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만렙 헌터의 버튜버 부캐

5화

테코 입레 방송일이 정해졌다. 대표는 이걸 '단주엔터테인먼트 창립 이래 최대 프로젝트'라고 부르며 잔뜩 홍보에 힘을 실었는데, 회사 SNS는 물론이고 관련 커뮤니티마다 예고편이 돌았고, 심지어 대표는 회사 로비에 커다란 배너까지 걸어놨다. 배너에 박힌 내 얼굴 사진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게 무슨 조리돌림인가 싶었지만, 정작 나는 방송 준비를 하는 내내 신인다운 연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오늘은 진짜 초보처럼 하셔야 해요. 알겠죠?" 허지원이 방송 시작 직전까지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했다. 리허설 대본까지 따로 뽑아와서는 손짓 하나, 말투 하나까지 지적하고 있었는데, 그 열정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긴장한 척, 무서운 척, 아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헷갈리는 척. 그리고 절대, 절대 발차기 같은 거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네, 압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 척을 하는 게 방송 진행 실수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깨닫게 됐다. 카메라 드론 조작법을 다시 손에 익히는 것도, 신인 특유의 서투른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것도, 몸에 새겨진 습관을 지우는 일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으니까. --- 비정규 테코 입레는 대상 던전이 지정된 상태로 진행된다. 이번에 선택된 곳은 시 외곽에 위치한 소형 게이트, 등급은 D급 초보자용 던전이었다. 위험도는 낮지만, 정식 탐사대 동행 없이 라이버 혼자 입장한다는 점에서 규정상 비정규로 분류됐다. 시청자들은 입구부터 실시간으로 함께 지켜보게 되는 구조였다. D급 던전은 협회 기준으로 몬스터 평균 전투력이 신입 헌터 세 명분 이하로 유지되는 곳을 뜻한다. 스폰 개체 수와 종류는 협회 관리국이 주기적으로 관측해 표준화하고, 표준을 벗어나는 순간 즉시 폐쇄 조치가 내려지는 게 원칙이다. 그러니까 이론상으로는, 초보자가 혼자 들어가도 크게 위험할 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이론상으로는. --- 입구에 서서 채팅창을 다시 확인하니, 이번 방송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모여 있었다. 동시 시청자 수가 개인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는데, 숫자가 올라가는 속도를 보고 있자니 손끝이 살짝 저릿해졌다. 화면 한구석에 진하람의 채널명도 잠깐 스쳐 지나가는 걸 보고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저 인간이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할 틈도 없이 채팅은 다시 다른 이름들로 뒤덮였다. "저, 저 지금 처음 들어가 보는 거라 너무 긴장되네요." 최대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는데, 사실 이 게이트는 몇 년 전 A급 승급 시험 준비할 때 이미 열 몇 번은 들어가 본 곳이었다. 입구의 돌바닥 무늬, 습기 찬 공기 냄새, 저 안쪽에서부터 은은하게 풍겨오는 마나 특유의 비린 향까지, 전부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초입은 예상대로 조용했다. 나는 짐짓 두리번거리며 어설픈 손짓으로 카메라 드론을 조작했고, 채팅창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산군 진짜 초보 맞나봄ㅋㅋㅋ 손 떠는거 봐" "귀엽다ㅋㅋ" "드론 저렇게 조작하는 사람 처음 봄ㅋㅋ 반대로 가잖아" 나는 그 채팅들을 보며 속으로 안심했다.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다. 신인 코스프레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이대로 삼십 분만 더 버티면, 오늘 방송도 무사히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문제는 던전 삼십 분 지점, 예정에 없던 몬스터 무리와 마주친 순간부터였다. --- E급 게이트라도, 개체 수가 정해진 표준 스폰과 다를 경우 관리 미비로 분류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는데, 규정상 세 마리 이하로 관리되어야 할 초식형 몬스터 무리가, 실제로는 열 마리가 넘게 한 지점에 몰려 있었다. 협회 관측 자료와 실제 현장 사이의 오차가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게이트는 얼마 전부터 내부 마나 흐름이 불안정해져 관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태였다고 했다. --- "어, 어어..." 