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회수 센터의 복도는 밝았다. 지나치게 밝았다.
도진은 그 빛이 낯설었다. 관문 안에서는 늘 어둠 속에서 방패를 세우고 등을 지켰는데, 이곳의 빛은 어둠을 허락하지 않았다.
천장에는 무언가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불꽃도 아니고 촛불도 아닌, 낮보다 더 낮 같은 빛을 뿜어내는 것들이었다. 도진은 그것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눈이 시렸다. 관문 안에서 오십 년을 보낸 눈에는, 그림자 없는 세상이 오히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강도진 씨. 여기 앉아서 몇 가지 확인부터 하시죠." 담당 직원이 말했다. 나이가 젊어 보였고, 말투에는 예의가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호기심이 노골적으로 비쳤다.
직원이 내민 의자는 딱딱했다. 도진은 앉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내 동료들은 어디 있습니까." 도진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섞여 있었다.
직원은 판을 넘기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몇 번 훑고 지나갔다. 그 움직임이 도진에게는 낯설었다. 종이도 아니고 목판도 아닌 것이 손끝의 움직임만으로 반응했다.
"선발대 명단을 조회했습니다. 한재현, 여진서, 유이현, 이아리... 네 분 모두 오십 년 전, 강도진 씨와 같은 날 실종 처리되었습니다."
"실종." 도진이 그 말을 곱씹었다.
"이후 삼 년간 수색이 진행됐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는... 사망 처리되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망.' 도진은 그 단어를 소리 없이 되풀이했다. 이아리의 마지막 손끝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웃음. 관문 최심부, 무너지는 벽 사이에서 그녀가 그를 향해 마지막으로 뻗었던 손. 그것이 벌써 오십 년 전의 일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머리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까. 유해라든지, 기록이라든지." 그가 물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눌린 무언가가 있었다. 직원은 그것을 느꼈는지 잠시 시선을 피했다.
"당시 수색대가 관문 최심부까지 진입했지만,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직원이 말을 멈췄다.
"다만, 뭡니까."
"그 관문이... 사실 존재 자체가 기밀로 분류되어서, 정확한 자료는 저희 쪽 권한 밖입니다."
도진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기밀.' 그 단어가 그를 더 갈증나게 만들었다. 오십 년 전, 관문에 들어가던 그날도 이 말이 쓰였다. 국가 기밀. 위에서 정한 우선순위. 그 뒤에 숨은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누가 압니까." 도진이 물었다.
직원은 대답 대신 판을 덮었다. 그 몸짓이 이미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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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물이라니, 진짜 신기하다." 복도 밖에서 젊은 연구원 둘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십 년 전 사람인데 몸이 그대로래. 냉동보존이라도 된 건가?"
"방패술 쓰던 사람이라던데. 그때는 그런 게 유행이었나 봐."
그들은 도진이 듣고 있다는 걸 몰랐거나,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복도 벽에 붙어 서서, 손에 든 작은 판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사진 봤어? 관문 진입할 때 입던 갑주. 지금 박물관에서도 안 쓰는 방식이던데."
"그니까. 진짜 산 역사 아니야? 인터뷰 되면 대박이겠다."
'유물.' 그 말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다섯 해를 목숨 걸고 싸운 시간이, 저들에게는 그저 지나간 시대의 유행쯤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재현이 밤새 방패를 갈아준 손, 진서가 부러진 창을 이어붙이던 손, 이현이 마지막까지 등을 맞대고 버텨준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저들의 입에서는 '방패술이 유행이었나 보다'는 말로 축소되었다.
"저기요." 도진이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연구원 둘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판을 손에서 놓칠 뻔한 한 명이 다급히 그것을 붙잡았다.
"아, 죄송합니다. 무례했다면..." 한 명이 서둘러 사과했다.
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지나쳤다. 화를 낼 기운조차 아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들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는 생각했다. 오십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 그 시간의 무게를 이해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당신들이 아는 대로만 말해주십시오. 관문 공략 이후 기록이 어떻게 남았는지." 그는 다시 담당 직원에게로 돌아가 물었다.
