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소문난 악녀, 주막집 알바생

2화

겨울이 오기 전 저잣거리에는 유독 손님이 늘어난다는 게 삼거리집 주모의 말이었는데, 추워지기 전에 미리 술추렴을 해 두려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 했다. 서리가 앉기 시작한 새벽마다 장꾼들은 유난히 서둘러 좌판을 벌였고, 해가 짧아진 것을 탓하며 낮술을 청하는 이들도 늘었다. 서연은 그 말을 들으며 두 손으로 사기 대접을 받아 나르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갔고, 반년 전만 해도 서투르던 손놀림이 이제는 취객들 사이를 스치듯 지나며 술상을 나르는 정도까지 되어 있었다. 뜨거운 국물이 넘칠 듯 담긴 대접을 팔뚝에 얹고도 옷깃 한 번 적시지 않는 재주를 부릴 만큼 손이 야물어져 있었다. 그 성장이 서연에게는 사소한 자부심이었다. 온성가에서는 무엇을 잘해도 셋째 언니의 그림자에 가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손이 빠르다는 것 하나로 주모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막내야, 오늘도 실수 없이 다 돌렸구나." 주모가 그렇게 말하며 국자 끝으로 서연의 어깨를 툭 치던 순간이면, 서연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리는 걸 느꼈다. 온성가의 대청에서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인정이었다. 그러나 자유란 늘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었다. 그날 오후, 서연이 저택에 남아 있던 시간에 안채 별당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셋째 언니 이수아가 시비들을 앞에 두고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는 낮고 떨렸으며 표정은 누가 보아도 억울함을 견디는 사람의 것이었다. 방 안의 화로에서 숯불이 붉게 타올랐고, 그 불빛이 수아의 젖은 눈가를 더욱 애처롭게 비추고 있었다. "제가 참으면 그만인 걸요." 수아가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곁에 있던 어린 시비 하나가 안타까운 듯 손수건을 건넸다. "막내 아가씨가 또 그러셨습니까?" 그 물음에 수아는 잠시 대답을 미루었는데, 그 침묵이야말로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시비들의 얼굴에는 이미 동정과 분개가 반씩 섞여 떠오르고 있었다. 이수아는 스무 살이었다. 서연과 동갑인 열여덟 살이였고, 한양 사교계에서는 '천사 같은 셋째 아가씨'로 불리는 인물이었는데, 그 별명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겉으로는 자매들 중 가장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어 보였으나, 실은 그 다정함이 향하는 방향이 언제나 정확히 자신에게 유리한 쪽이었다는 것을, 서연만이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언젠가 서연이 손끝을 다쳤을 때 수아가 제 치맛단을 찢어 감아주었던 일을 사람들은 아직도 칭송했지만, 그날 밤 서연은 수아가 어머니 앞에서 그 일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이야기하며 눈물지었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세자와의 혼담. 그것이 수아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교계의 평판이 완벽해야 했으며, 완벽한 평판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누군가를 대신 나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로 선택된 것이 하필 서연이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반박하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몇 번은 서연도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어른들 앞에서 사실을 밝히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돌아온 것은 오히려 '동생이 언니를 시기한다'는 손가락질뿐이었다. 그 뒤로 서연은 입을 다무는 법을 배웠다. 그날 저녁 서연이 저잣거리에서 돌아오자, 소영이 문 앞에서 조바심 어린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등롱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며 소영의 얼굴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아가씨, 오늘 낮에 별당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소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주위를 살폈다. "수아 아가씨께서 시비들에게, 아가씨가 저녁상을 걷어차고 소리를 지르셨다고 하셨답니다." 서연은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는데,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저녁상을 걷어찬 적이 없었다. 소리를 지른 적도 없었다. 그날 저녁 서연은 오히려 저잣거리 심부름을 나가느라 별당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언제 있었던 일이라던가요?" 서연이 애써 침착하게 묻자, 소영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저께 저녁이라 했습니다. 아가씨가 삼거리집에서 밤늦게까지 계셨던 그날 말입니다." 서연은 그 말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날 밤 자신이 삼거리집 주모와 함께 항아리를 씻고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저택 안에는 소영 말고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곳에서는 사실보다 언니의 눈물이 더 힘이 세다는 걸 서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믿는 사람이 있어요?" 서연이 담담하게 묻자, 소영은 곤란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몇몇은... 벌써 믿는 것 같습니다. 마님께서도 오늘 낮에 잠시 안색이 어두워지셨다 들었습니다." 그 대답에 서연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한숨에 가까운 소리였다.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몇 달 사이 비슷한 소문이 서너 번은 더 있었는데, 매번 진위를 따지려던 서연의 시도는 오히려 '막내 아가씨가 언니를 모함한다'는 새로운 소문으로 되돌아왔다. 한번은 수아가 아끼는 노리개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노리개를 훔친 것이 서연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던 적이 있었다. 결국 노리개는 수아의 경대 서랍 밑바닥에서 발견되었지만, 그때 이미 저택 안 사람들 절반은 서연을 도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반박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반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서연이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소영이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다. "그래도 이번엔 정말 아니시지 않습니까. 마님께라도 말씀을 드려야……" "소용없어요." 서연이 소영의 말을 자르며 답했다. "말씀드려도 언니가 먼저 눈물을 보이면 그걸로 끝이에요. 늘 그랬으니까." 소영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서연의 옷깃에 묻은 저잣거리의 먼지를 조용히 털어주었다. 다만 그날 밤, 항아리 속 동전을 세면서 서연은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전을 하나씩 헤아릴 때마다 반년 동안의 새벽과 저녁이 손끝을 스쳐 지나갔고, 그 무게가 서연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두 해만 버티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 두 해 사이에 소문이 얼마나 더 자라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두 해가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동전을 세는 손끝을 자꾸만 더디게 만들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며 처마 끝 풍경이 낮게 울렸는데, 그 소리가 유난히 불길하게 들리는 밤이었다. 서연은 항아리를 다시 이불 속 깊이 밀어 넣으며 눈을 감았지만, 별당 쪽에서 아직도 흘러나오는 듯한 시비들의 수군거림이 귓가에 자꾸만 맴돌았다. 내일 아침이면 저택 안에 또 어떤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 있을지, 서연은 짐작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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