나는 처음엔 신인다운 당황을 연기하려 했다. 몸을 살짝 떨고, 뒷걸음질을 치며, 화면 밖으로 살짝 나가는 것처럼 카메라 각도를 흔드는 것까지 계산해뒀다. 하지만 몬스터 무리가 정상 수치를 넘겼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놈들이 내 쪽을 향해 일렬로 돌진해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끝의 무게중심을 낮추고 있었다. 연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과, 이 개체 수라면 정면 대응이 훨씬 안전하다는 판단이 머릿속에서 충돌했는데, 결국 몸이 판단을 먼저 내려버렸다. 하-. 이 씨발, 몸이 먼저 나가는 걸 내가 어떻게 말려. 첫 번째 개체가 뛰어드는 순간, 나는 카메라 드론을 옆으로 밀어내며 그대로 놈의 옆구리를 발끝으로 걷어찼다. 퍽! 놈이 그대로 튕겨 나가 옆에 있던 두 번째 개체와 부딪혔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회전시켜 세 번째, 네 번째 개체의 다리를 연속으로 걷어차 균형을 무너뜨렸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개체가 좌우에서 동시에 달려드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몸은 이미 그것들의 궤적을 계산하고 있었다. 왼쪽으로 반보, 오른쪽으로 몸을 낮추면서, 두 팔로 관절 사이 얇은 틈을 짚어 넘기는 동작까지, 전부 A급 시험장에서 몇백 번은 반복했던 움직임이었다. 채팅창의 반응 속도가 갑자기 확 느려졌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이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멈춰 있었던 것 같았다. "...뭐야 지금?" "산군 방금 뭐 한 거야" 연기를 계속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다섯 마리째 몬스터를 맨손으로 제압하고 있는 중이었다. 관절 사이 얇은 틈을 정확히 짚어내는 손동작, 반동을 이용한 회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타격을 내는 그 모든 동작이, 신인 스트리머의 몸에서 나올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걸 시청자들이 눈치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콰악- 일곱 번째 개체의 뒷다리를 꺾어 넘기는 소리가 마이크에 그대로 잡혔고, 여덟 번째 개체는 내가 뻗은 팔꿈치에 정확히 목덜미를 맞고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이쯤 되니 연기고 뭐고 없었다. 그냥 몸이 아는 대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거 편집 아니지?" "실시간인데 뭔 개소리야" "산군 버튼 뭐하는 사람이야 진짜로" "이거 헌터협회 시험 영상에서 본 동작 아니냐" 마지막 채팅을 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이미 손은 아홉 번째, 열 번째 개체를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흐름이었다. 몬스터 무리가 한 지점에 몰려 있었던 탓에, 하나를 처리하는 순간 다음 개체가 자동으로 사거리에 들어오는 상황이었고, 그 흐름을 억지로 끊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한 선택이었다. 마지막 개체가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카메라를 돌아봤다. 렌즈 너머로 폭주하듯 올라가는 채팅창의 속도가, 화면이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손끝이 살짝 떨렸는데, 그게 몬스터 무리를 상대해서 생긴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큰 사고인지 실감해서 생긴 떨림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동시 시청자 수 그래프가 방송 화면 한 귀퉁이에서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개인 최고 기록이라고 좋아했던 숫자가, 이제는 우스울 정도로 낮은 숫자가 되어 있었다. "어... 이거..."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진 그 순간, 채팅창 최상단에 후원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탑라인엔터_공식] 후원금 100,000원 "이건 좀 더 자세히 봐야겠는데요."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나는 이 사고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탑라인엔터가 왜, 대체 왜 지금 이 순간에 이런 메시지를 남긴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짐작이 되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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