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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통로를 꺾어 들어가자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천장이 뚫려 자연광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흔치 않은 구조였다. 지하 던전인데 하늘이 보인다니. 뭔가 있어 보이는 설정이긴 한데, 지금 이 상황에서 감상할 정신은 없었다. 먼지 냄새와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이 있었다. 앙, 하고 헬멧이 굴러떨어지는 소리. 긴 은발이 흩날렸고, 왼쪽 다리 아래로 피가 배어 나온 붕대가 보였다. 낯이 익었다. 아니, 익은 정도가 아니라 방송을 켤 때마다 추천 영상 상단에 뜨는 얼굴이었다. 섬네일만 봐도 알 수 있는, 그 정도로 익숙한 얼굴. "설화···?" 무의식적으로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설화. 방송명 '설화(雪花)'. 준1급 탐색자. 시청자 수만 명을 매일 찍는 스트리머. 내가 900명에서 발버둥 치는 사이, 이 사람은 그 백 배쯤 되는 숫자를 매번 갈아치우고 있었다. 한 번은 그녀 방송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저건 나랑 다른 세계 사람이구나, 하고 조용히 창을 꺼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다리 하나를 못 쓴 채 이 좁은 던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거기 누구··· 아, 잠깐, 방송 중이신 분이시죠?" 설화가 나를 알아본 건지 아닌지 애매한 표정으로 물었다. 헬멧 위쪽에 달린 소형 카메라 렌즈가 여전히 빨간 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이 사람 방송, 아직 켜져 있다는 거. 그리고 그 뒤로 나까지 통째로 찍히고 있다는 거. "저 지금 방송하는 거예요?" "네··· 죄송해요, 끄고 싶은데 손이··· 다리 때문에···" 설화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말투는 존댓말인데 목소리 끝이 갈라져 있었다. 방송에서 늘 듣던 여유로운 톤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동시 접속자 수 43,000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가이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숫자를 던졌다. ···미친, 4만 3천 명. 내 채팅창에 몰려오는 십몇 명이랑은 아예 다른 세계 숫자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숫자 중에 내 채널 구독자도 섞여 있을까. 아니,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저기 가이드님, 지금 그런 거 계산할 시간에 저 늑대 좀 어떻게···" [가이드는 전투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알아요, 알아. 그냥 해본 소리예요." 하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뒤쪽 통로에서 아까 그 포효가 다시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앙! 소리가 이번엔 훨씬 가까웠다. 벽을 타고 진동이 발바닥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설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거··· 그거 맞죠? 아까 저 습격한 거요." "습격당하셨어요?" "다리 아래로 지나가다가··· 순식간에···" 말을 채 끝내지도 못했다. 대늑대룡이 통로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몸길이만 봐도 성인 남자 세 명은 눕혀야 겨우 재는 크기였다. 적색 털가죽 사이로 근육이 꿈틀거렸다. 어깨를 낮추고, 녹색 눈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훑었다. 먹잇감 고르는 눈빛. 딱 그거였다. 입가에서 검붉은 침이 흘러내렸고, 그게 바닥에 떨어지자 돌이 부글부글 녹아내렸다. 부식성 침. 저게 소위 부패 기운이라는 건가. 【썩은 대늑대룡, 개체명 확인. 등급: 특급. 특성: 전(全) 공격 부패 부여.】 건조한 알림이 이번에도 딱 그 타이밍에 떠올랐다. 특급이라니. 지금까지 상대한 것 중에 제일 높은 등급이었다. 저 앞에 붙은 '썩은'이라는 접두사도 왠지 불길했다. "저기, 하늘님이라고 하셨죠? 성이 김이시고···" "지금 그거 물어볼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맞아요, 죄송해요, 그냥··· 이름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죽기 전에 이름은 알고 죽어야겠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안 죽어요. 제가 어떻게든 할 거니까." 말은 그렇게 했는데, 정작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스쳤다. ···이거 카메라 켜져 있다는 거, 다시 말해 지금 내가 하는 말도 다 4만 3천 명이 듣고 있다는 거잖아.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방송용 멘트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저 숫자 앞에서는 뭔가 다르게 들릴까. 내 채널이었으면 이런 대사 쳐도 아무도 안 봤을 텐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사람이 몰릴 게 뭐람. 대늑대룡이 앞발을 들었다. 쿠웅. 바닥이 흔들렸다. 돌 부스러기가 튀었다. [공격 개시 신호입니다. 회피하십시오.] "알아, 나도 눈 있어!" 나는 설화의 팔을 붙잡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대늑대룡의 앞발이 방금 우리가 있던 자리를 뭉개고 지나갔다. 콰앙! 돌바닥이 움푹 내려앉으며 검붉은 침이 사방으로 튀었다. 한 방울이 내 어깨 근처 바위에 떨어지자, 치이익 소리를 내며 바위 표면이 녹아내렸다. 바위가 녹는 냄새인지, 아니면 그 침 자체 냄새인지, 코를 찌르는 시큼한 악취가 확 퍼졌다. "저거 사람한테 맞으면 어떻게 되는데?" [살점이 그대로 부패합니다.] "그걸 그렇게 무표정하게 말하지 마!" 설화가 내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손끝이 차가웠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아니면 그냥 무서워서인지 구분이 안 갔다. "저 다리 때문에··· 못 뛰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평소 방송에서 듣던 그 여유로운 톤과는 완전히 달랐다. 준1급 탐색자도 저렇게 떠는구나. 화면 너머로 보던 것과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나는 대늑대룡을 바라봤다. 녀석은 다시 앞발을 들어 올리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대로 지진이었다. 발을 뗄 때마다 바닥에서 돌가루가 튀어 올랐다. 이대로 두면 다음 발은 확실히 우리 둘 중 하나를 짓뭉갤 거였다. 등에 멘 짐벌 카메라가 이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소검을 뽑았다. 칼날이 형광등처럼 파랗게 빛났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나는 손가락에 힘을 다시 주고 자세를 낮췄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쳤다. 도망치면 설화는 저 다리로 못 뛴다. 업고 뛰면 나도 못 뛴다. 그럼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그 순간 확신했다. 지금 여기서 도망치는 건 선택지에 없다는 걸. 대늑대룡의 녹색 눈이 정확히 나를 향해 고정됐다. 크르릉, 낮게 울리는 그 소리가 마치 준비운동을 마쳤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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