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잘렸더니 감정사 만렙이라니

4화

경매장이라는 곳은 한 마디로 말해, 위계질서가 참으로 살벌한 무림맹의 대전이었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던전물자 경매장. 유리로 된 높은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으니, 마치 옛적 무림 명문세가의 총단을 흉내 낸 듯한 위세였다. 정장을 갖춰 입은 자들과, 가슴에 통행패*를 매단 헌터들이 뒤섞여 있었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 소리마저 저마다의 신분을 과시하는 듯하였다. *통행패: 헌터 자격증. 여기서는 목에 건 신분증을 이름. 본좌는 박태식을 따라 접수처로 향했다. 회전문을 지나며 문득 든 생각인즉, 이곳의 문마저도 위아래를 가리는 듯 유난히 무겁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문호부터가 문벌귀족*의 것이로다.' *문벌귀족: 대대로 이어온 명망 높은 가문. 여기서는 지위 높은 자들을 비꼬아 이름. 그러나 접수 직원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흘겨보는 그 시선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하였다. "소속이 어디시죠?" "제3부두 회수반이오." "...아, 회수반. 저쪽 대기석에서 기다리세요."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구석의 낡은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인 자리였다. 페인트가 벗겨져 얼룩덜룩한 그 의자들은, 화려한 로비의 대리석 바닥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물異物이었다. 그곳에는 본좌와 박태식뿐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회수반 인부 몇이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낡은 안전화를 신고, 하나같이 눈치를 보는 낯빛이었다. 본좌는 그 대우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참으로 하안불경*이로다.' *하안불경: 눈이 낮아 공경할 줄 모름. 사람을 겉모습으로 무시함을 이름. 의자에 앉으니 등받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이 자리에 앉는 자들의 신세를 대변하는 듯한 소리였다. 본좌는 그 소리마저 거슬려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때, 정장 차림의 남자 하나가 다가와 대기석 명단을 확인하며 물었다. 손에 든 서류판을 톡톡 두드리는 손짓이 제법 거만하였다. "강도현 씨? 어제 마정석 파편 감정하신 분?" "그렇소이다." 남자가 픽 웃으며 말했다. "전에 뭐 하셨어요? 헌터 출신 아니시죠?" "...경비회사에 15년 근무하였소." "사무직이시네. 그러니까 감정기 오류 잡은 게 그냥 운이었단 말씀이시겠네요." 본좌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자, 참으로 방자하도다. "운이 아니라 본좌의 안목이었소." "안목이요? 헌터 등급도 없으신데?" "등급이 없다 하여 눈이 없는 것은 아니외다."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뒤에서 다른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뭐래, 사무직 출신이 안목이래." "운이지 뭐, 어제 재수 좋았던 거 아니야?" "저러다 자기가 무슨 전문가라고 우기는 거 아니냐?" 웃음소리는 파도처럼 겹쳐 밀려왔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본좌의 뒤통수가 화끈 달아올랐다. 이는 결코 분노가 아니요, 다만 실내 온도가 다소 높은 탓이리라. 냉방이 시원찮은 건물이로다, 본좌는 억지로 그리 여겼다. 박태식이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 "참아. 여기서 대들면 회수반 전체가 블랙리스트 오른다." "본좌가 참는 것이 어디 이번이 처음이겠소." "...그, 그건 그렇지." 본좌는 어금니를 꾹 물었다. 15년 무결근의 세월 동안 갈고닦은 인내심이 이럴 때 쓰일 줄은 미처 몰랐었다. 부장의 잔소리를 견디던 그 인고忍苦의 나날들이, 오늘 이 낡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다시금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무공武功의 재발현이로다. 시간이 흘러 경매가 시작되었다. 단상 위의 경매사는 마이크를 잡고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청산유수: 물 흐르듯 말을 잘함. "자, 다음 물품입니다. 3급 게이트 산출, 마정석 파편 일체입니다. 감정 결과 순도 상위권으로 판정되었으며..." 본좌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뇌까렸다. '저 파편이 곧 어제 본좌의 안목으로 걸러낸 옥석玉石이거늘.' 경매는 예상대로 좋은 값에 낙찰되었다.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서로 손을 들어 값을 부르는 광경이, 본좌의 눈에는 마치 무림 고수들이 보검을 두고 다투는 형국으로 비쳤다. 낙찰이 끝나자, 회수반 몫으로 나눈 정산금이 박태식을 통해 전달되었다. "오늘 네 몫은 이거다." 45만 원. 어제의 인센티브에 비하면 소박하였으나,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봉투를 받아 두께를 가늠하는 손끝의 감각이, 어제보다는 확연히 가벼웠다. 본좌는 그 돈을 받아들며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돈은 벌었으되, 존엄은 저잣거리 바닥에 떨어졌도다.' 박태식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래도 이만큼이면 어디야. 