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최하급 마물이라는 건 개랑 두꺼비 사이 어디쯤 잘못 태어난 짐승이었다. 이름도 몰랐다. 최정한이 알려준 건 등급뿐이었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직접 겪으라는 식이었다. 세상 무책임한 인수인계였다. 관청에서 준 안내서를 다시 펼쳐봤지만 거기엔 등급표만 빽빽하고 실제로 뭘 어떻게 잡으라는 설명은 한 줄도 없었다. 이런 걸 매뉴얼이라고 만든 사람은 분명 현장에 안 나가는 사람일 거라고 확신했다.
사냥터는 관청에서 십오 분쯤 걸어야 나오는 야산 초입이었다. 풀냄새가 축축했고, 발밑에서 뭔가가 계속 부스럭거렸다. 나는 그 소리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몇 번이나 헛걸음질을 쳤다.
"어떻게 잡아요, 이거?" 나는 등록증에 딸려온 조잡한 단검을 손에 쥐고 물었다. 칼날이 어찌나 무딘지 손잡이를 쥔 손바닥에 오히려 땀만 찼다. 태호는 팔짱을 낀 채 짐승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점은 목이야." 대답이 짧았지만 그게 다였다. 어디서 배운 건지, 몇 번이나 해봤는지 묻고 싶었으나 이 애의 말수를 생각하면 대답이 돌아올 가능성이 낮았다. 태호는 원래도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이럴 땐 그 침묵이 유독 얄미웠다.
"목이라니, 이 짐승이 목을 순순히 내줄 것 같아?" 나는 반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짐승이 그 순간 먼저 뛰어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고 발이 얽혀 넘어질 뻔했다. 균형을 잡으려 팔을 허우적거리는 동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태호가 순식간에 앞으로 나서 짐승의 목을 정확히 찔렀다. 짐승은 짧은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그 동작이 너무 매끄러워서, 이 애가 이미 여러 번 해봤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칼을 쥔 손목이 흔들림 없이 곧았고, 시선은 짐승의 다음 움직임까지 미리 읽은 것처럼 정확했다.
"몇 번이나 해본 거야?"
"어제." 그는 시체를 자루에 넣으며 짧게 답했다. 자루 안으로 들어가는 짐승의 몸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 태호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어제. 소환된 지 이틀 만에 벌써 사냥을 나가봤다는 소리였다. 나는 관청에서 등록만 하고 하루를 통째로 자는 데 썼는데, 이 애는 밤에 몰래 나가서 실전을 치른 셈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뭐가 이 애를 그렇게 서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지만 그 답도 나중에야 알았다.
"나도 어제 나갔으면 오늘 이렇게 삽질 안 했을 텐데." 나는 혼잣말을 흘렸다. 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짐승 세 마리를 잡고 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나는 결국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했고, 태호가 잡은 것들에 숨만 헐떡이며 기여했다. 정확히 말하면 기여라기보다는 방해였다. 두 번째 짐승 때는 내가 낸 소리 때문에 놈이 방향을 틀었고, 세 번째 짐승 때는 내가 넘어지는 바람에 태호가 나를 밟지 않으려 어색하게 몸을 비틀어야 했다. 이게 자립이라 할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계약서에 자립이라는 단어가 왜 들어갔는지, 최정한한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안. 나 진짜 도움이 안 되네." 나는 자루를 대신 메겠다고 나섰지만 태호는 그냥 자기가 메고 걸었다. 거절의 말도 없이, 그냥 몸으로 대답하는 식이었다.
잠깐 쉬려고 풀숲 그늘에 앉았을 때, 뭔가 발치를 스쳤다. 나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엉덩이가 축축한 흙에 닿는 것도 상관없이 몸을 뒤로 젖혔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파란 도마뱀이 내 발 근처에 서 있었다.
크기는 작았는데 눈이 이상했다. 짐승의 눈이라기보다는, 뭔가를 알고 있는 눈이었다. 파충류치고는 지나치게 깊었고, 주름진 눈꺼풀 사이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몸빛은 청금석처럼 짙은 파랑이었는데, 그 색이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선명했다.
