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묵현 님의 지시에 따라, 나는 뇌강의 마력이 흐르는 통로를 따라 손끝을 움직였다.
그것은 마도구를 만질 때와 비슷했다. 결함이 있는 부분을 찾고, 흐름이 끊긴 지점을 짚어내는 일. 손끝에 감기는 마력의 결이 마도구의 회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대상이 마도구가 아니라 신이었다.
'집중해. 뇌강 님의 마력 통로는 여기서 여기까지…… 끊긴 지점이 있어.'
나는 속으로 되뇌며 손끝을 조금씩 옮겼다. 뇌강의 몸에서 흐르던 마력이 어느 한 지점에서 뒤틀려 있었다. 마치 전선이 꺾인 것처럼, 흐름이 거기서 자꾸만 역류했다.
'여기다.'
그 지점을 짚어내는 순간,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
손목에 차고 있던 파손된 팔찌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마력이 통하지 않던 물건이었다. 낡고 금이 간 채로, 그저 장식처럼 손목에 걸려 있던 물건. 그런데 지금, 그것이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지지직.
작은 스파크가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당황할 틈도 없었다. 뇌강의 마력 통로에서 손을 떼야 하나, 그대로 두어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는 사이, 그 순간이 왔다.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쏟아져 들어왔다.
비명 소리였다.
낯선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목소리였다. 마치 잊고 있던 노래의 첫 소절을 듣는 것처럼, 귀보다 먼저 몸이 그 소리를 알아차렸다.
"도현! 하율을 데리고 도망쳐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다급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 짐승의 울음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그럴 리 없었다. 나는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아니, 나는 눈으로 본 적이 없는데도—감각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바닥의 흙냄새, 타는 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까지.
교회 앞이었다. 몬스터의 울음소리. 사람들이 흩어지는 발소리. 그리고 누군가 나를 품에 안고 뛰는 진동. 팔에 닿는 옷감의 질감, 뛰는 걸음마다 흔들리는 시야.
"괜찮아, 하율. 아빠가 있어."
남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다정했다. 숨이 가빴지만, 그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를 안은 팔의 힘이 조금 더 세졌다.
그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 뜯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살점이 찢기는 소리였다. 남자의 숨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안 돼……!"
여자의 비명이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조금 전 나를 안았던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도현.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이 내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확신은 근거도 논리도 없는, 그저 몸 안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앎이었다.
손목의 팔찌가 격렬하게 떨렸다.
"으윽!"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뇌강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끝에서 흐르던 마력이 제멋대로 요동쳤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그 장면이 재생되었다. 여자가—아마도 나의 어머니가—무너진 몸으로 나를 끌어안는 장면. 팔이 떨리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그런데도 끝까지 나를 놓지 않던 장면. 그리고 다급하게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는 장면.
"신부님, 이 아이를 부탁드려요…… 저는 더 이상……"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장면도, 온기도. 그저 캄캄한 정지였다.
그 순간, 내 손에서 격렬한 진동이 터져 나왔다.
쿠구구.
주변에 있던 마도구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조명구가 깨지는 소리,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벽에 걸려 있던 마력 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명멸하고, 바닥에 놓여 있던 소형 마도구들이 저마다 제 마력을 뿜으며 튀어 올랐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눈물이 흘러도, 그것이 어떤 모양으로 흐르는지 나는 볼 수 없었다. 다만 뜨거웠다. 얼굴이 뜨거웠다. 목 안쪽이 타는 것처럼 조여왔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묵현 님도, 우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서진 조명구의 파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신부님도, 탑주님도…… 다 알고 있었던 거죠. 제 부모님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저한테는 아무도……"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뇌조."
묵현 님의 목소리가 낮게 나를 불렀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대답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나를 진정시키려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그럼 언제요."
나는 다그쳤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제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아버지는요. 이 팔찌는 뭐고, 왜 하필 지금 반응한 거예요."
말을 쏟아내는 동안에도 손끝은 여전히 뇌강의 마력 통로에 닿아 있었다. 손을 떼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손을 놓으면, 방금 본 그 장면들이 다시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묵현 님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나에게는 어떤 대답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나중에, 반드시 말해주겠다."
"믿어도 되나요."
"믿어도 된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인지, 그저 나를 달래기 위한 말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우진은 그 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서도 무언가 아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가, 곧 지워졌다.
'너도 알고 있었어?'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목의 팔찌가 서서히 열기를 잃어갔다. 방금까지 격렬하게 떨리던 진동도 멈추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파손된 채로 돌아갔다. 손목에 남은 것은 미약한 잔열뿐이었다.
나는 뇌강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조금 전보다 안정되어 있었다. 마력 통로의 뒤틀림도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위기는 넘긴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분노와 의문, 그리고 확신.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내 부모님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금까지 숨겨왔다.
'왜 지금까지 아무도 말 안 했을까. 신부님도, 탑주님도. 어쩌면 묵현 님도 그날부터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생각이 자꾸만 뒤로 감겼다. 신부님이 나를 처음 데려왔던 날, 유독 말을 아꼈던 그 얼굴. 탑주님이 팔찌를 볼 때마다 잠시 시선을 피하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이제야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알아야 해.'
손끝에 아직 남아 있는 팔찌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방문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벌컥 열렸다.
"뇌조! 큰일 났어요!"
숨이 턱까지 차오른 목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