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테코 입레를 결정한 이후, 회사는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문제는 이걸 그냥 밀어붙일 수 없다는 데 있었는데, 대표는 '비정규 던전 탐사사'라는 단어가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단 내가 일반 방송에서 신인다운 이미지를 더 확실하게 다져놔야 한다고 판단했다.
"콜라보든 던전 입레든, 사람들이 도현씨를 진짜 초보로 믿게 만들어야 나중에 반전 효과가 커요. 지금 쌓는 이미지가 나중에 다 자산이 되는 거예요."
대표는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열심히 그려가며 설명했다. 방송 스케줄, 콜라보 리스트, 홍보 타이밍까지 촘촘하게 짜여진 계획표를 보고 있자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그 순간 내가 이미 초보인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초보인 부분이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던전에서 삼 년을 버틴 사람이 방송 하나 못 켠다는 게 말이 되나. 그때는 그렇게 자신했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됐지만.
첫 번째 문제는 콜라보 방송에서 터졌다. 다른 소속사 라이버와 합동 방송을 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방송 시작 십 분 만에 마이크 볼륨 설정을 잘못 만져서 내 목소리가 갑자기 두 배로 커지는 사고를 냈다. 마우스로 슬라이더를 옮기다가 뭘 잘못 눌렀는지, 갑자기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내 육성이 방 전체를 흔들었다.
"어, 어라, 잠깐만요."
허둥지둥 설정을 만지는 사이 채팅창은 이미 웃음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산군 목소리 갑자기 스피커 터짐ㅋㅋㅋㅋ"
"신인력 200%"
"고막 테러당함 ㅜㅜ"
상대편 라이버는 능숙하게 그 상황을 받아치며, "산군님 지금 되게 놀랐죠? 저 처음 방송할 때 카메라 뒤집어놓고 삼십 분 방송했었잖아요, 다 그런 거예요!" 하며 웃음으로 넘겼는데, 나는 그 순간 삼 년 동안 던전에서 몬스터 상대할 때는 이런 실수 한 번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억울해졌다.
하-.
이게 무슨 꼴인지. 관절 틈으로 칼을 꽂아 넣을 때는 손끝이 흔들린 적도 없는데, 마우스 슬라이더 하나에 십 분을 헤매고 있으니 원.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아하하, 제가 아직 세팅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여러분." 방송용 존댓말이란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마음을 아무리 험하게 굴려도 겉으로는 그저 부끄러워하는 신인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두 번째 사고는 그다음 방송에서 벌어졌다. 방송용 오버레이 프로그램을 다루다가, 실수로 개인 메모장 화면을 그대로 송출한 것이었다. 원래는 다음 콜라보 일정을 확인하려고 잠깐 띄워놓은 창이었는데, 캡처 프로그램이 그 창을 화면 전체로 인식하는 바람에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뿌려지고 말았다. 메모장에는 다음 콜라보 일정과 함께, '자수정버섯 재도전 - 하람씨 방송 팬미팅 재신청'이라는 문구가 큰 글자로 떠 있었다.
"어? 하람이 형 팬미팅?"
채팅창이 그 문구를 캡처해서 퍼가는 데는 오초도 걸리지 않았다.
"산군 버튼 진하람 팬이었음?"
"이거 대박인데ㅋㅋㅋ"
"재신청이래 재신청 ㅋㅋㅋㅋㅋㅋ 한 번 떨어졌었나 봄"
나는 진땀을 흘리며 화면을 서둘러 껐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는데, 이게 긴장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사실 하람이라는 사람과는 콜라보 자리에서 인사만 몇 번 나눈 정도였는데, 방송을 몇 번 챙겨보다 보니 팬미팅에 관심이 생긴 것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메모가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노출될 줄이야.
