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만물의 버프 추출사

3화

약재실은 의당 건물 뒤쪽, 창고를 겸한 작은 별채였다. 기와가 낡아 빗물이 새는 자리마다 얼룩이 졌고, 문틀은 뒤틀려서 여닫을 때마다 삐걱거렸다. 안으로 들어서면 마른 약초 냄새와 흙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처음엔 머리가 아플 정도였는데, 사흘쯤 지나자 그마저 익숙해졌다. 선임 수습생 한 명이 나를 데려다놓고 대충 설명한 뒤 사라졌다. "여기 있는 거 손질하고, 마른 거랑 안 마른 거 나누고, 절구로 빻으면 돼. 어렵지 않아." 말은 쉬웠지만 실제로는 하루 종일 앉아서 손끝이 시커멓게 물들 만큼 반복하는 일이었다. 손톱 밑에 풀물이 끼고, 손바닥에는 절구질로 잡힌 물집이 여러 번 터졌다가 다시 굳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서진혁 무리랑 부딪히지 않아도 되니까. 의당 안쪽 사정을 보면 이건 좋은 자리였다. 본채에서 잡무를 도는 애들은 매일 눈치를 봐야 했다. 누구 심부름을 먼저 하느냐, 누구 앞에서 실수를 하지 않느냐, 그런 걸로 서열이 갈렸다. 나는 그런 눈치싸움에서 벗어나 혼자 구석에 앉아 약초만 만졌다. 조용했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배치였다. 문제는 사흘째 되던 날 벌어졌다. 그날은 유난히 시든 약초 다발이 많이 들어왔다. 산에서 캐 온 지 오래된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든 탓이었다. 창고 구석에 방치된, 이미 절반쯤 말라버린 인삼 뭉치도 그중 하나였다. 잎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뿌리 끝은 갈라져 흙이 부스러기처럼 붙어 있었다. 다른 수습생들은 이런 건 버리는 게 원칙이라며 폐기함에 던져놨다. "이런 건 그냥 버려. 어차피 약효 없어." 누군가 그렇게 말하고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폐기함을 뒤적였는데, 왠지 그중 하나가 눈에 걸렸다. 색이 유독 진한 것도 아니고, 모양이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손이 저절로 그쪽으로 갔다. 손에 쥐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정확히는 오른손, 우수 쪼갠 자리. 예전에 칼에 베인 흉터가 남은 그 자리였다. 마치 뭔가가 손금을 따라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뜨겁다기보다는 저릿한 감각에 가까웠는데, 처음 겪는 종류라 몸이 먼저 놀라 반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인삼이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방금.'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창고 안엔 나뿐이었고, 문밖에서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그 인삼을 집어봤다. 같은 감각이 다시 왔다. 이번엔 놓지 않고 버텼다. 숨을 한 번 참았다. 눈앞에 흐릿한 창이 하나 떠올랐다. 반투명한, 낡은 게임 UI 같은 느낌의 창이었다. 테두리는 흐릿하게 깨져 보였고, 글자는 오래된 브라운관 화면처럼 살짝 번져 있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상: 시든 인삼 / 잔존 생명력 감지 / 추출 가능한 속성: 활력(하급)' 숨이 멎었다. '이거, 진짜야?' 몇 초간 그대로 멈춰 있었다. 손바닥의 뜨거운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헛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홀린 듯 창에 표시된 '추출' 버튼처럼 보이는 부분을 향해 마음속으로 손을 뻗었다. 실제로 손가락을 까딱인 건 아니었다. 그냥 원했을 뿐이다. 그러자 손바닥이 다시 뜨거워졌고, 인삼이 순식간에 바싹 마른 껍질처럼 쪼그라들었다. 마치 며칠 만에 몇 년 치 수분을 다 잃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동시에 손목 안쪽에 뭔가 자리 잡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배터리를 충전한 것 같은,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창이 다시 떠올랐다. '활력(하급) 1회분 확보. 대상에 주입 가능.' 나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만약 누가 이 광경을 봤다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답이 없었을 거다. 요물이라고 소문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일단 손에 쥔 인삼 껍질을 폐기함 맨 아래로 밀어 넣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을 더 시도해봤다. 마른 약초, 시든 나뭇잎, 창고 뒤편에 놓인 죽어가는 화분의 잎사귀까지. 하나씩 손에 쥐고 반응을 확인했다. 신기하게도 조건이 있었다. 완전히 바싹 죽어버린 것, 이미 껍데기만 남은 것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반대로 잎이 파랗고 튼튼한, 완전히 건강한 것에서도 반응이 약하거나 아예 뜨지 않았다. 