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밤, 서해는 강도현을 다시 불렀다.
부름을 받고 나선 길, 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낮게 깔려 달빛마저 삼켜버린 밤이었다. 강도현은 그 어둠 속을 걸으며 어제의 매질로 남은 통증을 곱씹었다. 어깨는 여전히 뻐근했고, 걸을 때마다 옆구리에서 뜨끈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무진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관리사 앞에 도착하자, 서해가 팔짱을 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불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도 그 눈빛만은 선명하게 빛났다. 악의로 번들거리는 눈빛이었다.
"야간 작업, 뒷간 정화조 청소다."
가장 험한 일이었다. 무진문 안에서도 아무도 자원하지 않는 일. 정화조 청소는 잡역 중에서도 최하급 벌칙으로 취급되는 노동이었다. 서해의 눈빛에는 확실한 악의가 담겨 있었다.
"오늘도 혼잡니까."
"혼자는 아니지."
서해가 웃었다. 입꼬리만 슬쩍 올라가는, 즐거움이라기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참새랑 몇 명 더 붙여줄 테니, 감사하게 여겨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뒷간 뒤편 마당에 도착했을 때 곧 드러났다.
참새와 잡역 제자 셋이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손에는 정화조 도구가 아니라, 짧은 목봉이 들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목봉의 단단한 결이 눈에 들어왔다. 강도현은 그 순간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또 이건가.'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다른 것은 오늘은 도구를 든 인원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뿐.
"오늘은 일 안 하고 놀아도 될 것 같은데."
참새가 목봉을 어깨에 걸치며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도 그 얼굴에 걸린 미소가 또렷하게 보였다. 즐거움을 감추지 않는, 오히려 즐거움을 과시하는 그런 미소였다.
강도현은 뒷걸음질쳤다. 등 뒤가 담벼락에 닿았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등을 통해 전해졌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뭘 하려는 거야."
"뭘 하겠어, 도련님 몸이나 좀 풀어드리려고."
주변에 서 있던 다른 셋도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왔다. 좌측에서 하나, 우측에서 하나, 그리고 정면에서 참새가. 완전히 포위된 형태였다.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 목봉이 날아들었다.
'퍽.'
어깨에 정확히 맞았다. 강도현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숨이 턱 막혔다. 눈앞에 하얀 불꽃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어이구, 벌써 넘어지시네."
또 다른 봉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등이었다.
'퍽. 퍽.'
연달아 매질이 이어졌다. 강도현은 팔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등에 떨어지는 매마다 뼈가 울리는 듯한 진동이 전해졌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반항하면···'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 발길질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윽···"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참새는 그 소리를 듣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 소저가 버릴 만하네. 이렇게 약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어."
그 말에 강도현의 속에서 무언가 뒤틀렸다.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그조차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주변 제자들도 웃으며 발길질을 거들었다. 좌측에서 발이 날아왔고, 우측에서 목봉이 떨어졌으며, 정면에서는 참새가 태연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흙과 냄새가 뒤섞인 바닥에 강도현의 몸이 처박혔다.
'숨을 못 쉬겠다···'
시야가 흐려졌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와 입안 가득 고인 흙 맛이 뒤섞였다. 그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로 벌써 뻗으면 재미없잖아."
한 제자가 그렇게 말하며 목봉을 다시 들어 올렸다.
'퍽.'
무릎 뒤쪽을 정확히 노린 매질이었다. 강도현의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더는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매질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고통이 선명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통증조차 무뎌졌다. 몸이 스스로 감각을 차단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참새가 손짓하자, 나머지 제자들이 목봉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너무 죽여놓으면 서 관리인이 곤란해하니까."
참새는 마지막으로 강도현의 얼굴 옆에 침을 뱉고 몸을 돌렸다. 침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강도현은 그것을 닦을 힘조차 없었다.
"내일도 이런 일 있을 테니 각오해."
발소리가 멀어졌다. 웃음소리도 함께 멀어졌다. 마당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강도현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온몸이 불에 타는 듯 아팠다.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생각이 자꾸 흐려졌다. 눈앞이 어두워지다 다시 밝아지곤 했다.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이 진흙탕에서 밤을 새울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그를 붙들었다.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자면 안 돼.'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댔다. 손끝이 떨렸다.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상태였다.