"뭐야, 이거." 나는 중얼거렸다. 손을 뻗어볼까 하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뭐가 됐든 손가락만 한 크기니까 위협은 안 되겠지, 라는 계산이 반사적으로 섰다.
태호가 다가와 도마뱀을 훑어봤다. 무표정이던 얼굴이 처음으로 살짝 굳었다.
"등급이 안 잡혀." 그가 말했다.
"안 잡힌다는 게 무슨 소리야?"
"등록증에 감지 기능 있잖아. 아까 개두꺼비는 뜨는데 이건 안 떠."
나는 등록증을 꺼내 도마뱀 쪽으로 겨눠봤다. 화면 같은 게 없는데도 뭔가 반응해야 정상이라고 했다. 아까 개두꺼비를 잡기 전, 등록증을 짐승 쪽으로 향하자 손잡이 부분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최하급이라는 감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기억이 있었다.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태호 말대로 아무 표시도 뜨지 않았다. 측정 불가. 손잡이는 잠잠했고 머릿속도 텅 비었다. 그게 좋은 신호는 아닐 것 같았다.
"고장 난 거 아니야?" 나는 등록증을 흔들어봤다. 흔든다고 고장 난 기계가 고쳐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행동밖에 할 게 없었다.
"내 것도 똑같이 반응 안 해." 태호가 자기 등록증을 도마뱀 쪽으로 겨눠 보이며 말했다. 두 개의 등록증이 나란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마뱀은 겁먹은 기색 없이 오히려 내 발치로 더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이상하게 여유로웠다. 사람 앞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이 전혀 없는 걸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폴짝 뛰어 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참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비명을 억지로 삼키느라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 움직임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 뭐랄까, 그리운 느낌이었다. 도마뱀의 발이 손목 위를 지나갈 때 서늘한 감촉이 남았는데, 그 서늘함마저 낯설지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됐다.
"[오냐, 오냐, 내 새끼가 여기 있었구나.]"
목소리가 들렸다. 도마뱀 입이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그 말이 내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렸다. 나는 팔을 확 뒤로 젖혔지만 도마뱀은 손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매달렸다. 손목을 잡은 발톱의 힘이 손가락만 한 크기치고는 지나치게 셌다.
"말, 말을 해요?" 나는 반사적으로 존댓말이 나왔다. 상대가 뭔지 모르니 일단 예의는 갖추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사람이든 마물이든 정체 모를 존재 앞에서는 일단 존댓말이 생존율을 높인다는 게 내 오랜 경험이었다.
"[허어, 이 녀석 존댓말도 예쁘게 하는구나. 할애비가 참으로 흡족하도다.]"
할애비. 이 도마뱀이 자기를 할아버지라고 칭했다. 손가락만 한 파란 도마뱀이. 나는 태호를 쳐다봤다. 그 애도 이 상황을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표정 없던 애가 이 정도로 당황하는 걸 보니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맞았다. 태호의 눈이 도마뱀과 내 얼굴을 번갈아 오갔는데, 그 짧은 시선 이동에서 이 애도 답을 모른다는 게 그대로 드러났다.
"저기, 죄송한데 제 할아버지는 서울에 계시거든요." 나는 조심스럽게 짚었다. "돌아가신 지도 오래됐고요. 도마뱀으로 환생하셨다는 얘기도 못 들었고요."
"[그것과 이것은 다른 이야기니라. 네 안의 것을 보고 온 것이니, 굳이 혈연을 따질 필요는 없느니라.]"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내 안의 것이라니, 나한테 뭐가 있다는 건데. 뭔가 짐작 가는 게 없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짚이는 게 없었다. 물어보려는 순간, 저 멀리 풀숲이 크게 흔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땅을 울리는 소리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새로운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아까 잡았던 개두꺼비와는 비교도 안 될 크기였다. 그림자만 봐도 몸통이 사람 두엇은 삼킬 만큼 컸다.
"저건 뭐예요?" 나는 등록증을 다시 겨눴다. 이번엔 표시가 떴다. 상급. 최하급 사냥터에 상급 마물이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손잡이가 격렬하게 진동했고,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감각도 아까의 미미한 신호와는 비교가 안 됐다.
태호의 얼굴이 처음으로 확실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