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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별당으로 향하는 길, 저녁 바람이 차가웠다. 발끝에 닿는 흙길이 유난히 딱딱하게 느껴졌다. 궁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다 나를 알아보고는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나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그냥 확인만 하자. 그거면 돼.' 머릿속으로 되뇌었지만,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별당이 가까워질수록 등불 냄새와 향 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쳤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안에서 두 명의 나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소리로 짐작할 때,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아씨, 오늘도 전하께서 오신다 하셨는데." "그럼 또 늦게까지 안 주무시겠네." "저번에도 자정 넘어서까지 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던데요." "아씨는 좋으시겠다. 곧 왕비가 되신다면서요." "그러게. 우리도 그때 되면 좀 편해지려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문고리가 차갑게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왕비. 이 아이들조차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궁 안 어디를 걸어도 이제 그 말이 따라붙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한 번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두 나인이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손에 들고 있던 다과상이 흔들려 그릇이 달그락거렸다. "마, 마마님!" 그리고 방 안쪽, 비단 방석에 앉아 있던 여인이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윤아리였다. 둥근 얼굴, 맑은 눈동자,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앳된 얼굴이었다. 옷깃 사이로 보이는 목선이 곱고, 머리는 단정하게 틀어 올려져 있었다. 방 안에는 값비싼 병풍과 화려한 자개함이 놓여 있었다. 배는 눈에 띄게 불러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왕비마마께서 여기까지 걸음을 하셨네요."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존대는 형식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나인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 눈치를 보았다. "모두 나가 있어라." 내가 말하자, 나인들이 허둥지둥 방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방 안에는 나와 윤아리, 둘만 남았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편히 앉으세요, 마마. 몸이 무거워서 제가 먼저 일어나기가 어려워요." 그녀가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배 위에 놓인 손이 유난히 하얗고 가늘었다. 나는 앉지 않고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왔소." "뭐든 물으세요." 윤아리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흥미가 담겨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대는 제2왕비의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소?" 윤아리가 눈을 깜빡였다. "전하께서 저를 정식으로 곁에 두시겠다는 뜻 아닌가요?" "그것은 전하의 뜻이오. 자리의 의미를 묻는 것이오."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대답에는 거짓이 없었다. 진짜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무지가 오히려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모르니까 두려운 게 없는 거겠지.' '모르니까, 그냥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거고.' "제2왕비란 이 나라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자리요." "그것을 세우려면 종묘에 고해야 하고, 삼정승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대비전의 재가를 받아야 하오."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소." 윤아리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사라졌다. "전하께서 이미 조회에서 말씀하셨는데도요?" "전하의 말씀만으로 절차가 사라지지는 않소. 이 나라는 왕의 입으로만 움직이지 않소." 나는 한 걸음 다가섰다. 윤아리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배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대는, 지금 이 궁의 법도를 배우지 않고서 그 자리를 원하고 있소." "자리에는 무게가 따르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자리가 아니라 짐이 될 뿐이오." "짐이... 된다고요?" "그렇소. 그대를 위해서 하는 말이오." 윤아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녀의 여유가 흐트러지는 것을 보았다. 방 안의 등불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는... 그냥 전하가 원하시니까..." "전하가 원한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것을 이제라도 알아두시오."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향 연기가 천장으로 느리게 흩어졌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필요한 말은 다 했다. 더 말을 얹으면, 그것은 확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될 것이었다. "오늘 온 것은 위협이 아니오. 확인이었소." 나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등 뒤로, 윤아리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섭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을 나서자 밖에 있던 나인들이 나를 보고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눈에도 겁이 서려 있었다. 별당을 벗어나 처소로 돌아오는 길, 밤바람이 아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걸로 됐나.' '너무 몰아붙인 건 아닐까.' '아니, 그럴 필요는 있었어. 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 자리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는 더 이상 그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지는 못할 것이었다. 처소에 도착해서도 나는 한동안 마당을 서성였다. 나인 하나가 다가와 물을 건넸지만, 나는 받아 들고도 마시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시간을 벌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상선의 얼굴이 유난히 굳어 있었다. "마마, 아뢰옵기 송구하나..." "말해보아라." "별당의 나인 중 하나가 벌써 그 이야기를 궁 밖까지 흘렸다고 하옵니다." 나는 물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찻잔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갔다. "왕비마마가 남작영애를 찾아가 협박하셨다더라." 소문은 이미 그렇게 변형되어 궁을 떠돌고 있었다. 상선이 말을 마치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벌써 이렇게 됐다고?' '내가 방을 나선 지 얼마나 됐다고.'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오늘 내가 한 말은 확인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겨누는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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