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던전 입구의 균열은 가까이서 보니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아가리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검붉은 빛이 파도치듯 넘실거리며 안팎을 구분 짓는 경계선을 그려내고 있었는데, 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바람이 편팔의 붕대 감긴 팔뚝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도현의 의식 속에서는 전혀 다른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입학식날, 아버지가.'
한빛중학교 입학식이 있던 그날, 갑작스레 도심에 균열이 열리며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회사에서 급히 뛰쳐나와 도현을 데리러 오던 아버지 강태식이, 학교 앞 도로에서 튀어나온 개체 하나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이 순간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때도, 이런 균열이었겠지.'
어린 도현은 그날 학교 정문 근처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만을 들었을 뿐, 아버지가 어떻게 숨을 거두었는지는 끝내 자세히 알지 못한 채, 그저 병원 복도 차가운 의자에 앉아 어머니 김미란이 무너지듯 오열하는 모습만을 지켜보아야 했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몬스터라는 단어만 들어도 안색이 하얗게 질리곤 했었는데, 도현은 그런 어머니 앞에서 단 한 번도 던전이나 각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었다.
'설마, 그날 아버지가 본 것도 이런 광경이었을까.'
균열 앞에 선 지금, 그날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도현의 마음 한구석에 짙은 불안이 그림자처럼 내려앉았고, 이 던전이라는 것이 결코 가벼운 곳이 아니라는 예감이 뼛속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편팔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편팔 본인의 긴장인지, 아니면 도현의 오래된 두려움이 이 몸을 빌려 되살아난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만 생각하자. 지금은 산 사람이 먼저지.'
도현은 애써 그 기억을 밀어내며 붕대 감긴 손으로 배낭끈을 다시 한번 단단히 고쳐 멨다.
"자, 들어간다."
박기범의 짧은 명령과 함께 파티원들이 하나둘 균열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고, 창을 든 여성 전투원이 가장 먼저, 방패를 든 덩치 큰 남자가 그 뒤를 이어, 마법사 청년이 손끝에 옅은 빛을 머금은 채로, 그리고 편팔의 몸도 그 흐름에 섞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마지막으로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촤아아아악.
균열을 통과하는 순간, 마치 얇은 막을 뚫고 지나가는 듯한 저항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고, 피부 표면이 잠시 저릿하게 당겨지는 감각과 함께 귀속에서 이명 같은 울림이 짧게 스쳐 지나갔는데, 그 직후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상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습기 가득한 동굴 내부에는 희미한 형광빛 이끼가 벽을 뒤덮고 있었고, 그 빛깔은 마치 죽어가는 생명체가 마지막으로 내뿜는 발광 같아서 도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으며,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지며 낮은 울림을 만들어냈고, 발밑의 바닥은 축축하게 젖은 진흙과 이끼가 뒤섞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질척한 소리를 냈으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울음소리가 이곳이 결코 무해한 공간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냄새도 지독하네.'
썩은 것 같기도 하고 비릿한 것 같기도 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는데, 편팔의 몸이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반응하여 얕은 기침을 뱉어내자, 앞서가던 박기범이 짧게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전방에 소형 개체 셋, 대응해."
창을 든 여성 전투원이 낮게 외치자, 방패를 든 덩치 큰 남자가 앞으로 튀어나가며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었고, 그 뒤로 마법사 청년이 손끝에 푸른 빛을 응축시키며 대기했다.
으르르릉···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세 개체는 사람 몸통 크기의 짐승형 몬스터였는데, 회색빛 가죽과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인간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꺾인 관절이, 그것이 결코 자연계에 존재할 리 없는 생물임을 한눈에 드러내고 있었으며,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저 검붉은 균열 같은 틈만이 새겨져 있어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콰아앙!
방패를 든 남자가 첫 번째 개체의 돌진을 정면으로 막아내며 육중한 충격음을 만들어냈고, 방패 표면에는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세 줄기 그어졌으나 그는 이를 악물며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창을 든 여성이 옆구리를 정확히 찔러 들어가 개체 하나를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
키에에엑!
짐승의 비명이 동굴 전체를 울렸고, 검붉은 액체가 창끝을 따라 튀어 오르며 벽면 이끼를 적셨는데, 마법사가 쏘아낸 냉기 구체가 두 번째 개체의 다리를 얼려붙이는 사이, 도현은 편팔의 몸을 빌려 후방에서 부상자 후송용 들것과 물약을 정리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싸우네.'
전투원들의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 모습에 조금은 안도했던 도현은, 물약병의 마개를 확인하고 붕대 뭉치를 배낭 옆에 가지런히 늘어놓으며 혹시 모를 부상자를 대비했는데, 그 침착한 손놀림 사이로도 방금 전 떠올린 아버지의 기억이 자꾸만 어른거려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설마 여기서도, 그런 일이.'
세 번째 개체마저 방패지기의 방패에 튕겨 나가며 균형을 잃는 것을 확인한 순간, 도현의 생각은 곧이어 벌어진 상황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으드드드득.
동굴 벽면 곳곳에서 균열 같은 틈이 벌어지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개체들이 꿈틀거리며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 틈들은 마치 벽 자체가 살아 숨 쉬며 알을 낳는 것처럼 보였고, 하나둘 벌어지던 것이 순식간에 열 개, 스무 개로 늘어나며 동굴 안을 검은 그림자로 뒤덮어 갔다.
"뭐야, 숫자가 왜 이렇게 많아!"
창을 든 여성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고, 방패를 든 남자 역시 이를 악물며 밀려드는 개체들을 막아내기에 급급해졌으며, 마법사 청년의 손끝에서 뿜어지던 냉기 구체도 점차 그 간격이 좁아지며 다급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기범의 표정도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는데, 사전 조사 보고와는 전혀 다른 규모의 무리가 이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에는 소규모 서식지라고 했잖아!"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동굴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지만, 그 물음에 답할 여유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키에에엑! 키에에에엑! 키에엑···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겹쳐지며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고, 그 소리에 편팔의 몸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도현의 눈에도 선명하게 느껴졌으며, 그 순간 도현의 시야 한 귀퉁이에서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저, 저건 또 뭐야.'
다른 개체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크기의 그 형체가, 동굴 안쪽 깊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은 지면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발소리였고, 이어서 어둠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것은 사람 몸통보다 두꺼운 팔뚝 같은 형체였으며, 그 위로 겹겹이 돋아난 뼈 같은 돌기들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쿠웅···
무언가가 한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바닥이 낮게 진동했고, 그 진동이 편팔의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도현은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저게 이 던전의 진짜 주인인가.'
박기범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