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폐하, 순진한 딸은 죽었어요

5화

웅성거림은 점점 커져 정원 전체를 삼킬 듯 퍼져나갔고, 그 소리는 마치 물결처럼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하나의 방향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몇몇의 낮은 탄성이었으나, 이내 여기저기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와 발걸음 옮기는 소리가 뒤섞이며 정원 전체가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듯 움직였다. 이서윤도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정원 입구에 서 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한소은이었다. 연회를 위해 특별히 지어졌다는 새하얀 비단 치마가 등불에 비쳐 은은한 광택을 뿜어냈고, 옷자락이 걸음을 따라 흔들릴 때마다 마치 얇은 얼음판 위로 달빛이 미끄러지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머리에 꽂힌 진주 장식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게 흔들리며 별처럼 반짝였는데, 그 반짝임은 지나치게 요란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시선을 붙잡았다. 그녀는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걸음으로 정원 중앙을 향해 걸어들어왔고, 그 얼굴에는 언제나 그랬듯 순수하고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는 마치 누구에게나 향할 수 있지만 결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상하게도 무해한 종류의 것이었다. "소은 아가씨다." "오늘도 저리 곱구나." "저 미소는 어쩜 저렇게 한결같을까." 대신들의 부인들이 저마다 감탄을 흘렸고, 부채를 팔락이며 서로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던 여인들조차 그 손짓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젊은 관료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녀를 좇았는데, 몇몇은 눈이 마주칠까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면서도 다시 슬쩍 눈을 들어 그녀의 걸음을 따라갔다. 방금까지 이서윤을 향해 있던 시선들이, 한소은이 등장한 순간부터 서서히 방향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마치 해가 기울면 그림자가 슬며시 방향을 트는 것처럼, 아무런 소란도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이강과 이준 두 왕자가 마치 미리 짠 듯 동시에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두 형제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으며, 오히려 서로 먼저 다가가려는 듯 걸음이 살짝 빨라지기까지 했다. "소은아, 오늘 정말 아름답구나." 이준이 웃으며 말했고, 그 웃음에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라기보다 진심에서 우러난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이강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아 정원 안쪽으로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렴, 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그 손짓 하나에도 익숙함이 배어 있어, 마치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던 사이처럼 보였다. 한소은은 왕자들의 안내를 받아 이현 앞으로 나아갔고, 걸음마다 치맛자락이 사르르 소리를 내며 바닥을 스쳤다. 이현조차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는 조금 전 이서윤을 향했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소은이 왔구나. 청강국의 자랑이 여기 와 있다니, 오늘 연회가 더욱 빛나는구나." "과찬이십니다, 전하.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소인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한소은의 목소리는 낮지도 높지도 않게, 정확히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온도로 흘러나왔다. 그 말투에는 겸손함과 우아함이 동시에 배어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몇몇 대신들이 낮은 목소리로 "역시 소은 아가씨답다"며 감탄을 흘렸고, 그 감탄은 곧 옆 사람에게로, 또 그 옆 사람에게로 옮겨가며 작은 파문을 만들어냈다. 이서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쏠려 있던 시선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걸음마다 술렁이던 정원이, 이제는 한소은의 걸음마다 술렁이고 있었다. 등불 아래 늘어선 사람들의 고개가, 조금 전에는 이서윤을 따라 움직였으나 지금은 한소은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낙차가 이서윤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또다시 이 자리를 빼앗기는구나.*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이서윤의 뇌리에는 첫 번째 삶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왕세자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대신 다정한 미소를 짓는 다른 여인에게로 옮겨가던 그 순간. 그때 그녀는 완벽하게 옷을 갖춰 입었고, 완벽하게 예를 다했으며, 완벽하게 웃었으나, 완벽함은 그 어떤 시선도 붙잡아 두지 못했다. 사람들은 완벽한 것을 우러러보기는 했으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언제나 무해하고 다정한 얼굴을 향해 흘러갔고, 그녀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던 적이 있었다. 이서윤의 턱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졌다. 이가 맞물리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새어 나왔다가 곧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손끝 하나 떨리지 않았고, 눈빛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얕은 미소를 걸고, 백유모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 "저 아이는... 늘 저렇게 시선을 가져가는군요."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그 담담함 아래에는 얇게 벼려진 칼날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사옵니다." 백유모가 조용히 답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서윤의 옆얼굴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한소은을 향했다. "오늘 왕녀님이 이룬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옮겨갔다 해도, 그것이 왕녀님께서 쌓으신 것을 무너뜨리지는 못하옵니다." 이서윤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시선을 한소은에게서 떼지 않은 채, 마음속으로 조용히 결심을 다졌다. 저 무해한 미소, 저 다정함이 얼마나 오래 이 왕궁의 애정을 붙잡아둘 수 있을지, 그녀는 반드시 두 눈으로 확인할 작정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저 순수함이 정말로 순수한 것인지, 아니면 순수함을 가장한 또 하나의 계산인지, 그녀는 낱낱이 파헤쳐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애정의 뿌리를 하나씩 잘라낼 작정이었다. *두고 보자. 언제까지 저 미소가 통할지.* 그녀는 부채를 살짝 접으며 시선을 거두는 척했으나, 눈꼬리는 여전히 한소은의 움직임을 좇고 있었다. 마치 뱀이 먹이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조용히 몸을 낮추는 것처럼, 그녀의 시선은 소리 없이, 그러나 집요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정원 뒤편, 아직 등불이 채 닿지 않은 어둑한 회랑 쪽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느리지만 무게가 실린 걸음이었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아주 작아서 몇몇만이 알아차렸으나, 곧 그 걸음의 무게가 정원 전체의 공기를 진동시키는 듯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소은에게서 서서히 그 발소리의 근원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정원의 공기가 다시 한 번 팽창하듯 팽팽해졌다. 등불의 그림자들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대신들의 부인들 사이에서 낮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건 누구의 발소리일까요." 누군가 나지막이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회랑의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것은 이서윤도, 백유모도, 그리고 이현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 존재가 등불 아래로 완전히 걸어나오는 순간, 정원을 채우고 있던 모든 웅성거림이 일제히 뚝, 끊어졌다. 마치 누군가 정원 전체의 숨을 한꺼번에 틀어막은 것처럼, 그 침묵은 짙고 무거웠으며, 그 무게 속에서 이서윤은 자신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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