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사물함 안쪽, 체육복 뭉치 아래 숨겨둔 플라스틱 사육통 하나가 오늘 내 하루의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뚜껑에 숨구멍을 낸 그 통 속에서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비밀을 지키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감각은 딱 3교시 쉬는 시간까지만 유효했다.
내 이름은 이도윤, 청솔고등학교 2학년, 그리고 이 학교에서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만만하다는 표현도 사실 미화된 편이었다. 정확히는 사냥감이었고, 매일 아침 등교하는 순간부터 하교하는 순간까지 누군가의 놀잇감으로 소비되는 존재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1학년 때 이미 다 겪었으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곤충도감을 교과서보다 더 열심히 들여다보는 애였고, 남들이 축구공을 쫓아다닐 때 나는 화단 밑에서 사슴벌레 애벌레를 찾아다녔으며, 그런 취향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올라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인기 요소로 전환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벌레 새끼, 곤충 변태, 더러운 놈. 박태준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계속 갱신되었고 매번 이전 것보다 더 저열해졌다. 마치 새로운 별명을 만드는 게 그의 유일한 창작 활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박태준은 이 학교의 왕이었다. 국회의원 아버지를 뒀다는 사실은 이미 전교생이 다 아는 배경 설정이었고, 그 배경 위에서 그가 저지르는 모든 짓은 결과 없이 흘러갔다. 교무실 상담? 학부모 면담? 그런 절차들이 그의 앞에서는 형식적인 서류 낭독회로 전락한다는 걸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1학년 때 담임이 박태준을 상담실에 불러 앉힌 적이 있었는데, 그날 오후 그 담임은 교장실로 불려갔고 다음 학기부터 다른 학교로 전보를 갔다. 우연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아침도 평범하게 시작됐다. 평범하게 망할 예정이었다는 뜻이다.
교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는 습관처럼 발밑을 살폈다. 신발 끈이 풀려 있진 않은지, 누가 뒤에서 다리를 걸지는 않을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게 이제는 거의 반사작용이 되어 있었다. 교실 문을 열기 전에는 항상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마치 물속으로 뛰어들기 전처럼.
등교하자마자 사물함 앞에서 정민호와 최성진이 어슬렁거리는 걸 봤을 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 둘은 박태준의 손발이었고, 손발이 움직인다는 건 몸통도 곧 움직인다는 신호였다. 정민호는 덩치가 크고 말이 없는 편이었고, 최성진은 그 반대로 늘 뭔가 낄낄대며 상황을 부풀리는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이 세트로 어슬렁거린다는 건 오늘 대본이 이미 짜여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애써 무심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지만 심장은 벌써 목구멍까지 올라와 있었다.
"야, 벌레." 박태준이 등 뒤에서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툭 찍었다. "오늘 급식 뭐냐?"
"...몰라."
"몰라? 씨발, 몰라가 뭐야. 반장한테 물어봐야지." 그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남을 괴롭히는 걸 진심으로 즐긴다는 게 목소리 톤에서부터 느껴졌다. 나는 그 즐거움의 재료가 되는 게 지긋지긋했지만 지긋지긋함을 표현하는 순간 폭력의 강도가 배가된다는 걸 이미 학습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뒤적거리는 척했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한 방어법이었다.
"어이, 대답 안 하냐?" 최성진이 옆에서 낄낄거리며 내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책상 위에 올려둔 필통이 튀어 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조용히 허리를 굽혀 필통을 주웠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윤서아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웃었다. 박태준의 여자친구이자 그의 유일한 정신적 동조자였다. "오빠, 얘 손 봐. 손톱 밑에 흙 낀 거."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손을 가리키며 코를 찡그렸다. "진짜 더러워."
더럽다는 말은 나를 향한 가장 정확한 요약이었다. 적어도 이 교실 안에서는.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반박할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반박하는 순간 이 자리에서 벌어질 일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걸 알아서였다. 흙은 손톱 밑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존재 전체에 붙어 있는 낙인 같은 거였고, 그 낙인을 지우는 방법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는 아무 일도 없는 척 흘러갔다. 국어 선생님은 시조의 운율을 설명했고 나는 노트에 곤충 다리 관절 구조를 스케치했다. 다리 마디 하나하나를 그려 넣으며 각도를 계산하는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게 내가 이 시간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폭력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이의 짧은 평화를 최대한 빨아먹으려 애썼다. 종이 울리기 5분 전부터 벌써 어깨가 굳는 느낌이 들었다.
담임 김상철 선생님은 종종 이 교실의 분위기를 눈치챈 듯 힐긋거렸지만, 정확히 개입하는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문제가 스스로 사라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혹은 문제에 손대는 순간 자기 자신이 문제에 삼켜질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편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그는 항상 창밖을 보는 척, 혹은 출석부를 정리하는 척하며 피해 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상철 담임은 이미 박태준 아버지 쪽에서 어떤 언질을 받은 상태였다. 그 언질의 내용을 그때는 몰랐다. 다만 그의 시선이 나를 스칠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회피의 각도만큼은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나는 사물함에서 사육통을 몰래 꺼내 화단 뒤편으로 갔다. 급식실로 몰려가는 아이들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오는 건 이제 익숙한 동선이었다.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나를 배신하지 않는 존재가 그 안에 있었다.
헤라클. 내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몸길이 6센티가 넘는 수컷 장수풍뎅이였고, 등딱지가 반들거리는 짙은 밤색이었으며, 뿔의 각도가 도감 사진보다 훨씬 위엄 있게 뻗어 있었다. 나는 매일 이 시간에 헤라클에게 젤리를 넣어주고 통 벽에 붙은 다리를 관찰하며 하루 중 유일하게 숨을 쉬는 시간을 가졌다. 통 안에서 헤라클이 앞다리로 톱밥을 헤집는 소리, 등딱지가 플라스틱 벽에 부딪히며 나는 작은 마찰음,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이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소음이었다.
"오늘도 별일 없었어." 나는 통 뚜껑을 열고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대답이 있을 거라 기대한 적도 없었다. 헤라클은 그저 젤리 위로 앞다리를 천천히 옮기며 먹이를 탐색했고, 그 느릿한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곤충한테는 표정이 없다는 게, 나한테는 오히려 위안이었다. 표정이 없으니 나를 비웃을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화단 뒤 담벼락 너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기 있네." 정민호의 목소리였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거였구나 싶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사육통을 품에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고, 통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변할 만큼 힘이 들어갔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또 몇 마디 욕을 듣고, 몇 번 놀림당하고, 그 정도로 끝나겠거니 생각했다. 그동안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담벼락 모퉁이에서 박태준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오늘 하루 중 가장 불길한 신호였다. 그 웃음의 각도, 눈썹이 살짝 올라간 모양, 걸음걸이의 여유로움까지, 전부 지금까지 겪어본 것과는 다른 종류의 위협이었다.
"뭘 그렇게 숨겨?" 그가 물었다. 대답할 필요도 없이 그의 눈은 이미 내 품속 사육통에 못 박혀 있었다.
정민호와 최성진도 뒤따라 담벼락을 돌아 나왔다. 둘의 입가에도 비슷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셋의 시선이 동시에 내 품속 플라스틱 통으로 모이는 순간, 나는 이게 단순한 놀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오늘은 대본이 다르다는 걸.
나는 아직 몰랐다. 이 순간 이후로 내 인생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꺾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방향이 지옥과 구원 두 방향 모두를 향해 동시에 열려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