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정부 길드 관리국 소관입니다. 저희는 회수와 신체 확인만 담당해서요."
"그곳에 가면 답을 들을 수 있습니까."
"글쎄요. 그쪽도 워낙 오래된 사건이라..."
말을 끝내지 못하고 흐려지는 직원의 태도에서, 도진은 뭔가 명확하게 감을 잡았다.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스승격이랄 것도 없었지만, 도진에게는 어릴 적부터 늘 되새기던 말이 있었다. 방패를 처음 쥐여준 노병사의 말이었다.
"방패는 도망치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을 등지고 버티기 위한 것이다."
그 노병사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오십 년이라는 시간이 그마저도 앗아갔을 테니까. 하지만 그 말만은 여전히 도진의 안에 살아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진실을 찾는 것마저 도망친다면, 방패를 쥔 의미가 없었다.
+++
밤이 깊었다. 회수 센터에서 내준 임시 숙소의 창밖으로, 도진이 알던 서울과는 전혀 다른 불빛들이 보였다. 하늘을 가릴 듯 높은 건물들, 색색으로 빛나는 간판,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탈것들.
도진은 창에 손을 대보았다. 차가웠다. 유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크고 투명한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불빛들의 행렬이, 마치 관문 안에서 보았던 마물의 눈동자들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는 창가에 서서 그렇게 생각했다.
방 안에는 낯선 물건들이 가득했다. 손바닥만 한 판에서 빛이 새어 나왔고, 벽에 붙은 작은 상자에서 사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진은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랐고, 알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생각 끝에, 그는 오히려 명료해졌다.
남은 것이 없다면, 찾아야 할 것도 명확했다. 동료들의 진실. 특히 이아리의 진실.
재현의 웃음소리, 진서의 잔소리, 이현의 무뚝뚝한 등. 그리고 이아리의 마지막 손. 그 넷 중 누구도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이, 도진에게는 오히려 실낱같은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숙소에 놓인 옷가지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골라 입었다. 색이 어두웠고 천의 질감이 낯설었지만, 몸을 가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회수 센터가 정한 '안전 관리 구역'을 벗어나면 어떤 제약이 따를지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동안, 도진은 자신의 걸음걸이가 여전히 관문 안에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발끝부터 딛는 습관, 소리를 죽이는 자세. 오십 년의 세월도 그 몸의 기억만큼은 지우지 못했다.
"허가받지 않은 외출은..." 문 앞을 지키던 경비가 그를 막았다.
"비켜주십시오." 도진이 짧게 말했다.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다.
경비는 잠시 그를 위아래로 살폈다. 체구, 눈빛, 걸음걸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결국 슬쩍 옆으로 물러섰다.
"...조심하십시오."
그 말에는 만류의 뜻이 담겨 있었지만, 도진을 진짜로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젊은 경비도, 복도의 연구원들처럼 그를 신기한 구경거리로만 여기고 있을지 몰랐다. 도진은 그런 시선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도진은 대답 없이 문을 나섰다.
밤바람이 낯설게 얼굴을 스쳤다. 관문 안의 바람과는 달랐다. 매캐한 냄새도 없었고, 마물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낯선 소리들이 사방에서 웅웅거렸다. 탈것들이 내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것들.
오십 년이 흐른 서울의 첫 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도진은 그 소리들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없었다. 다만 방향은 있었다. 진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 진실의 끝에서, 이아리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는 그것을 위해 이 낯선 세상 전부를 뒤엎을 각오였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붉고 푸른 빛이 번갈아 번쩍이며 거리를 스쳤다. 도진은 그 빛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낮췄다. 관문 안에서 위험을 알리던 신호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듯 지나쳤다.
'이곳은 관문이 아니다.' 도진은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그러나 몸에 새겨진 경계심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오십 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버텨온 습관이, 이 안전한 밤거리에서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어둠이 짙은 골목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회수 센터의 불빛이 등 뒤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 빛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진실을 찾을 때까지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이 낯선 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유일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