"저, 저건 그냥, 콜라보 관련 정보 정리해둔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산군 목소리 떨림ㅋㅋㅋ 진짜 팬 맞네"
채팅창의 반응이 뜨거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말을 더듬었다. 삼 년간 던전에서 마주쳤던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지금 이 채팅창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그런 실수들이 쌓이는 사이, 나는 다른 신인 라이버들의 방송을 참고하기 위해 종종 동기들 채널을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다. 남들은 어떻게 방송을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피하는지 보고 배우자는 마음이었는데, 사실은 그보다 순위표에 걸린 이름들을 보며 초조해지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채널이 하나 있었다.
'우레꽃 보라'.
나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동기였는데, 노란 메시가 들어간 캐릭터 디자인이 인상적이었고, 구독자는 이미 삼만 이천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방송 썸네일부터 색감이 화려했고, 제목도 눈에 쏙 들어오게 뽑혀 있었다.
"오늘도 광고 하나 들어왔어요! 여러분 덕분이에요!"
그녀의 방송을 잠깐 틀어놓고 들어보니, 텐션 높은 목소리와 시원시원한 진행이 채팅창을 쉴 새 없이 채우고 있었다. 리액션 하나하나가 크고 명확했고, 채팅을 읽어주는 속도도 나보다 두 배는 빨랐다. 저건 재능인가, 아니면 그냥 연습량 차이인가.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같은 삼 개월차인데 이 정도 격차라니, 솔직히 배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던전 안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했는데, 방송이라는 필드에서는 왜 이렇게 서투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업계가 얼마나 여성 라이버에게 관대하고 남성 라이버에게 냉정한지도 다시 한번 느껴졌다. 나는 그 격차의 원인이 순전히 실력 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댓글창만 봐도 "보라님 목소리 힐링이에요" "오늘도 예쁘시네요" 같은 무해한 칭찬이 넘쳐나는 반면, 내 방송 댓글창은 절반이 놀림이었으니까. 물론 그 놀림도 나름 애정이 섞인 거라는 건 알지만.
---
세 번째 사고는 정말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방송 중 채팅으로 시청자 참여형 퀴즈를 진행하던 도중, 누군가 장난삼아 '던전에서 실제로 위험한 상황 겪어본 적 있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걸 그냥 재미로 넘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 대답이 너무 진지하게 나왔다. 머릿속에 그날의 감각이 그대로 떠올랐던 탓이다.
"음, 있죠. 관절 틈으로 파고들어서 목덜미 찌를 때는 항상 반동을 계산해야 하는데, 그거 안 하면 손목이 그대로 꺾여버리거든요. 특히 골렘류는 관절이 두꺼워서 힘 조절을 잘못하면—"
말을 내뱉는 동시에 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채팅창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거 방금 게임 얘기죠?"
누군가의 질문에, 나는 황급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네네, 게임 얘기예요. 요즘 하는 던전 시뮬레이터 게임에서요. 그 게임 되게 리얼해서, 자꾸 진짜인 것처럼 얘기하게 되네요, 하하."
다행히 그렇게 넘어갔지만, 심장은 한참 동안 이상하게 빨리 뛰고 있었다. 방송 후 확인한 채팅 다시보기에서, 몇 명은 이미 내 말투가 게임 얘기치고는 너무 구체적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산군 버튼 뭔가 이상한데"
"진짜 던탐사 자격증 있는 거 아니야?ㅋㅋ 설마"
"목소리 갑자기 진지해진 거 봤음? 게임 얘기하는데 왜 저렇게 심각해짐"
댓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조만간 있을 테코 입레가 이 정도 의심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허지원은 그날 저녁 그 댓글들을 캡처해서 나에게 들이밀었다. 노트북을 든 손이 살짝 떨리고 있는 걸 보니, 이 사람도 나름 심각하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도현씨,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벌써 눈치채기 시작했는데."
"괜찮아요. 그냥 재밌어서 그러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 위장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슬쩍 계산을 해보고 있었다. 마이크 볼륨도 못 맞추고, 메모장 하나 제대로 못 가리고, 게임 얘기 하나 자연스럽게 못 지어내는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얇은 가림막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그리 오래 남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