달빛조차 흐린 밤이었다. 구름이 여전히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뒷간 냄새와 진흙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 냄새마저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오히려 서글펐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잡역각의 자신의 방까지 기어갔다. 몇 걸음마다 멈춰서야 했다.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리가 풀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방 안의 어둠이 그를 감쌌다.
숨이 가늘게 이어졌다. 정신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서랍 쪽으로 뻗어갔다. 몸의 명령이 아니라, 어떤 다른 힘이 손을 이끄는 듯했다.
서랍을 열고 목함을 꺼냈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이었다. 낡은 나무 표면에는 손끝으로 만든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아버지···'
목함을 여는 손끝이 떨렸다. 안에는 작은 씨앗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씨앗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표면에 미세한 결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정교하게 그려 넣은 무늬 같았다.
강도현은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이 그렇게 이끌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처럼.
그 순간이었다.
씨앗이 미약하게 진동했다.
'···?'
처음에는 착각이라 생각했다. 손끝의 신경이 지쳐서 만들어낸 환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진동은 점점 강해졌다. 손바닥 위에서 씨앗이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은은한 백색 광채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낡은 벽과 바닥이 빛에 물들어 마치 다른 공간처럼 보였다. 강도현은 놀라 손을 떼려 했지만, 씨앗은 이미 그의 피부에 파고들고 있었다.
"···!"
소리 없는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졌다. 뼈마디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조금 전 매질로 인한 통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 이것은 몸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부터 폭발하는 고통이었다.
'뭐, 뭐야 이게···'
방 안에 가득한 빛 속에서, 어렴풋이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무거운, 오래전에 들었던 목소리였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도현아."
강도현의 눈이 커졌다. 통증조차 잠시 잊을 만큼 놀라운 순간이었다.
"아, 아버지···?"
목소리는 방 안 어딘가에서 울려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의 머릿속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듯했다.
"이 씨앗은 만물모근이다. 세상 만물의 근본을 담은 것."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마치 오래전에 미리 녹음된 것처럼, 감정이 담기지 않은 채로. 그럼에도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네가 가장 절박한 순간, 가장 밑바닥에서 이것을 깨우게 될 것이다."
"아버지, 지금 어디···"
대답은 없었다. 목소리는 그저 정해진 말만을 이어갔다. 마치 대화가 아니라, 오래전에 남겨둔 유언을 재생하는 듯했다.
"천진만상결. 이 비기는 역천의 이치를 담고 있다. 하늘의 순리를 거스르는 힘이니, 함부로 쓰지 마라.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라."
빛이 더욱 강해졌다. 강도현의 몸 위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팔과 가슴, 등을 타고 흐르는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문양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살갗이 뜨거워졌다가 다시 서늘해지곤 했다.
통증은 극에 달했다. 강도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정신을 잃으면 끝이라는 생각만이 그를 붙들고 있었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견뎌야 한다. 견뎌야···'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자리를 바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뼈가 다시 짜맞춰지는 것 같기도 했고, 핏줄 속에 낯선 것이 흘러드는 것 같기도 했다. 감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방 안의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문양은 피부 깊숙이 스며들며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버텨내거라. 그것이 강씨 가문의 핏줄이 할 일이다."
그 말과 함께, 방 안은 다시 어둠으로 돌아왔다. 빛이 사라지자 방 안은 원래의 낡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도현은 바닥에 쓰러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의 통증은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매질로 생겼던 상처마저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여전히 아프긴 했지만, 그 아픔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는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올려 살펴보았다. 씨앗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씨앗 자체가 그의 몸속으로 완전히 스며든 것 같았다.
'천진만상결. 만물모근. 아버지가 남긴 것들이 대체···'
머릿속에 물음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답을 찾을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낯선 박동으로 뛰기 시작했다. 마치 몸속에 새로운 무언가가 자리를 잡은 것처럼.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낡은 방 안, 흐릿한 달빛 아래에서, 그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변해 있었다. 두려움과 혼란이 여전히 그 눈에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힘이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구름이 달을 가리고 있었다. 내일 밤이면 또다시 같은 매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참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일도 이런 일 있을 테니 각오해.'
강도현은 자신의 손바닥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그 손바닥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이 힘이··· 정말 내게 온 것이라면.'
방 안의 어둠 속에서, 그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다음 날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