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식탁 위에 놓인 것들을 하나씩 세어보았다. 갓 구운 빵, 버터, 딸기잼, 그리고 오늘 아침 정원에서 딴 라즈베리. 계절에 맞춰 준비한 것들이었다. 이 저택에서 10년을 살며 나는 남작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꺼리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현성 남작은 식탁 맞은편에서 커피 잔을 든 채, 시선은 창밖에 두고 있었다. 10년을 함께 산 남자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혼을 요구하겠소."
짧았다. 마치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하듯, 별다른 감정도 없이 그 말을 뱉었다.
'잘못 들은 건가.'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그 말이 진심이라는 증거였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되물었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은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이혼을 요구하겠다고 했소."
그가 다시 한번, 이번에는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내가 못 알아들었을까 봐 배려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 배려가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내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남작이 알 필요는 없었다. 나는 식탁 아래로 손을 내려 무릎 위에서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당신도 알 텐데."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아이를 갖지 못한 것. 그것이 이 결혼의 유일한 흠이었고, 그는 이제 그 흠을 더는 참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내 아버지는 몰락한 지방 가문의 셋째 딸이었던 나를 이 저택으로 시집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남작가의 안주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자리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10년을 믿은 대로 살았다. 살림을 배우고, 장부를 익히고, 이 저택의 모든 창고와 회계와 사용인들의 이름과 성정까지 외웠다. 겨울이면 어느 창고에 곰팡이가 슬기 쉬운지, 여름이면 어느 우물의 물맛이 변하는지도 알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의 헌신이었다.
"그래서, 상대는 정해지셨나요."
질문이 입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렇게 담담하게 물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작은 잠깐 침묵하더니, 처음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 미안함 같은 것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미 아이가 태어났소."
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아이가... 있었다고?'
머릿속으로 계산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미 태어났다는 건 최소한 몇 달 전부터 진행된 일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몇 달 동안 이 저택의 모든 회계를 정리하고, 겨울 창고를 채우고, 사용인들의 급여를 조정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이 사람은 다른 여자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몇 개월이나 되었나요."
"석 달."
짧은 대답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묻는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럼 아이 어머니는, 제가 알 만한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모른다고 하면 그만인 일을, 그는 굳이 침묵으로 남겼다.
"그럼 저는 언제 이 집을 나가면 되나요."
남작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내가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예상했던 반응은 아마 눈물이나 항변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매달리는 모습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그런 만족을 줄 생각이 없었다.
"빠를수록 좋겠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냅킨을 접어 식탁 위에 올려두는 손짓마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오늘 오후에 손님이 올 거요. 정식으로 인사시킬 사람이니, 자리를 비켜주면 고맙겠소."
"제가 알던 사람인가요."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등을 돌렸을 뿐이었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그제야 실감했다. 오늘, 이 저택에서, 나는 이미 안주인이 아니었다.
식당을 나서는 그의 등을 보며 나는 10년 전 이 저택에 처음 들어서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스물둘이었고, 이 커다란 저택이 무섭도록 낯설었다. 현관 앞에서 사용인들이 줄지어 인사를 올리던 그 순간, 나는 손이 떨려 부케 하나 제대로 들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 저택의 창고 열쇠가 몇 개인지, 어느 방 마루가 삐걱거리는지, 어느 사용인이 겨울마다 감기를 앓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식당에 홀로 남아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홍차를 내려다보았다. 손을 뻗어 잔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침착하자.'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눈물이 아니라 계획이었다.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챙길 것인지, 얼마나 시간이 있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나에게 더 익숙한 방식이었다.
창밖으로 마차 소리가 들려온 건 그로부터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온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착이라니.
대문 앞에 낯선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가 문을 열자, 안에서 내린 것은 젊은 여자였다. 옷차림은 수수했지만 태도에는 이상한 여유가 있었다. 품 안에는 강보에 싸인 아이가 있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 여자로군.'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설마.'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