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빗소리가 났다.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그리고 그 사이로 섞인 낮은 울음소리 같은 것.
처음엔 개인 줄 알았다.
옆집에서 기르는 늙은 진돗개가 밤마다 낑낑거리는 소리라고, 그렇게 넘기려 했다.
그러나 개가 아니었다.
개의 울음에는 저런 저음이 없다. 저건 훨씬 깊은 곳에서, 흉곽 전체를 울려서 나오는 소리였다. 마치 커다란 관악기의 가장 낮은 음역을 억지로 짓눌러 짜낸 것 같은.
나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그날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창밖에서 빗방울이 유리를 두드릴 때마다 심장이 같은 박자로 뛰었다.
***
다음 날 저녁, 산신각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 소리를 다시 들었다.
숲 어딘가에서, 낮게, 길게 우는 소리.
크르르르―.
등줄기가 곤두섰다. 걸음을 멈췄다.
발밑에서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어제 온 비 때문에 산길이 온통 진흙탕이었다. 신발 밑창에 흙이 엉겨붙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소리마저 무언가를 자극할까 봐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숨을 죽였다.
산신각까지 가려던 발걸음을 돌릴까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러고 싶었다. 이 산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두 번이나 죽을 뻔했으니까. 어디 안전 매뉴얼 같은 게 있다면 첫 줄에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리면 즉시 후퇴할 것'이라고 적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리와, 이 이상한 일들과, 그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산속을 헤매는 것보다 그의 곁에 있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계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다급한 결론이었지만.
숲으로 들어섰다.
낙엽 밟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치 스피커를 최대 음량으로 튼 것처럼 귀를 때렸다. 나는 발끝을 세워 걸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이상한 소리가 났다.
부스럭.
뭔가 움직였다. 나무 사이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숨을 참았다. 폐가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사슴이라 생각했다. 이 산에도 사슴이 있다고 들었으니까. 인터넷에서 찾아본 이 지역 야생동물 목록 중에 사슴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정보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헛된 위안이었는지.
그러나 다시 보니 사슴이 아니었다.
사슴보다 훨씬 크고, 사슴이라면 있을 수 없는 색으로 빛나는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황금색 눈이었다. 아니, 노란색이라기보다는 방전되는 전기 같은, 순간순간 튀는 빛깔. 눈동자 안에서 뭔가가 스파크처럼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형체가 나무 그늘에서 서서히 걸어 나왔다.
검은 털. 늑대의 형상이었지만 사람 상반신을 딱딱하게 눌러 붙인 것 같은 어깨선을 하고 있었다. 어깨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관절이 두 겹으로 접혀 있는 게 보였다. 저건 자연이 만든 골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굴이 낯익었다.
산신각에서 나를 붙잡았던 그 애들 중 하나였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딸깍 소리를 내며 맞춰졌다. 그날 마당에서 마주쳤던, 눈빛이 이상하게 형광등처럼 깜빡거리던 그 얼굴. 그때는 그저 어린애 같은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그 얼굴 아래로 짐승의 턱뼈가 겹쳐 보였다.
"어………."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다리가 굳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늦게 도착했다. 뇌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마치 로딩이 덜 된 화면을 보는 것처럼, 형체는 눈앞에 있는데 내 머리는 아직 그걸 '위협'으로 분류하지 못하고 있었다.
늑대의 몸에서 지지직, 스파크가 튀었다.
번개였다. 짙은 청백색 전류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 전류가 놈의 털을 타고 미끄러지며 파란 빛의 잔상을 남겼다.
으르렁.
턱이 벌어졌다. 이빨 사이로도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마치 입안에 라이터를 물고 있는 것 같았다.
놈이 도약했다.
나는 옆으로 몸을 던졌다. 판단이라기보다는 반사였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은 그 뒤를 허둥지둥 쫓아왔다.
어깨가 바위에 부딪혔지만 통증도 느낄 새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자리에 시퍼런 멍이 손바닥만큼 남았다.
놈의 발톱이 방금 내가 있던 자리를 갈랐다. 흙이 파헤쳐지면서 자갈이 튀었다. 자갈 하나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끔한 느낌이 났다. 만약 반박자만 늦었어도 저 발톱이 갈랐을 게 흙이 아니라 내 옆구리였을 거다.
"살, 살려………."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목소리가 자꾸 갈라졌다. 성대가 내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떨렸다.
놈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정확히 내 목을 향해.
시간이 이상하게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놈의 근육이 뒷다리에서부터 등을 타고 팽창하는 게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도 온갖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죽으면 부모님이 얼마나 황당해하실까, 사인이 '산에서 늑대에게 물려 사망'이라고 나오면 아무도 안 믿을 텐데.
그 순간 바람이 갈라졌다.
쐐애액.
하얀 형체가 놈과 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였다.
로브 자락이 바람에 크게 부풀었고, 그의 손끝에서 회오리 같은 바람이 압축되어 늑대의 몸통을 강타했다.
쿠웅.
늑대가 나무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나무껍질이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뒤로."
그가 짧게 말했다. 명령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진 한 마디였는데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발이 자꾸 엉키고 진흙에 미끄러졌다. 넘어질 뻔한 걸 겨우 나무를 짚고 버텼다.
가까이서 본 그의 옆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산신각에서 볼 때는 조용하고 무심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눈매가 날카롭게 서 있었다. 로브 밑으로 드러난 팔뚝에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긴장한 얼굴을 하는 걸 처음 봤다.
늑대는 다시 일어났다. 상처 하나 없이. 오히려 눈에서 번개가 더 강하게 튀었다. 나무에 부딪힌 충격이 오히려 놈을 더 예민하게 만든 것 같았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이 다시 흘러나왔다. 어젯밤 창밖에서 들었던 그 소리와 똑같았다. 그러니까 그 밤에도, 이놈이 우리 집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손을 들었다.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공기가 압축되는 소리가 귓속을 울렸다. 위이이잉―, 마치 무언가가 부풀어 오르기 직전의 그 팽팽한 긴장감.
그런데, 그 순간 늑대가 방향을 바꿨다.
그를 향한 게 아니었다.
나를 향해서였다.
다가오는 검은 형체가 눈에 가득 찼다. 황색 눈, 벌어진 턱, 번개가 튀는 이빨.
세상이 그 검은 형체 하나로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준비하던 바람이 미처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놈의 움직임이 그보다 한 걸음 빨랐다.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축축하고, 뜨겁고, 짐승의 것이었다.
그 숨결 안에서 희미하게 탄내가 섞여 있었다. 마치 벼락이 나무를 때린 직후에 나는 그 냄새. 목덜미의 잔털이 그 열기에 곤두섰다. 이빨이 스칠 듯 말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게 느껴졌다.
숨이 멈췄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도망칠 곳도, 막을 방법도 없었다.
그가 나를 지키려던 방향과, 놈이 노리던 방향이 완전히 갈렸다는 사실이, 지금 이 한 순간에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