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은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시선만으로 골목 안쪽을 훑으며 그 낯선 자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가늠했다. 저잣거리는 오후의 소란함으로 가득해서, 좌판을 벌인 상인들의 외침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뒤섞여 있었지만, 그 소음 사이에서도 유독 한 발자국의 리듬만이 은하의 귀에 걸려들었다. 너무 규칙적이었고, 너무 조심스러웠다. 마치 발소리를 죽이려 애쓰는 듯한, 그런 어색함이 배어 있었다.
다행히 그자는 은하가 자신을 알아챈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밟았는데, 그 거리가 좁혀지지도 넓어지지도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확실한 증거였다. 초행길에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수 없다. 은하는 속으로 그 사실을 곱씹으며, 겉으로는 여전히 태평하게 걸음을 옮겼다.
호위 두 명은 몇 걸음 앞서 걷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앞쪽의 인파와 혹시 모를 정면의 위협에만 쏠려 있었다. 이런 종류의 미행을, 뒤에서 슬며시 붙는 그림자 같은 위협을 알아차릴 만한 눈은 갖추지 못한 자들이었으므로, 은하는 결국 스스로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저들에게 맡겨두면, 오늘 밤이 가기 전에 내 방문 앞에서 그자를 다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은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좁은 골목으로 일부러 걸음을 틀어 들어간 은하는, 벽 모퉁이에 몸을 붙인 채 숨을 죽였다. 골목 안은 낮인데도 그늘이 깊어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고, 어딘가에서 삭은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풍겨왔다. 예상대로 발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 발소리가 모퉁이 바로 앞까지 다다랐을 때, 은하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손끝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 순간 모퉁이를 돌아선 자의 손목을 낚아채며 벽으로 밀어붙이자, 상대는 짧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틀었지만 은하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사내의 얼굴은 평범했다. 시장 어디서나 볼 법한, 특별할 것 없는 인상이었는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런 얼굴을 한 자들이 얼마든지 궁 안에도, 거리에도 섞여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으므로.
"누구 밑에서 나왔나."
은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는데, 그것이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훈련받은 그대로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쓴 것 같은, 그런 이질감이 잠깐 스쳤지만 은하는 그 감각을 곧 지워버렸다. 지금은 그런 것을 곱씹을 때가 아니었다.
사내는 대답 대신 소매에서 짧은 칼을 뽑으려 했으나, 은하가 먼저 그 손목을 꺾어 눌렀고, 골목 안에 짧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손목이 꺾이는 소리와 사내의 신음이 겹쳐 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은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힘의 세기를 가늠하며, 이자가 정식으로 훈련받은 자인지 그저 돈에 팔려온 뒷골목 잡배인지를 판단하려 했다. 손목의 굳기와 반응하는 속도로 보아, 무예를 배운 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급하게 사서 붙인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소리에 뒤늦게 달려온 호위들이 사내를 붙잡아 끌고 갔지만, 사내는 이미 혀 밑에 숨긴 무언가를 삼켜 버린 뒤였으므로 입을 열기 전에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호위 하나가 다급히 사내의 입을 벌려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입가에 검푸른 기운이 번지고 있었고, 그 낯빛의 변화는 놀랄 만큼 빨랐다.
은하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이것이 단순한 소매치기나 우연한 시비가 아니라는 것을 곱씹었다. 이런 식으로 미리 독을 품고 다니는 자라면, 애초에 붙잡혀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즉 이 일은 처음부터 은하 자신을 노린, 계획된 무엇이었다는 뜻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은하는 죽은 사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겼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호위들이 소란을 수습하는 사이, 은하는 문득 이 일을 이현성에게 보고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태겸에게 먼저 알려야 하는지를 두고 짧게 고민했다.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그 순간처럼 선명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이현성에게 알리면 그는 분명 이 일을 크게 다룰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또 한 번 궁 안의 시선 속에 노출될 것이었다. 한태겸에게 먼저 알리면, 그것대로 또 다른 파장을 만들어낼 것이 뻔했다. 어느 쪽으로도 온전히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골목의 서늘한 공기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결국 은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한 얼굴을 하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옷매를 대충 정리하고, 흐트러진 머리를 손끝으로 훑어 넘기며, 마치 저잣거리를 한 바퀴 구경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걸음을 옮겼다. 다만 손목에는 아직도 사내를 붙잡았던 순간의 감각이 남아 있어서, 그 잔열 같은 것이 자꾸만 신경을 긁었다.
