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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목소리의 주인은 딱딱한 방어구를 두른 중년의 남자였는데, 이마에 깊게 새겨진 흉터와 매섭게 치켜올라간 눈매가, 그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첫눈에 드러내고 있었다. 투박한 강철판을 덧댄 흉갑 위로 낡은 망토가 걸쳐져 있었고, 허리춤에는 손잡이가 반질반질하게 닳은 검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검의 상태만 보아도 이 남자가 수많은 실전을 거쳐온 베테랑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박기범 파티장님." 주변 누군가 나지막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도현은 그제야 이 몸의 주인, 편팔이 소속된 파티의 리더가 바로 저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파티장이라, 그럼 나는 부하 직원 같은 처지겠지.' 도현은 씁쓸하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 몸이 겪어온 위계질서를 새삼 실감했다. 박기범이 성큼성큼 다가와 편팔의 붕대 감긴 팔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대단찮다는 투로 짧게 내뱉었다. "오늘은 상급 던전이다. 서포터가 셋이나 필요해서 네놈까지 데려가는 거니까, 딴생각 말고 짐만 잘 옮겨." 그 말투 속에는 동료라는 인식보다는, 소모품을 대하는 듯한 무심함이 짙게 배어 있었고, 도현은 이 몸의 기억 속 깊은 곳에서 비슷한 취급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는 씁쓸한 잔상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붕대는 대체 언제부터 감고 있었던 거야, 이 몸.' 팔을 슬쩍 움직여보자, 뼈까지 저릿한 통증이 뒤늦게 밀려왔는데, 아마도 얼마 전 던전에서 입은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포터,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대기실 한쪽 벽에 붙은 안내판을 훑어보던 도현의 시야에, 파티 내 직군을 설명하는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투원 — 몬스터와 직접 교전, 등급에 따라 보상 상위 배분] [서포터 — 물자 운반, 진입로 확보, 부상자 후송, 보상 최하위 배분] 숫자와 등급으로 나뉜 이 세계의 질서는 냉정할 정도로 명확했는데, 전투원은 화려한 스킬과 장비로 몬스터를 사냥하며 몸값을 올리고, 서포터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구조였고, 편팔은 바로 그 최하위 계층에 속해 있었다. 안내판 아래쪽에는 더 작은 글씨로 등급별 보상 분배율까지 적혀 있었는데, 전투원과 서포터의 몫이 거의 여덜 배 가까이 차이 나는 것을 확인한 도현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게 무슨, 목숨은 똑같이 걸어놓고 보상만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거야.' '게이트, 던전, 등급···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낯선 개념들이 머릿속에 밀려들면서도, 이상하게도 그것들의 의미가 저절로 이해되는 듯한 감각이 들었는데, 마치 이 몸의 기억이 도현 자신의 의식과 조금씩 섞여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었다. 게이트는 어느 순간 세계 곳곳에 벌어진 균열이며, 던전은 그 균열 너머에 형성된 이형의 공간이고, 등급은 그 던전과 몬스터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척도라는 사실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지식처럼 자연스럽게 도현의 사고 속으로 흘러들었다. '이런 세계관이라니. 편팔, 너는 대체 얼마나 오래 이 바닥에서 버텨온 거냐.' 대기실 안쪽에서 다른 파티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는데, 날카로운 창을 든 젊은 여성 전투원과, 방패를 등에 짊어진 덩치 큰 남자, 그리고 후방에서 마법을 다루는 것으로 보이는 로브 차림의 청년이었다. 여성 전투원은 짧게 자른 머리카락 사이로 매서운 눈빛을 흘렸는데, 창끝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딱히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짜증을 흘리고 있었고, 방패를 짊어진 덩치 큰 남자는 그런 그녀를 곁눈질하며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장비를 재차 점검하는 중이었다. 로브 차림의 청년은 대기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낡은 마법서를 넘기고 있었는데, 그 손끝에서 이따금 옅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면, 벌써부터 전투를 대비해 마력을 다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편팔을 향해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고, 그 무관심 속에서 도현은 이 몸이 파티 안에서 얼마나 존재감 없는 취급을 받아왔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인사 한 번쯤 나눠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무도 눈길을 안 주네.' "오늘 던전은 B급 균열이다. 소환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미 내부 생태가 완성됐다는 보고가 있으니 다들 정신 바짝 차려." 박기범의 브리핑이 이어지는 동안, 벽에 걸린 지도 위로 붉은 표식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고, 그 표식 근처에 적힌 작은 글씨가 도현의 눈에 유독 크게 들어왔다. [위험도 : 상 — 다수의 중형 몬스터 무리 서식 확인] '다수의, 중형 몬스터라니.' 그 문구를 확인한 순간, 도현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는데,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자신이 그런 위험 속에 아무런 대책 없이 던져진다는 사실이 실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지도 위에는 던전 내부의 대략적인 구조도 함께 표시되어 있었는데, 좁은 통로와 넓게 트인 공간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 붉은 점들이 몬스터의 예상 서식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점 하나가 몬스터 한 무리라는 거잖아. 저게 대체 몇 마리야.' 박기범이 지도 위 붉은 점 하나를 손끝으로 짚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중앙 광장 근처에 무리가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회로를 통해 최소한의 교전만 치르고 목표 지점까지 도달할 거다." 