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탑라인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은 밖에서 보기만 해도 규모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유리로 된 외벽이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고, 정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목이 아플 정도로 건물을 올려다봐야 했다. 로비 유리벽에 걸려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는 진하람의 최근 방송 하이라이트가 무한 재생되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가는 방문객들이 하나같이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올려다보는 걸 보면서, 나는 이게 바로 오십만이라는 숫자의 무게구나 싶어 새삼 압도됐다.
로비 바닥은 대리석이었고, 천장에는 조명이 별자리처럼 박혀 있었다. 안내데스크 옆에는 진하람의 실물 크기 홀로그램 배너가 서 있었는데,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팬들도 몇 명 보였다. 단주엔터의 사무실 크기가 딱 이 로비 절반쯤 될까 싶은 생각이 스치자, 나는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강도현씨, 맞으시죠?"
안내데스크에서 신원 확인을 마치자, 정장을 입은 스탭 하나가 다가와 명찰을 확인하며 물었다. 목에 걸린 사원증에는 '방문객 응대팀'이라고 적혀 있었다.
"네, 맞습니다."
"산군 버튼... 아, 단주엔터 소속이시네요."
그 말투에서 이미 뭔가가 느껴졌다. 소속사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스탭의 표정에 미묘한 낙차가 생겼다는 걸, 나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놓치지 않았다. 방금까지의 사무적인 친절함이 한 톤 낮아지고, 눈빛이 나를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뭐, 익숙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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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튜버 업계에는 명시된 규정은 없지만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한다. 대형 소속사 소속 라이버를 '성골'이라 부르고, 중소 소속사나 개인 사업자 라이버는 '신골'이라 낮춰 부르는 은어가 그 예다. 성골과 신골 사이의 협업은 대체로 성골 쪽이 호의를 베푸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신골이 먼저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는 대부분 정중히, 혹은 정중하지 않게 거절당한다. 이 서열은 구독자 수나 방송 퀄리티와는 별개로, 순전히 소속사의 규모와 자본력에 따라 나뉘는 계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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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안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진하람 본인이 아니라, 그의 담당 매니저라는 사람이었다. 명함에는 '탑라인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총괄'이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고, 이름은 오세형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이는 삼십 대 초반쯤으로 보였는데, 손목에 찬 시계가 내 한 달 방송 수익보다 비싸 보였다.
"강도현씨, 짧게 인사 나누는 자리인 건 알고 오셨죠?"
오세형이 시계를 확인하며 물었는데, 그 말투가 벌써부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가득해서, 나는 속으로 이 새끼 벌써부터 이렇게 나오네 싶었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밀폐용기를 내밀었다.
"네, 알고 왔습니다. 이거 하람씨께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던전 심연 지대 자수정버섯인데, 요리 방송에 한번 써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밀폐용기 안에는 은은하게 자수정 빛을 내는 버섯 세 송이가 들어 있었다. 채집하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린 놈들이었고, 심연 지대 특유의 습기와 어둠 때문에 두 번이나 발을 헛디딜 뻔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오세형은 밀폐용기를 받는 시늉만 하고는 그대로 옆에 있는 다른 스탭에게 넘겼다. 손끝으로 살짝 잡았다가 바로 놓아버리는, 마치 오염된 물건을 다루는 듯한 손짓이었다.
"아, 이런 건 저희가 다 검수를 거쳐야 해서요. 원산지 증명서 같은 거 있으세요?"
"직접 채집한 거라서 증명서는 없습니다."
"그럼 곤란한데요."
오세형이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그 웃음 안에는 조금의 배려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전혀 웃지 않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었다.
"이런 걸 검증 없이 하람씨한테 전달하면, 저희 쪽에서 관리 소홀로 문제가 될 수 있어서요. 이해해 주시죠?"
이해해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아 이거 이해 못 하겠는데 어쩌지 싶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삼 년간 던전을 드나들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쓸데없는 곳에서 힘 빼지 말라는 거였다. 여기서 화를 내봐야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뿐이었다.
"그럼 하람씨한테 잠깐 인사만이라도..."
"오늘 스케줄이 워낙 빡빡해서요. 신골... 아, 실례. 소규모 소속사 분들은 매번 이렇게 요청하시는데, 저희가 다 받아드릴 수는 없어서요."
신골이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뭔가 목뒤가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저건 실수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저 인간의 머릿속에는 이미 나 같은 부류를 부르는 단어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박혀 있는 거였다.
하-.
이 씨발.
나는 삼 년간 던전에서 A급 등급을 받기까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넘겨봤는지 모른다. 손톱 밑에 흙이 낀 채로 밤을 새우며 몬스터의 습성을 공부했고, 동료 없이 혼자 던전에 들어가 살을 뚫고 나오는 발톱을 피해가며 살아남았다. 그런 나한테 지금 이 사람은, 재료 하나 전달하는 걸 관리 소홀 운운하며 막고 있었다. 증명서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그 말이, 사실은 '너 같은 급이 뭘 감히'라는 말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재료는 제가 다시 가져가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며 용기를 되받으려 손을 뻗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두구웅-
건물 전체가 낮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진동이었는데, 처음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지반 자체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지진인가 싶었지만, 곧 로비 어딘가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스크린에 재생되던 진하람의 방송 화면이 갑자기 붉은 경보 문구로 뒤덮였다. 방금까지 웃으며 요리를 하던 화면이 순식간에 새빨간 경고창으로 바뀌는 그 낙차가 묘하게 소름을 돋게 했다.
"지하 3층 게이트, 등급 변동 감지, 전 직원 대피..."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동시에, 오세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나를 내려다보던 그 여유로운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게이트가... 왜 지금..."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태블릿이 바닥에 떨어졌다. 액정에는 뭔가 알림창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고, 그걸 주울 생각도 못 한 채 오세형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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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라인엔터테인먼트 사옥 지하에는 D급 규모의 소형 던전 게이트가 있었다. 방송용 콘텐츠 촬영을 위해 관리 등급을 유지한 채 운영되는 곳으로, 정기적으로 몬스터를 소환해 라이버들이 안전하게 사냥 콘텐츠를 찍을 수 있도록 설계된 시설이었다. 등급 변동이란, 게이트 내부 몬스터의 위험도가 관리 범위를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대형 소속사들이 이런 사설 게이트를 유지하는 건 그만큼 콘텐츠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그만큼의 관리 비용과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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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이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출입구로 몰려가는 소리, 어딘가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음 아래로 낮게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스탭들도, 로비에 서 있던 방문객들도 이제는 누구 하나 예의 차릴 여유 없이 서로를 밀치고 넘어지며 출구 쪽으로 뛰고 있었다.
쿠웅. 쿠웅.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쪽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한 걸음씩 내딜 때마다 그 진동이 로비 바닥의 대리석을 타고 발바닥까지 전해졌다.
"저기, 뭐가 나와요! 다들 피하세요!"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계단 입구가 통째로 무너져내렸고, 먼지와 콘크리트 파편이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사람 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검은 갑각으로 뒤덮인 형체였다. 등껍질에서는 아직도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고, 다리 관절마다 관리 등급을 나타내는 노란 태그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태그의 색이 이미 붉게 변색된 채였다.
캬아아아악-
오세형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로비에 남아 있던 몇 명은 이미 넘어져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중 한 여자가 뒤로 넘어진 채, 두 손으로 바닥을 밀며 뒷걸음질 치려다 그마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몬스터의 앞다리가, 마침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그대로 내려찍히려는 순간, 나는 이미 그쪽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