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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온몸을 짓누르는 통증이었다. 얼굴이 부어 있는 게 느껴졌고, 입술이 갈라진 자리에서 마른 피 냄새가 났으며, 갈비뼈 쪽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들었다. 눈꺼풀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세상이 뿌옇게 두 겹으로 보였다. 나는 화단 뒤편,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 여기가 어디지. 왜 이렇게 아프지.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바닥에 흙과 자갈이 박혀 들었고, 그 짧은 마찰에도 신음이 새어 나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박태준 무리는 나를 그대로 두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응급처치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 오히려 내가 여기서 뻗어 있는 걸 발견되면 자기들이 불리해질까 봐 서둘러 자리를 뜬 거겠지. 씨발, 진짜. 말이 되나.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지는 게. 시계를 확인하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손이 떨려 화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손끝을 문질러 초점을 맞춘 끝에 흐릿하게 잡힌 시각은 오후 3시 40분. 5교시가 이미 끝나고도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수업을 몇 개나 빼먹은 건지 헤아리다가, 그런 게 지금 중요한가 싶어서 그만뒀다. 헤라클의 잔해가 아직 눈앞에 흩어져 있었다. 몸통은 발에 밟혀 반쯤 부서졌고, 다리 세 개가 흙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뿔은 어디로 튕겨 나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세 달 전, 인터넷 카페에서 어렵게 구해서 데려온 헤라클레스장수풍뎅이였다. 이름도 거창하게 헤라클이라고 붙여줬다. 사료 배합비를 몇 번이나 바꿔가며 먹였고, 습도 관리한다고 밤마다 사육통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었다. 그게 지금, 흙바닥에 짓눌린 잔해로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잔해를 손으로 조심스레 모았다. 손끝이 떨렸다. 눈물이 다시 차올랐지만 흘릴 힘조차 없었다. 그냥 눈두덩이만 뜨겁게 부어올랐다. 한참을 그렇게 쭈그려 앉아 있었다. 몇 분이었는지 몇십 분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자 세상이 다시 한 번 기울었다가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교무실로 겨우 몸을 끌고 갔을 때, 담임 김상철 선생님은 서류를 정리하다 나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이도윤, 너 왜 이래?"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보다 귀찮음이 더 크게 섞여 있었다. "넘어졌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진실을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미 몸으로 배운 뒤였다. 박태준이라고 이름을 말한들, 증거가 있냐고 물을 게 뻔했다. 증거는 없었다. 내 몸에 남은 멍 자국뿐이었고, 그건 증거로 채택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넘어져서 이 지경이 됐어? 병원 가봐." 그는 서류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펜을 놀리는 손끝이 형식적이었다. 마치 나라는 존재가 그의 하루 업무 목록에 끼어든 아주 작은, 그리고 성가신 항목처럼 느껴졌다. "아, 그리고 이거." 그가 검은 비닐봉투 하나를 내 손에 쥐여줬다. "화단 관리 아저씨가 죽은 벌레 있다고 치우라던데, 네 거 아니냐?" 나는 그 비닐봉투를 받아들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봉투 안에서 뭔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귀에 오래 남았다. 내가 키우던 생명의 사체 처리를, 그 사체를 만든 원인에 대해 단 한 마디 조사도 없이, 나에게 떠넘기는 이 학교의 방식이 그 봉투 하나로 완벽하게 요약됐다. 누가 밟았는지, 왜 밟았는지, 그런 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죽은 벌레가 있고, 그 벌레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있고, 그러니 처리는 그 학생이 하면 된다. 깔끔하고 효율적인 논리였다. 사람이 안 다치는 부분만 빼면. 나는 아무 말 없이 교무실을 나왔다. 병원에 갈 기력도, 집에 갈 기력도 없었다. 그저 걷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람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지금은 버거웠다. 교문을 나서면서도 몇 번이나 다리가 풀렸다. 신발 밑창에 뭐가 붙었는지 걸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청솔고등학교 뒷산은 등산로 초입까지만 정비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잡목 숲이었다. 나는 그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사람이 없는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부어오른 피부가 따끔거렸다.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통증에는 무감각해진 지 오래였다. 오늘 하루 새로 받은 통증들이 몸 여기저기에 겹겹이 쌓여서, 어디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지형이 나타났다. 초등학교 때 곤충 관찰하러 몇 번 왔던 낡은 폐동굴 입구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래전 방공호로 쓰였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었고, 나에게는 사슴벌레 서식지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그때는 친구들과 손전등 하나씩 들고 여기까지 오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런데 그 입구가 이상했다. 동굴 입구 주변 공기가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 열기처럼, 시야가 살짝 왜곡되는 느낌이었다. 입구 안쪽에서는 원래 없던 희미한 청록색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뭐지. 발이 저절로 멈춰 섰다.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는데, 통증과는 또 다른 종류의 두근거림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망쳐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날의 나는 상식이 작동할 여유 따위가 남아 있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이미 바닥까지 부서진 상태였고, 이상한 빛보다 더 이상한 일이 오늘 이미 벌어졌으니까. 폭행을 당하고, 애지중지 키우던 벌레를 잔해로 돌려받고, 그 잔해를 치우라며 비닐봉투를 건네받은 하루였다. 이제 와서 청록색 빛나는 동굴 하나가 더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동굴 입구에 가까이 다가서자 눈앞에 반투명한 파란 창이 갑자기 떠올랐다. [경고: 던전화 진행 중인 구역입니다.] [진입 시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존재합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헛것을 보는 건가. 오늘 너무 세게 맞아서 뇌가 고장난 게 아닌가. 손을 뻗어 창을 만져보려 했지만, 손가락은 그대로 창을 통과했다. 아무 감촉도 없었다. 그런데 글자는 여전히 선명하게 눈앞에 떠 있었다. 하지만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한 걸음 더 다가서자 글자가 선명해졌다. 마치 내가 다가오는 걸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처럼. 이게 진짜라면. 뉴스에서 몇 번 봤던,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다는 그 이상현상. 게이트, 던전화. 나랑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저기 누구 있나?" 등산객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만약 저 사람에게 이 이상한 빛이 발견된다면, 만약 이곳이 진짜 위험한 곳으로 밝혀진다면, 이 신비한 공간은 곧 봉쇄될 것이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통제선이 쳐지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순간 이 동굴을 지켜야 한다는 이상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아니, 정확히는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나만 알고 싶다는, 설명할 수 없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등산객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낙엽 밟는 소리,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커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청록색 빛이 새어나오는 동굴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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