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보, 왜 이렇게 다정해요?

4화

그날 이후, 강준서는 매일 아침 소은의 방문 앞에 섰다. 처음 며칠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문 안쪽에서 "괜찮아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강준서는 그 말이 반복될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왜 저 나이에 저런 말을 배웠을까.' 네 살짜리가 자기 몸이 괜찮다고 남을 설득하는 법을 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첫날에는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손끝으로 나무 문을 톡톡 두 번 두드리면, 안에서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뒤이어 그 대답. "괜찮아요." 강준서는 그 말을 듣고도 발을 떼지 못했다.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날, 강준서는 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아이에게 아무 말이나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정원에 핀 꽃이 무슨 색인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문 안쪽에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겁을 먹는다는 게,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강준서는 문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답답함과 초조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일주일쯤이 지났을 무렵, 소은은 처음으로 문을 조금 더 열어주었다. 그날은 손등이 아니라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 강준서는 그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캐물으면 아이가 더 움츠릴 거라는 걸, 그는 짐작으로도 알 수 있었다. 대신 그는 눈으로만 자국을 확인하고, 손은 조심스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은의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가늘었다. 그 감촉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작고 여린 아이에게, 누가 저런 흔적을 남기는 걸까. "오늘도 예쁘게 잘했어?" 강준서가 대신 그렇게 물었다. 소은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문이 조금 더 열려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진전이었다. 그날 저녁, 강준서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채 쪽으로 이어진 길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저 아이는 대체 무슨 세상에서 살아온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 밤이 되면 강준서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낯선 장면이 떠올랐다. 소은이 어두운 방 구석에서 홀로 울고 있는 모습, 누군가의 손이 아이를 향해 뻗치는 모습. 실제로 본 게 아니라 상상인지 예감인지 모를 그 장면들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걱정이 만들어낸 환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장면은 매일 밤 조금씩 더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그림자만 보였다면, 이튿날에는 손의 모양이 보였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그 손이 쥐고 있는 얇은 나무 막대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꿈인가.' 강준서는 새벽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깼다. 같은 장면이 사흘 연속으로 반복되던 날, 그는 확신했다. 이건 단순한 걱정이 아니었다. 뭔가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앉은 채로, 강준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불길함은 처음이었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이렇게까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다음 날, 그는 박수호에게 다시 물었다. "홍 여사,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서쪽 별채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수호가 조심스레 답했다. "지금 당장 가서 만나야겠어요." 강준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수호가 그의 앞을 막았다. "공작님, 아직 증거가 없습니다. 무작정 대면하시면..." "증거가 왜 필요해요. 내 딸이 다쳤잖아요." 강준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공작님." 박수호의 어조가 무거워졌다. "홍 여사는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준서가 걸음을 멈췄다. 박수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침묵이, 이전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강준서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박수호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려 했지만, 그는 이미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감추는 거야.' 강준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저택 안에는 자신이 모르는 규칙이, 자신이 모르는 권력의 층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수호 씨." 강준서가 다시 불렀다. 목소리가 한결 낮아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뭘 하든 말리지 마세요." 박수호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더는 말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결국 강준서는 그날 오후, 혼자 서쪽 별채로 향했다. 별채로 가는 길은 유독 조용했다. 정원의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빛이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졌다. 강준서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자꾸만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별채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안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니." "...죄송해요." 소은의 작은 목소리였다. "죄송하다는 말로 될 것 같아? 이 미천한 것이."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이어졌다. 강준서는 그 순간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미천한 것이라니. 네 살짜리 아이에게, 누가 저런 말을. 강준서는 문을 벌컥 열었다. 방 안에는 중년의 여인이 소은의 손목을 붙잡고 서 있었다. 소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강준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여인, 홍 여사는 놀란 기색 없이 천천히 손을 놓았다. "공작님, 예절 교육 중이었습니다." 그녀의 태도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이게 예절 교육이에요?" 강준서가 소은의 손목을 살폈다. 새로운 자국이 선명했다. 붉게 부어오른 자국은 손목을 한 바퀴 두른 듯 고르게 남아 있었다. 손이 아니라, 무언가 얇고 단단한 것으로 붙잡은 흔적이었다. "아가씨가 워낙 자주 다치시니까요." 홍 여사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 미소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자주 다친다고요?" 강준서가 되물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데요." 홍 여사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마치 그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강준서는 그 순간 확실히 느꼈다. 이 여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공작 앞에서도 저렇게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이 저택의 어떤 하인이라도 공작 앞에서 이런 식으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이 여자, 뭘 믿고 저러는 거지.' 강준서는 소은을 품에 끌어안았다. 아이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더니, 이내 아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작은 손이 강준서의 옷깃을 슬며시 붙잡았다. 강준서는 홍 여사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당장 이 별채에서 나가요. 다시는 이 아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세요." "공작님." 홍 여사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될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투에는 위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움에 가까운 여유가 섞여 있었다. 마치 강준서가 뭔가를 모르고 있다는 걸 확신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강준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은을 더 단단히 끌어안은 채, 등을 돌려 별채를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 강준서는 결심했다. 이제 더는 지켜보지만 않을 것이었다. 동시에 등 뒤에서 들려온 홍 여사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회하실 텐데요,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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