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청년은 인간이 아니었다

3화

다음 날, 학교 복도에서 그가 서 있었다. 창가, 계단 쪽 창가. 교복도 아니고 백색 로브 그대로였는데, 아무도 그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던 사람처럼, 벽처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나가던 애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어깨가 부딪혀도 아무렇지 않게. 마치 투명 인간을 지나치는 것처럼. 나만 그를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제 그 목소리, 그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확인해야 했다. "저기요." 말을 걸어봤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제 말 안 들려요?" 대답이 없었다. 어제 그렇게 또박또박 말했던 게 무색하게, 오늘은 아예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뭐야, 이거. 아이돌 콘셉트야? 무대 위에서 시선 하나도 안 주는 그런 거?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등줄기가 서늘했다. 창밖을 응시하는 그 옆얼굴, 콧대며 턱선이 조각처럼 매끈했다. 사람이 저렇게 완벽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러보려다 그만뒀다. 이름도 모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그를 '당신'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나는 결국 교실로 들어가야 했다. 뒤돌아보니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그를 비껴가는 것처럼. 수업 시간 내내 창밖만 봤다. 선생님이 뭘 물었는지도 몰랐다. 정신은 계단 쪽 창가에 붙박여 있었다. ***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그가 있었다. 버스 정류장 맞은편, 편의점 앞. 형광등 불빛 아래 서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편의점 알바생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손님도 아니고 직원도 아닌데,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만 이상한 건가. 버스가 도착해서 올라탔다.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그를 봤다. 그의 청록색 눈이 정확히 이쪽을 향해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까지도, 그의 시선이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에는 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등굣길 학생들 사이에서, 로브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다음 날은 집 앞 골목이었다. 동네 아줌마 하나가 그 옆을 지나가면서 힐끗 봤다가 그냥 지나갔다. 흰 로브 입은 남자가 대낮에 골목에 서 있는데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이쯤이면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오직 나한테만 보이는, 나한테만 걸리는 그림자. *** 삼 일째 되던 날, 나는 창문을 열고 그가 서 있는 걸 봤다. 밤 열한 시. 우리 집 마당 담벼락 너머, 골목 가로등 밑에. 달빛인지 가로등 빛인지, 은발이 하얗게 빛났다. 청록색 눈이 정확히 내 방 창문을 향해 있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숨을 죽이고 커튼 뒤에 숨었다가, 다시 살짝 내다봤다. 그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거기서 자라난 나무처럼. 시계를 봤다. 열한 시 삼분. 다시 봤다. 그대로였다. 십 분이 지나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감시였다. 확인. 구조자가 아니라, 감시자였다. 손에 쥔 붉은 보석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 아니, 뜨거운 게 아니라 박동이 빨라진 거였다. 두근, 두근, 마치 겁먹은 심장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나도 무서워,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근데 그 대상이 보석인지, 창밖의 저 존재인지 헷갈렸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청록색 눈이 어둠 속에 떠 있는 것 같았다. *** 다음 날 학교에서 나는 결심했다. 이대로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로 등교했다. 친구가 왜 이렇게 다크서클이 짙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 요즘 게임에 좀 빠졌다고 둘러댔다. 안 하는 게임 이름까지 대면서. 거짓말이 늘어가는 것도 서글펐다. 쉬는 시간, 나는 그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오늘도 계단 쪽 창가였다. 오늘도 세상은 그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도망칠 틈을 주지 않으려고 팔을 붙잡았다. 차가웠다. 사람 살갗이 이렇게 차가울 수 있나. 마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유리병을 쥔 느낌이었다. 손끝이 순식간에 저려왔다. "당신 뭐예요." 목소리에 힘을 줬다. 떨리는 게 티 나지 않게. "사람이 아니죠. 맞죠?" 그는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정면으로. 가까이서 보니 더 이상했다. 눈동자 색이 균일하지 않았다. 청록색 안에 아주 미세하게 결정 같은 무늬가 있었다. 마치 보석을 눈알에 박아넣은 것처럼. "……." 대답 대신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주변 애들이 지나갔다. 아무도 우리 쪽을 보지 않았다. 이 이상한 대화, 이 붙잡힌 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에 나랑 이 존재만 남은 것 같았다. "보석 돌려달라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까지 안 받아갔어요. 왜요?" "당신이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준비? 무슨 준비요?" 또 침묵. 이 사람, 아니 이 존재랑 대화하는 건 벽에 공을 던지는 것 같았다. 튕겨 나오는 소리만 들리고, 원하는 대답은 절대 안 나왔다.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럼 저를 왜 계속 따라다니는 거예요. 감시하는 거예요?" "감시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침묵. "대답을 안 하는 것도 대답이라고 쳐도 되나요?" 그 말에 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정말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은 건지, 아니면 그냥 표정이 흔들린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름이라도 알려줘요. 계속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그 말에 그의 표정이 아주 잠깐 변했다. 뭔가를 결정하려다가 그만두는 것 같은 얼굴.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어쩌면 이름이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면 이름을 말하는 게 무슨 규칙을 어기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필요 없습니다." "뭐가요?" "이름은." 그러고는 팔을 스르륵 빼냈다. 힘으로 뺀 게 아니었다. 그냥,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손끝에 아무 감각도 남지 않았다. 마치 방금 전까지 잡고 있던 게 실체가 아니라 안개였던 것처럼, 손바닥이 허전했다. 그는 이미 창가에서 몸을 돌려 걸어가고 있었다. 로브 자락이 복도 바닥을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아무 대답도 못 한 채 그 뒷모습만 바라봤다. ***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손에 쥔 붉은 보석을 계속 만졌다. 두근, 두근, 그 맥동이 점점 또렷하게 느껴졌다. 보석 표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문득 이 물건이 진짜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예쁜 돌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뛰고 있었다. 마치 작은 심장 하나를 손안에 쥐고 있는 것처럼. 이 보석이 나한테 왜 온 건지, 왜 그 존재가 그걸 돌려받으려다 마는지,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외계인. 신. 저주받은 유물. 아니면 그냥 내가 이상한 병에 걸려서 헛것을 보는 걸지도. 차라리 후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병원에 가는 게 저 존재랑 계속 마주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창밖에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다. 오늘은 조금 더 가까운 위치였다. 담벼락이 아니라, 마당 안. 숨이 턱 막혔다.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려다 다시 멈췄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발바닥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가로등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은발만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청록색 눈이 이쪽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왜 점점 가까워지는 거지. 목이 바짝 말랐다. 물을 마셔야 하는데, 부엌까지 가려면 저 창문을 지나가야 했다. 아니, 애초에 창문을 지나가지 않아도, 저 존재가 마당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담벼락을 넘어왔다는 뜻이었다. 저 존재가. 나는 이불 속으로 다시 파고들면서도, 눈은 창문을 향해 있었다. 저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다가, 언젠가는 방 안까지 들어올까 봐.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창밖의 실루엣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내 생각을 들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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