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정부 길드 관리국의 로비는 넓고 차가웠다.
유리로 된 벽면 곳곳에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가 떠 있었고, 도진은 그것을 낯설게 올려다보았다. 오십 년 전에는 이런 건물이 없었다. 그때는 관문 앞에 컨테이너 몇 개를 이어 붙인 임시 막사가 전부였고, 그 막사 안에서 다섯이 모여 지도를 그리곤 했었다. 지금 이 로비의 대리석 바닥은 그 컨테이너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세계처럼 보였다.
천장에서는 낮은 음악이 흘렀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목에 찬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걸었고, 누구도 서로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도진은 그 무관심 속을 가로질러 접수대로 다가갔다.
"방문 목적이 뭐죠." 접수대의 직원이 무심하게 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십 년 전 실종된 선발대에 관한 기록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도진이 답했다.
직원의 손가락이 화면을 몇 번 두드렸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하는 동작일 것이다.
"성함이요."
"강도진입니다."
직원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의 균열을,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
"...잠시만요."
직원은 헤드셋에 손을 올리고 낮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도진은 그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직원의 어깨가 점점 굳어가는 것은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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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받은 곳은 좁은 회의실이었다. 창문이 없어서 그런지 공기가 답답했다. 도진은 의자에 앉아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십여 분이 지났을 즈음, 문이 열렸다. 담당관이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중년이었고, 넥타이가 반쯤 풀려 있었다. 이마에는 급하게 뛰어온 듯한 땀이 배어 있었다.
"박정훈입니다. 던전 관리국 사후처리 담당관이죠." 그가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강도진입니다."
"압니다. 방금 위에서 전화가 두 번이나 왔어요. 사장님이 마시던 커피를 다 뿜었다더군요." 박정훈이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서류철을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동료들의 행방을 알고 싶습니다." 도진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인사도, 예의를 갖춘 서두도 없었다.
박정훈은 그 직진에 조금 당황한 듯 서류철을 뒤적이며 미간을 좁혔다.
"선발대... 아, 이게 그 유명한 '서울 제8관문 선발대'군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 같은데."
"배웠다니요."
"교과서에요. 초창기 관문 공략 영웅담 같은 걸로. 근데... 실제로 보니 뭔가 좀 다르네요." 박정훈이 도진을 위아래로 훑으며 웃었다. 웃음에 예의는 없었다.
도진은 그 시선을 묵묵히 받아냈다. 오십 년 전에도 이런 시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 관문 앞에 섰을 때, 후방 지원조는 다섯 명의 선발대를 두고 저런 눈으로 훑어보았다. '저들이 정말 관문지기를 이길 수 있을까.' 그 의심 어린 시선을 뚫고 다섯은 살아 돌아왔었다. 정확히는, 도진 한 사람만 살아 돌아왔다.
"다르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도진이 물었다.
"딴 게 아니라, 기록엔 좀 더... 화려하게 남아 있어서요. 마지막 관문지기를 혼자 쓰러뜨렸다든가, 성녀 이아리 님과 뭐 애틋한 로맨스가 있었다든가." 박정훈이 낄낄거렸다.
도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 관문지기는 다섯이 함께 쓰러뜨렸습니다. 나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했다. 진서가 마법으로 관문지기의 시선을 끌었고, 재현이 측면을 파고들어 다리를 베었다. 이현이 화살로 균형을 무너뜨렸고, 이아리가 뒤에서 결계를 펼쳐 도진의 마지막 일격을 도왔다. 그 모든 순서가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도진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뭐, 세월이 지나면 이야기가 좀 부풀려지죠. 원래 그런 겁니다. 영웅담이라는 게." 박정훈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부풀려졌다.' 도진은 그 말에서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다섯이 함께 이룬 일이, 왜 혼자만의 전설로 남았는가. 그 안에 무언가 지워진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우연히 살을 붙이는 것과, 의도적으로 이름을 지우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 기록을 누가 작성했습니까." 도진이 물었다.
"그건 알 수 없죠. 오십 년 전 자료라 원본은 대부분 유실됐고, 각색된 판본들만 여기저기 떠돌아서요." 박정훈이 서류철을 덮었다. 마치 그 안에 더 볼 것이 없다는 듯한 손짓이었다.
"동료들의 생사에 대해서는 확인된 게 없습니까."
"공식적으로는 전원 사망 처리됐습니다. 그 이상은 저희 소관이 아니에요."
"소관이 아니라면 어디입니까."
박정훈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짜증스레 답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오래된 사건은 아무도 신경 안 씁니다. 요즘 관문은 훨씬 위험하고 시급한 게 많거든요. 오십 년 전 실종자 찾아다닐 인력이 있으면 그걸로 현역 탐험가나 보호하죠."
그 말에는 명백한 무시가 담겨 있었다. 도진은 그 무시를 낯설게 느끼지 않았다. 그가 알던 세상에서도 죽은 자는 산 자보다 항상 뒷전이었다. 다만 그 죽은 자 중 하나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 혼자 알아봐야겠군요."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짧은 소리를 냈다.
"에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아저씨는 지금 '살아있는 전설'이잖아요. 잘만 이용하면 방송이니 뭐니 돈도 벌 수 있을 텐데." 박정훈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도진은 대답 없이 문을 향해 걸었다. 등 뒤로 박정훈의 웃음소리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
회의실을 나서는 도진의 등 뒤에서, 박정훈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 아니, 별일 아니야. 그 오십 년 전 실종자 하나 살아 돌아왔다고 해서. 응, 진짜 웃기지. 저녁은 늦을 것 같아."
그 통화 내용을 도진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로비를 나서면서, 그는 벽면에 걸린 오래된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낡은 사진 속에는 방패를 든 남자 홀로 관문지기를 쓰러뜨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화풍은 조악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선명했다. 그림 밑에는 '서울의 방패, 홀로 관문을 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도진은 그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힐끗거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내가 아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그림 속 인물은 그가 알던 진실과 달랐다.
그림 속 남자는 혼자 서 있었다. 하지만 도진의 기억 속 그 순간에는, 진서가 왼편에서 지팡이를 짚은 채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재현이 뒤편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현은 화살통이 비어 마지막 화살을 활에 걸고 있었고, 이아리는 무릎을 꿇은 채 결계를 유지하느라 손끝을 떨고 있었다. 그 다섯 개의 숨소리가 한데 섞여 있던 순간을, 이 그림은 단 하나의 형체로 지워버렸다.
다섯이 함께 흘린 피가, 한 사람만의 영광으로 각색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각색 속에서, 이아리와 재현과 진서와 이현의 이름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그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지웠다.' 도진은 그렇게 직감했다. 우연이라면 이름 하나쯤은 남았을 것이다. 넷의 이름이 동시에, 그리고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것은 의도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직감은, 앞으로 그가 파헤쳐야 할 진실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으로 이어졌다.
도진은 액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유리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그림 속 남자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낯설었다. 저 그림 속에 자신만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방패는 도진의 것이었지만, 그것을 지켜낸 것은 넷의 힘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로비를 빠져나갔다.
로비를 빠져나온 그의 앞으로, 거리의 대형 스크린에서 낯선 문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보여줘, 우리 세상 - 실시간 던전 탐험 라이브.'
스크린 아래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무언가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쳐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 사이에서 유독 다급한 외침 하나가 도진의 귀에 걸렸다.
도진은 걸음을 멈추고 그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