딱 죽어가는 것, 소멸 직전의 것, 아직 숨이 반쯤 남아 있는 것에서만 뭔가가 손끝으로 흘러 들어왔다. '죽어가는 것의 마지막 기운을 뽑아내는 건가.' 조금 섬뜩한 원리였다. 다 죽은 걸 되살리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걸 먼저 완전히 죽이고 그 대가로 뭔가를 얻는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유용했다. 이 세계는 약재를 다루는 곳이었고, 이곳에는 매일 시들고 상하는 것들이 넘쳐났다. 폐기함이 곧 내 자원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버려지는 것들, 아무도 아까워하지 않는 것들이 내 손을 거치면 뭔가로 바뀔 수 있었다. 주입은 어떻게 하는 건지도 실험해봤다. 손끝으로 다른 마른 약초를 만지면서 아까 얻은 '활력'을 흘려보낸다는 느낌으로 집중하니, 창에 다시 표시가 떴다. '활력(하급) 1회분 소모. 대상에 주입 완료.' 주입받은 약초는 놀랍게도 시들었던 잎이 살짝 펴지면서 색이 옅게 돌아왔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변화였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아까보다 확실히 질감이 달랐다. 뻣뻣하던 잎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됐다. 나는 그 순간 이게 얼마나 쓸모 있는 능력인지 직감했다. 서씨 의당은 약재의 신선도가 곧 진료의 질이었다. 상한 약재를 조금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그건 이 조직 안에서 내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무기였다. 수습생 나부랭이가 가진 유일한 패였다. 다만 문제는 이걸 어떻게 드러내느냐였다. 갑자기 마른 약초가 되살아난다고 말하면 다들 나를 요물이나 사이비로 몰아붙일 게 뻔했다. 이런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사람이 환영받을 리 없었다. 은밀히, 조금씩 성과만 보여줘야 했다. 그날 오후, 나는 시험 삼아 몇 가지 규칙을 더 확인해봤다. 활력을 한 번에 여러 개 모아둘 수 있는지, 아니면 즉시 써야만 하는지. 손목 안쪽의 감각을 가만히 느껴보니, 확보한 활력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두 개, 세 개까지 모아본 뒤에야 손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도가 있다는 뜻이었다. 정확한 최대치는 알 수 없었지만, 무한정 쌓아둘 수는 없어 보였다. 또 하나, 주입 대상도 아무거나 되는 건 아니었다. 완전히 말라 죽은 것에는 주입해도 반응이 없었다. 활력이 통하는 대상은 오직 '아직 죽지 않은 것', 최소한의 숨이 남은 것뿐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것을 되살리는 부활 같은 능력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쓸 만했다. 그날 저녁, 나는 폐기함에서 버려질 뻔한 약초 열댓 개를 몰래 되살려 다시 분류함에 섞어놨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하나씩 손에 쥐고, 반응이 오는 것만 골라서 주입하고, 나머지는 그냥 폐기함에 그대로 뒀다.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바꾸면 의심을 살 것 같아서,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 다음 날 아침, 선임 수습생이 그걸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류함을 뒤적이던 손이 멈추고, 눈이 가늘어졌다. "어제 버린 것들 아니었나?" 목소리에 의심이 반쯤 섞여 있었다. 나는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시치미를 뗐다. "제가 다시 손질했습니다. 아직 쓸 만한 것들도 있더라고요." "손질만으로 이렇게 되나?" "뿌리 끝 상한 부분만 잘라내고 물기를 좀 조절했습니다. 완전히 살아나는 건 아니지만, 약효는 조금 남아있을 것 같아서요." 거짓말을 뱉으면서도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게 붙잡았다. 선임은 인삼 하나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별 의심 없이 넘어갔다. "흠, 그럼 다행이고. 괜히 아까운 거 버릴 뻔했네." 대충 손질만 좀 더 정성스럽게 했나보다, 하는 정도의 반응이었다. 다행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아직 눈치챌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게 오래 숨겨질 비밀은 아니라는 걸. 폐기함에서 되살아나는 약초가 하나둘 늘어나면, 언젠가는 누군가 숫자를 세어볼 거고, 그때는 손질만으로 설명이 안 될 거다. 그전에 내 나름의 계획을 세워야 했다. 이 능력을 어디까지,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줄지. 그리고 며칠 뒤, 이 능력이 약초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통한다는 걸 알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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