그 목표 지점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던전 깊은 곳에 숨겨진 보상, 혹은 균열의 핵심이라 불리는 무언가일 것이라고, 도현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편팔, 너는 후방에서 보급품 지키고, 부상자 나오면 즉시 후송 준비해. 알겠지?" 박기범의 지시는 명료했지만, 그 이면에는 편팔의 목숨이 파티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낮게 취급된다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 있었고, 그것을 모를 리 없는 편팔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 아무 힘도 없는 몸으로 끌려간다는 거야.' 도현은 이 몸의 감각을 빌려서라도 뭔가 저항하고 싶었지만, 의지와는 무관하게 편팔의 몸은 이미 익숙한 절차를 밟아나가듯 배낭을 짊어지고 대기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배낭 속에는 붕대와 지혈제, 그리고 몇 개의 회복 물약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는데, 그 무게가 상당해서 짊어지는 순간 어깨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듯했다. '이 무게를 지고 몬스터 무리 사이를 뛰어다녀야 한다는 거지. 미친.' 출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벽면에 붙은 낡은 게시판 한 귀퉁이에서 작은 흑백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은 실종되거나 사망한 헌터들의 명단을 기록한 추모 게시판이었고, 그 숫자가 놀랄 만큼 많다는 사실이 이 세계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명단 옆에는 그들이 소속되었던 파티명과 사망 혹은 실종 날짜가 함께 기록되어 있었는데, 최근 한 달 사이에도 벌써 다섯 개의 이름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 눈에 띄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거야.' 도현은 그 명단 속에 편팔의 이름이 언젠가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지만, 뒤에서 밀려드는 다른 헌터들의 인파에 밀려 다시 걸음을 옮겨야 했다. 게이트 밖으로 나서자 하늘을 가득 채운 검푸른 균열이 도시 전체를 짓누르듯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아래로 늘어선 헌터들이 저마다 무기를 점검하며 던전 입구로 향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다. 균열은 마치 하늘에 새겨진 거대한 상처처럼 일렁이고 있었는데, 그 가장자리에서 이따금 검은 안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주변 대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콰르르릉···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굉음이 대지를 미약하게 흔들었고, 그 소리와 동시에 편팔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것을, 도현은 이 몸의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반사 반응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소리는 대체 뭐야. 몬스터가 우는 소린가.' 주변 헌터들 몇몇도 그 굉음에 잠시 시선을 돌렸지만, 이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자신의 장비 점검으로 돌아갔는데, 그 무심함이야말로 이곳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위험을 감내하는 공간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던전 입구는 거대한 석문처럼 생긴 구조물 앞에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표면이 검은 안개로 뒤덮여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안개 너머에서 이따금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으르르르··· 낮게 울리는 그 소리에 편팔의 손끝이 저절로 떨려왔는데, 도현은 그 떨림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이미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겨본 자의 본능적인 경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기범이 던전 입구 앞에 멈춰 서서 파티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던진 한마디가, 도현의 귓가에 유독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번엔 물자가 부족해서 예비 인력 없이 들어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각자 몸은 알아서 지켜." 여성 전투원이 창을 고쳐 잡으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고, 방패를 든 덩치 큰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로브 차림의 청년은 마법서를 품속에 갈무리하며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편팔만이, 그리고 그 몸속에 들어앉은 도현만이, 아무런 무기도 스킬도 없이 그저 배낭 하나를 짊어진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준비를 하는데, 나는 뭘 해야 하는 거야.' 그 말이 던전 입구의 검은 균열 속으로 삼켜지듯 사라지는 순간, 도현은 이것이 결코 평범한 임무가 아니라는 불길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파티원들이 하나둘 안개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야 하는 편팔의 몸도 서서히 무거운 배낭의 무게를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안개의 경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도현은 온몸의 감각이 순식간에 뒤틀리는 듯한 이질감에 사로잡혔다. '이거, 뭔가 잘못됐어.' 경계 너머로 발이 완전히 들어서기 직전, 도현의 머릿속으로 이 몸의 마지막 기억 한 조각이 스치듯 떠올랐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지난번 던전 탐사에서 이 파티가 절반 가까이 인력을 잃었다는 끔찍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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