궁으로 돌아온 은하가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이현성이 이미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사실이 시녀의 다급한 안내를 통해 밝혀졌다. '벌써 알았단 말인가.' 은하는 그 빠른 소식통에 잠시 놀랐지만, 곧 이 궁 안에서 자신을 둘러싼 눈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었다.
서재로 불려간 은하는, 문을 열자마자 책상 앞에 서 있는 그의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굳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촛불 아래 드리운 그의 그림자가 유독 길고 짙어 보였는데, 그것이 단순히 조명 탓만은 아닌 듯했다.
"다쳤소?"
짧은 물음이었지만, 은하는 그 안에 섞인 조급함 같은 것을 느꼈고, 그것이 낯설어서 순간 대답할 말을 잃었다. 이현성의 목소리가 이렇게 서두르듯 들린 적이 있었던가. 은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쪽이……"
은하가 상황을 설명하려 하자, 이현성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성큼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아 소매를 걷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은하는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지만, 그렇다고 뿌리칠 겨를도 없었다.
손목에 남은 붉은 자국을 확인하는 그의 손끝이 예상보다 조심스러워서, 은하는 그 온도 차이에 몸이 순간 굳는 것을 느꼈다. 그 손끝은 마치 깨질까 두려운 무언가를 만지는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였고, 그 느림이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사람 손에 이런 조심스러움이 있었나.' 은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스스로 그 생각을 어이없다 여기며 지워버리려 했다.
"이런 위험한 짓을, 다음부터는 하지 마시오."
이현성의 목소리는 명령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은하는 그 안에서 명령보다 더 다른 감정이 섞여 있는 것 같아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이 사람이, 지금 나를 걱정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치자마자, 은하는 스스로 그 생각을 밀어내려 애썼다. 걱정이라니, 그런 말은 이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은하는 애써 그렇게 결론지으려 했다.
"그자가 누구의 사람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은하가 애써 화제를 돌리듯 말하자, 이현성은 그제야 그녀의 손목을 놓고 몸을 돌려 창가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잠시 말이 없었는데, 그 침묵이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는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노자헌."
그 한 단어가 던져지는 순간, 은하는 그 이름이 세금 횡령으로 이미 조정에서 말이 돌고 있는 자작의 것임을 곧바로 떠올렸다. 은하도 몇 번 곁에서 들은 적 있는 이름이었다. 조정 회의가 있던 날, 시녀들 사이에서 오갔던 수군거림, 그리고 이현성이 짧게 언급했던 서류 몇 장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가 최근 조정에서 몰래 사람을 사서 뒷조사를 시킨다는 말이 있었소. 아무래도, 그대가 그 표적이 된 모양이오."
이현성의 말에 은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 궁 안에서 자신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눈에 띄는 존재였나.' 그런 생각이 스치자, 은하는 자신이 서 있는 이 자리가 갑자기 더 위태로운 곳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저를……"
은하가 물으려 했지만, 이현성은 그 물음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잠시 눈을 내리감았다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이 마치 아직 은하에게 다 말해줄 수 없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은하는 더 캐묻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창밖으로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하얀 것들이 소리 없이 정원을 덮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현성이 낮게 덧붙였다.
"노자헌의 죄를 밝히는 자리에, 그대도 서게 될 것이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은하는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 채였지만, 그 자리가 결코 평온하게 지나갈 리 없다는 예감만은 분명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창밖의 눈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고, 그 소리 없는 하강이 마치 다가올 무언가를 예고하는 것처럼, 은하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