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생하니 마녀 만렙이라니

1화

천장에 금이 가 있었다.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흙을 바른 지붕, 그 틈으로 새벽빛이 실처럼 새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나는 그 광경을 보며 한동안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왜냐하면 나는 분명히, 어제까지, 서울 어느 원룸에서 게임 '모래벌의 작은 마녀' 이벤트 던전을 클리어하다 과로로 뻗어 잠들었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분명 침대는 매트리스였고, 이불은 극세사였고, 옆에는 다 식은 컵라면 국물까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누워 있는 곳은 나무판자를 대충 짜서 만든 침상이었고, 깔린 것은 짚을 채운 이불이었으며, 코끝에 스치는 냄새는 흙과 장작 타는 연기였다. 그리고 지금 내 몸은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대 보았다. 조그맣고 통통한 손가락, 손톱 밑에 낀 흙, 손등에 남은 화상 흉터 하나까지 게임 원화 그대로였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거 뭐야, 진짜, 씨발.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아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다시 접었다 펴보았다. 어른의 감각으로 아이의 관절을 움직이는 그 이질감이, 뇌를 통째로 흔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서리였다. 게임 '모래벌의 작은 마녀'의 히든 서브 히로인이자, 초반부에 조연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4년 뒤 대화재 사건에서 어머니와 함께 불타 죽는 걸로 처리되는, 이름 있는 몹 취급 캐릭터. 나는 그 캐릭터의 결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화재 씬을 클리어 조건으로 삼는 서브 퀘스트를 세 번이나 재도전하며 공략 영상까지 찾아봤으니까. 첫 번째 시도에서는 타이밍을 놓쳐 마을 절반이 재가 됐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엉뚱한 NPC를 구하다 시간을 다 써버렸고, 세 번째에야 겨우 클리어 조건을 채웠던 기억이 났다. 마을 창고에 보관된 저주받은 유물이 폭발하며 시작되는 불길, 대응 마법사 부족, 좁은 골목, 무너지는 지붕들. 게임 안에서는 그저 배경 텍스트로 스치는 사건이었는데, 지금 나는 그 배경 텍스트 안에 실제로 들어와 있었다. 4년. 정확히 4년 뒤, 이 마을 모래벌은 통째로 불탄다.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여름 축제 다음 날 새벽, 창고지기가 술에 취해 유물 봉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는, 게임 로어 텍스트의 한 줄. 그 한 줄이 지금은 나에게 사형 선고문처럼 읽혔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좁은 방 안, 낡은 나무 서랍장 하나와 초 한 자루, 그 위에 놓인 삐뚤빼뚤한 나무 인형까지 전부 게임 배경 아트에서 봤던 그림 그대로였다. 벽에 걸린 마른 약초 다발, 창틀에 앉은 나방 한 마리, 심지어 바닥에 깔린 돗자리의 얼룩 위치까지도. 소름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정말 여기가 게임 속이라면. 정말 4년 뒤에 이 마을이 불탄다면. 나는 살아야 했다. 아니, 살아남는 걸 넘어서 뭔가를 바꿔야 했다. 게임 지식이라는 압도적인 치트키를 가지고 이 몸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4년을 흘려보낸다는 건, 그야말로 인과율이 억까를 부리는 걸 방관하는 짓이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잠시 이마를 짚었다. 머릿속이 팽이처럼 돌았다. 침착해, 침착해라. 나는 공략을 봤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여기서 유일하게 미래를 아는 사람이다. 이건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다. 말은 그렇게 되뇌었지만 손끝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이 세계의 시스템을 볼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상태를 확인해 보자 마음먹는 순간, 시야 한켠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이서리] Lv.1 [마력] 12/12 [클래스] 마녀 (견습) [스킬] 없음 레벨 1. 스킬 없음. 마력 12. 그야말로 최약체 출발이었다. 나는 그 초라한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마력 12라니, 이 게임에서 마력 12는 초보 마을 촌장이 키우는 고양이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게임에서 마녀 클래스가 얼마나 사기적인 크래프팅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를. 초반에는 약초 하나 캐서 물약 만드는 게 다지만, 조합식을 제대로 알고 재료 등급을 올리면 후반부에는 도시 하나를 통째로 정화하는 대마법까지 찍는 클래스였다. 나는 그 조합식을, 최소한 초중반 라인업만큼은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었다. 상급 치유약, 화염 저항 물약, 심지어 그 귀한 정화의 성수까지. 문제는, 나는 공략 유저였고, 이 세계는 현실이라는 거였다. 게임에서는 죽어도 리트라이가 가능했다. 물약 조합에 실패하면 재료만 날릴 뿐, 캐릭터가 다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몸은, 이 손가락은, 진짜로 데이고 진짜로 아프고 진짜로 죽을 수 있는 몸이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무문이 삐걱 열리며 낡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들어왔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얼굴, 이 목소리, 게임 오프닝 컷신에서 딱 세 컷 나오고 사라지는 조연 NPC, 이순영이었다. 내 생모. "서리야, 일찍 일어났네." 그녀가 물동이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갈라지고 튀어나온 마디, 오랜 노동으로 굽은 손가락. 게임에서는 텍스트 한 줄로 지나갔던 "고생한 어머니"라는 설명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손끝의 굳은살로 실체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아궁이 쪽으로 걸어가며 낮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그 뒷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아니, 낯설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다. 4년 뒤 저 등이 불길 속으로 사라진다는 걸. 목구멍이 꽉 막혔다. "엄마." 나는 목이 잠긴 채로 말했다. "오늘부터 저, 산에 좀 다녀올게요." "산에? 혼자?" 이순영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거긴 마녀 견습들이나 다니는 위험한 곳이야. 짐승도 나오고, 길도 험하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마녀는 이 마을에서 환영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병 고치는 재주는 쓸모 있다 여기면서도, 뒤에서는 재수 없는 존재 취급을 당하는, 애매한 경계선의 인간들. 아이가 마녀의 길을 걷겠다 하면 좋아할 부모는 없었다. 나는 그 마녀라는 딱지를 스스로 짊어져야 했다. 4년 뒤 불타 죽지 않으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저 마녀거든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이순영의 눈이 커졌다. 손에 들고 있던 나무 국자가 살짝 흔들렸다. "뭐라고?" 나는 아직 그녀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4년 뒤 마을이 불탄다는 말을, 일곱 살짜리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어떤 어른이 믿어줄까. 나조차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몇 분이 걸렸는데. 그러나 최소한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부터 4년 안에, 나는 이 마을에서 가장 강한 마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개가 짖었다. 저 멀리 우물가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빨래를 하며 웃고 있었고, 지붕 위로는 참새 떼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 평화가 정확히 4년 뒤 재로 변한다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아직 몰랐다. 첫 번째 크래프팅 시도가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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