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공작가의 대리 신부

3화

결혼식은 예상보다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하객은 많지 않았다. 공작가와 백작가의 규모 차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 중 절반은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의 사업 관계자들이었다. 정작 나를 위해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뭐, 예상은 했지만. 나는 예복을 입고 예식장 앞에 섰다. 몸에 딱 맞게 재단된 드레스인데도 어깨가 무거웠다. 이 결혼이 갖는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옷감이 두꺼워서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겠지.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다. 그 손은 따뜻하지 않았다.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손이라기보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사람이 다음 절차로 넘어가는 손 같았다. 제단 앞에 서 있던 남자를 처음 실제로 마주한 순간,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초상화보다 훨씬 나이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눈가의 주름은 더 깊었고, 머리카락엔 은빛이 더 많이 섞여 있었다.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젊게 그려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게 더 좋았다. 적어도 거짓으로 나를 속인 건 화가일 뿐, 저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니까. 선우현 공작은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서아 양."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예식장 안의 소음을 전부 가라앉히는 듯한 음색이었다. "공작님." 나는 짧게 답했다.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그 뒤로 이어진 그의 말은 형식적이지 않았다. "긴장한 얼굴이군." "……티가 났나요." "많이." 그는 옅게 웃었다. 나를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배려하는 웃음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니, 조금 신기했다. "편하게 있어도 된다. 이건 나에게도 익숙한 일이 아니니까." 의외였다. 이 나이에, 이 지위에, 결혼식이 익숙하지 않다니. 몇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거짓말을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눈동자가 흔들리지도, 입가가 어색하게 굳지도 않았다. 그냥, 진짜로 낯선 상황에 놓인 사람의 얼굴이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딱 필요한 만큼만 말했고 나머지는 침묵으로 채웠다. 신관이 늘어놓는 축원의 말들, 반지를 교환하는 순서, 서약서에 서명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말이 많은 사람보다는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 낫다는 걸, 나는 이미 겪어봐서 안다. 식이 끝나고 짧은 축하 인사가 오간 뒤, 나는 그와 나란히 마차에 올랐다. 공작저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차 안은 좁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앉기엔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크기였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 "공작님도 마찬가지예요." 내 대답에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예상 밖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대개 이런 자리에서 신부는 그저 순응하는 태도만 보이니까. "네, 알겠습니다"나 "감사합니다" 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상대의 배려를 그저 받아들이는 자세만 취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결혼이 한쪽만의 거래가 될 필요는 없었다. 나도 뭔가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적어도 시작부터 완전히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사람이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옆얼굴을 훔쳐보며, 나는 조금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곧게 뻗은 콧대, 살짝 다문 입술, 그 위로 드리운 옅은 그늘까지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 사람은, 나를 물건처럼 취급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바랄 건 없었다. 애초에 사랑 같은 걸 기대하고 온 결혼도 아니었으니까. 공작저에 도착한 뒤, 나는 시녀들의 손에 이끌려 신방으로 향했다. 공작은 남은 손님들을 응대해야 한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시녀들은 내 머리 장식을 하나씩 풀어내며 조용히 움직였다. 손끝이 조심스러웠다. 아마 새 안주인 앞에서 실수라도 할까 봐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도 지금 이 저택 전체가 낯설고 조심스러운데, 이 사람들은 오죽할까. 방은 넓고 화려했다. 창가에는 하얀 커튼이 늘어져 있었고, 침대 위에는 붉은 꽃잎이 흩뿌려져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도, 바닥에 깔린 카펫의 무늬도 하나같이 값나가 보였다. 나는 그 화려함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백작가에서 지내던 방보다 몇 배는 넓은 공간이었는데,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시녀들이 물러난 뒤, 나는 혼자 방 안을 둘러보았다. 조용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이 조용함이 좋았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착취하지 못할 조용함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백작가에서의 밤들과는 다를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손끝으로 붉은 꽃잎을 만져보았다. 부드러웠다. 이 저택에서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신경 써서 준비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옅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언니." 낮에 보았던 그 웃음을 지으며, 이지안이 신방 안으로 들어섰다. 결혼식 예복을 벗고 대신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마치 오늘이 자기 결혼식이라는 듯한 옷차림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언니, 미안한데." 이지안은 방문을 닫고 안쪽에서 걸어 잠갔다.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방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제부터 여기, 내가 있을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야."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 정했어. 언니는 오늘 밤 조용히 나가주면 돼." 이지안은 아무렇지 않게, 마치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이야기라도 하듯 그렇게 말했다. 입가에는 여전히 그 웃음이 걸려 있었다. 등줄기로 소름이 끼쳤다. 며칠 전 부엌에서 엿들은 대화가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서아가 신방에 들어가고 나면. 그 뒤에 숨겨진 문장이, 이제야 완전한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