나 처음 여기 왔을 때는 회수반이라고 아예 대기석에도 못 앉히더라." "...그것은 참으로 야만적이었구려."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거지." 본좌는 아무 말 없이 봉투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아졌다는 것이 이 정도라면, 예전은 대체 어떠했단 말인가.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였다. 경매장을 나서는 길, 본좌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낡은 안전화, 후줄근한 작업복. 15년 전 신입 사원 시절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때는 신입 사원증을 목에 걸고 이 비슷한 낮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지금은 통행패 하나 없이 회수반 몫으로 앉아 있으니, 세월이 흘러도 본좌의 처지는 어찌 이리도 원점으로 회귀한단 말인가. '참으로 윤회輪回로다. 다만 이번에는 던전이라는 것이 끼어들었을 뿐이로구나.' 그때, 대기석 근처에서 소란이 일었다. "야, 저기 촬영팀 왔다!" 번쩍이는 카메라 조명과 함께, 화려한 옷차림의 청년 하나가 경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목에는 값비싼 통행패 대신 온갖 액세서리를 두른 그 청년은, 걸음걸이부터가 이미 시선을 끌기 위한 계산된 몸짓이었다. 그 뒤로 카메라를 든 여성이 따라붙었다. "안녕하세요! 《다이브채널》의 이하준입니다!" 청년의 목소리는 경매장 전체에 울릴 만큼 쾌활하고 컸다. 헌터들과 직원들이 하나둘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조금 전까지 본좌를 향해 코웃음 치던 직원들마저, 이제는 청년을 향해 앞다투어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본좌는 그 인기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은 무엇이오?" 박태식이 답했다. "방송인이야. 던전 관련 콘텐츠로 유명한 애. 여기서 촬영하는 걸 처음 보는 건 아닌데... 오늘은 웬일로 부두 쪽 게이트에서 생방을 한다더라." "방송인이라 하면, 강호를 떠도는 유세객遊說客 같은 자를 이름인가." "...뭐, 비슷한 거지." "부두 쪽 게이트라면..." "어제 그 소멸된 게이트 근처지. 잔여 개체 없는지 확인하러 가는 모양이야." 청년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계속 떠들었다. "오늘은 특별히! 어제 소멸된 게이트 현장을 직접 가보려고 합니다! 협회에서도 안전 확인 다 됐다고 하니까, 여러분 기대하셔도 좋아요!" 본좌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소멸된 게이트라 하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곳이라면. '그곳에 무엇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일이거늘.' 박태식이 코웃음을 쳤다. "저런 거 다 안전하다고 협회 도장 받고 하는 거야. 걱정할 거 없어." "...그렇겠지." 그러나 본좌의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껄끄러움이 남아 있었다. 마치 큰 싸움을 앞두고 손끝이 저릿해지는 그 느낌과 비슷하였다. 하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본좌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본좌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본좌는 이미 오늘의 굴욕으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서구에 알림이 떴다. [《다이브채널》 - 인천 제3부두 특별 생방송, 오후 3시 시작.] 본좌는 그 알림을 무심히 넘겼다. 요망한 손바닥만 한 기계는 오늘도 쓸데없는 소식만 물어 오는구나, 그리 여기며 화면을 닫았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인천의 낮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던전이 나타난 이후로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으니,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먹고, 여전히 출퇴근을 하고, 여전히 서로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 틈에 헌터라는 자들과 던전이라는 것이 끼어든 것뿐이었다. 본좌는 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잠시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의 굴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45만 원. 존엄과 바꾼 그 금액이 안주머니에서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몇 시간 후, 같은 부두 근처를 지나가던 본좌의 발걸음이 문득 멈춰서게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버스가 부두 근방을 지날 즈음, 창밖에서 심상치 않은 소음이 들려왔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그 사이로 섞여 드는 낯익은 청년의 외침 소리였다. 본좌는 그 소리에 무심결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것은... 아까 그 유세객의 목소리가 아니던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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