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마법학.
이 학원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수업이 하필 첫날 첫 시간이라니, 신은 나에게 유머 감각이 지독하게 나쁜 게 틀림없었다.
아니, 유머 감각이 나쁜 게 아니라 애초에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신이 나를 콕 찍어서 괴롭히기로 마음먹은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정확하게 최악의 타이밍만 골라서 던져줄 수가 없지.
교사는 자신을 이렘 교수라 소개했다.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안경 너머로 눈빛이 유독 서늘한 사람이었다. 정책파 쪽 학자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마법력을 '차별받아서는 안 될 재능'이라 표현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는 조금 반가웠는데, 지금은 그 반가움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은 각자의 마력 유무를 간단히 측정해보겠습니다."
순간 교실 안이 얼어붙었다.
웅성웅성.
몇몇은 기대에 찬 얼굴이었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전통파 자제들이었다. 그들에게 마법력이란 여전히 '괴물의 낙인'이었다. 옆줄에 앉은 학생 하나가 짝꿍에게 소곤거렸다.
"굳이 이런 걸 왜……. 있으면 어쩔 건데."
"쉿. 교수님 듣는다."
들은 것 같은데. 이렘 교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결정구를 교탁 위에 올렸다. 표정 관리 하나는 프로급이었다.
나는 조용히 손끝을 만졌다.
괜찮아. 육 년 동안 숨겨왔잖아. 오늘 하루도 숨길 수 있어.
속으로 되뇌는데도 손끝이 차가워졌다. 심장이 벌써부터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내 몸은 참 솔직하다. 정신은 괜찮다고 우기는데 몸뚱이는 벌써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측정은 간단했다. 교탁 위에 놓인 조그마한 결정구에 손을 올리면, 마력이 있는 사람은 그 안의 빛이 반응한다고 했다. 원리는 몰라도 결과는 명확했다. 빛나면 낙인, 안 빛나면 안전.
순서가 뒤에서부터 진행됐다. 나는 뒷자리였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이렘 교수가 정정했다.
"앞자리부터 하겠습니다. 착오가 있었네요."
인생이란 게 원래 이런 식이었다. 딱 마음 놓으려는 순간에 발밑을 걷어차는 거. 이쯤 되면 그냥 습관적으로 기대를 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앞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결정구에 손을 올렸다. 대부분 반응이 없었다. 손을 올렸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하며 물러나는 모습이 반복됐다. 어떤 학생은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손을 올리기도 했다. 마치 시험 성적 발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다 세 번째 학생, 결정구가 옅게 빛났다.
"오오."
주변에서 감탄이 터졌다. 이렘 교수도 흥미롭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책파 쪽 학생인 듯했다. 마법력 있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남학생은 어깨를 펴며 주위를 둘러봤고, 몇몇은 손뼉까지 쳤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가 나에게 그 힘을 물려주었을 때.
어머니. 강서하.
그 이름을 떠올리자 명치가 쥐어짜이듯 아팠다. 어머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별채의 낮은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 슬픔인지 애정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순서가 가까워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기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마력을 억누르는 요령, 감금되어 있던 육 년 동안 억지로 배운 유일한 기술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짧은 순간이라면 버틸 수 있었다.
버틸 수 있어야만 했다.
내 앞자리 학생이 손을 올렸다. 반응 없음. 안도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다음.
나였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어느새 교탁 앞에 서 있었다. 다리가 나보다 먼저 움직인 모양이었다.
결정구 위에 손을 올렸다.
숨을 참고,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힘을 눌러 담았다. 육 년간 익힌 그 방식대로. 마력이라는 게 원래 물처럼 흐르려는 성질이 있다면, 나는 지금 그 물을 억지로 막아 세운 둑이었다.
결정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됐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 전, 손을 떼려는 순간 결정구 안쪽에서 아주 옅은 빛이 반짝, 하고 스쳤다.
찰나였다.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하지만 이렘 교수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쿵.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발끝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가 재생되고 있었다. 발각, 격리, 어쩌면 그보다 더 나쁜 무언가.
"음, 반응이 없군요. 다음."
다행히 교수는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힐끗 보고는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그 눈빛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안심해야 하는 건지, 더 불안해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서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잠깐 벽에 기대야 했다. 등에 닿는 벽의 냉기가 그나마 정신을 붙잡아줬다.
왜 나에게 이런 힘이 있는 걸까.
왜 어머니는 나에게 이걸 물려줬을까.
답은 뻔했다. 어머니도 선택할 수 없었으니까. 태생부터 마법력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피가 나에게 흘러들었을 뿐이니까. 물려주고 싶어서 물려준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대신, 이 힘을 가진 나 자신을 원망했다.
괴물 같은 힘. 아버지가 그렇게 불렀던 힘.
서인호. 청하 공작. 마법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를, 딸을 별채에 격리시킨 남자.
결혼도 왕명이었고, 사랑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마법력을 지닌 것을 알고 난 후, 아버지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들었다. 혐오, 두려움, 그리고 경멸. 처음부터 없던 애정이 더 차가워질 수 있다는 걸, 아버지는 몸소 증명해 보인 셈이었다.
그 눈빛을 나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던 그 눈으로, 나를 보곤 했으니까.
"괜찮아?"
복도 끝에서 태민이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표정을 정리했다. 벽에서 등을 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세를 바로 했다.
"네,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
"원래 안 좋아요."
태민은 잠시 나를 살피다가 더는 캐묻지 않았다. 이런 무던함이 고마울 때가 있다. 캐묻지 않고, 몰아붙이지 않고,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
대신 손에 들고 있던 걸 내밀었다. 따뜻한 차가 담긴 병이었다.
"마셔. 긴장하면 몸이 차가워지니까."
뭐야, 이 아저씨 같은 배려는. 아직 나보다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하는 짓은 꼭 오래 산 사람 같았다.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대신 조용히 병을 받아 들었다. 손바닥에 닿는 온기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고마워요."
"됐어."
짧은 대답이었다. 태민은 그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옆에서 걸었다. 그게 이상하게 편안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이 이렇게 편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병 속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몸에 온기가 조금씩 돌아오는 게 느껴졌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이렘 교수의 그 눈빛.
분명히 뭔가 눈치챈 것 같았는데.
그 짧은 순간, 결정구가 반짝였던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면 어떡하지. 교수가 만약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소문이 퍼진다면, 그다음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별채에 갇혀 있던 육 년이 그대로 다시 반복되는 걸까.
머릿속에서 나쁜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태민이 뭔가 눈치챈 듯 나를 흘긋 보았지만, 나는 애써 표정을 지워냈다.
다음 시간, 다시 마법학 교실로 향하려던 나를 이렘 교수가 조용히 불러 세웠다.
"강소율 학생, 잠깐 시간 좀 있나요?"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