눴다. 녹색 동공 안에서 세로로 갈라진 검은 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무섭도록 빨랐다. 체감상 총알보다 느리진 않았을 거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검을 들어 막았다. 콰앙! 충격이 팔부터 어깨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뼈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발이 뒤로 이 미터쯤 밀려나며 바닥에 긁힌 자국을 남겼다. "헉···" 숨이 턱 막혔다. 폐 속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간 것 같았다. 대늑대룡이 다시 앞발을 들었다. 이번엔 옆으로 휘두르는 궤적이었다. 피할 틈이 없었다. 【위험. 직격 예상.】 가이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급해졌다. 이 새끼가 급해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나는 몸을 낮추며 검으로 궤적을 억지로 걸쳐 냈다. 칼날에 검은 부식액이 튀었다. 치이익, 소검 표면이 지글지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칼날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비까지 부식시켜?!" 뒤에서 설화가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저건 근접전으로 못 이겨요!" "알아요, 저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럼 대체 뭘로 이기라는 건데. 원거리 스킬 하나 없는 내가. 대늑대룡이 다시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앙! 소리에 담긴 압력이 물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머릿속이 잠깐 하얗게 비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꼬리가 옆에서 날아왔다. 채찍처럼 휘어진 그 꼬리에 비늘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마치 철퍼덕한 회처럼, 아니 그런 비유를 할 상황이 아니다. 피할 공간이 없었다. 등이 벽에 부딪혔다. 퍽! 숨이 턱 막히고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 "하늘님!" 설화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몇 초쯤 시간이 늘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헬멧 카메라 렌즈가 그 순간에도 여전히 빨간 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 작은 불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상하게 정신이 확 들었다. ···지금 이 상황이 몇 만 명한테 그대로 찍히고 있단 말이지. 여기서 뻗으면 그대로 밈이 되는 건가. '생방송 중 몸통 박치기로 벽에 처박힌 여자' 같은 제목으로. 등이 아팠다. 갈비뼈 어딘가가 시큰거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옆구리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렸다. 하지만 쓰러질 순 없었다. 일어나야 했다. 몸이 말을 안 들어도, 억지로라도. 나는 벽을 짚고 몸을 다시 세웠다. 대늑대룡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부패 기운이 더 짙어지며, 이번엔 아예 바닥까지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돌바닥이 지글지글 끓는 것처럼 부글거렸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신발 밑창을 통해 그대로 느껴졌다. 【위험도 재산정. 특급 상위 개체로 격상.】 "격상은 또 뭐야, 얘 원래 특급이잖아!" [전투 중 개체 자체의 부패 밀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 끌수록 더 강해진다는 거잖아!" "정확합니다." "그걸 지금 자랑스럽게 대답할 일이냐!" 가이드는 대답이 없었다. 이럴 때만 조용해지는 게 얄밉기 짝이 없었다. 설화가 벽에 몸을 기댄 채 나를 올려다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도 파랗게 떨리고 있었다. "하늘님, 저··· 저것 때문에 죄송한데요." "지금 사과할 타이밍 아니잖아요." "제 시청자들이··· 지금 다 하늘님 이름 찾고 있어요." "네?" "채팅창에서 하늘님 계정 태그된 거 벌써 퍼졌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쿵 뛰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다른 감정 때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지금 이 몸으로, 이 꼴로, 정체가 퍼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머릿속이 잠깐 복잡해졌다. 방송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치였다. 죽고 나면 이름이 퍼지든 말든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대늑대룡이 다시 몸을 낮췄다. 이번엔 처음보다 훨씬 크게, 온몸을 웅크리는 자세였다. 앞발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마치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것처럼. 부패 기운이 녀석의 몸을 완전히 감싸며 검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몸통 전체가 마치 용암 속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이글거렸다. 공기 자체가 뜨거워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최종 형태 전환 감지.】 "···이제 뭘 또 바뀐다는 거야." 입술이 저절로 마른 웃음을 만들어냈다. 지금 웃을 상황이 절대 아닌데. 몸은 이미 다음 공격을 예상하고 떨고 있는데, 입만 헛되이 웃고 있었다. 대늑대룡의 등줄기를 따라 검붉은 균열 같은 무늬가 번쩍이며 퍼져나갔다. 그 무늬가 눈, 코, 입까지 뒤덮으며 얼굴 형체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흉악한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형태 전환 완료까지 남은 시간: 십 초.】 십 초. 머릿속으로 그 숫자가 째깍째깍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십 초 안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칼은 반쯤 녹았고, 설화는 벽에 기댄 채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나는 갈비뼈가 시큰거리는 몸으로. 이 상황에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나조차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늑대룡의 몸에서 검붉은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 빛이 공동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형태 전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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