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대전의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향로에서 올라오는 백단향 냄새부터 맡았다.
여섯 해 동안 매일 맡아온 냄새였다. 이 냄새가 나면 몸이 먼저 허리를 곧게 세웠다. 습관이란 게 그렇게 무섭다. 냄새 하나로 등뼈가 알아서 펴지고, 턱이 알아서 당겨지고, 시선이 알아서 바닥에서 한 치 위로 고정된다. 여섯 해라는 시간이 몸에 새겨놓은 것이 이런 것들이었다.
오늘은 정비 책봉식이었다.
육 년간 왕태자궁에서 함께 예법을 배우고, 함께 시를 외우고, 함께 밤을 새워 국서를 필사했던 나와 강서윤. 둘 중 하나가 이도현의 정비가 되는 날.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대전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예부 관료들, 종친들, 지방에서 올라온 대신들까지. 다들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다들 나와 서윤을 흘깃거렸다.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가, 내가 눈길을 주면 재빨리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익숙했다. 이런 시선 속에서 사는 법도 여섯 해 동안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내관의 목소리가 대전을 갈랐고, 나는 강서윤과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옆에서 서윤의 옷자락이 사각, 소리를 냈다.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원래 저런 애다. 태산이 무너져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나는 곁눈질로 그 애의 손을 봤다. 무릎 위에 얹힌 손가락 하나 떨리지 않았다. 나였으면 벌써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을 텐데.
이도현이 단상 위로 올라섰다.
스물세 해를 산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붉었다. 흥분한 걸까, 아니면 술을 마셨을까. 걸음걸이도 평소보다 조금 무거워 보였다. 발끝이 살짝 끌리는 듯한, 아주 미묘한 흔들림.
나는 별생각 없이 그의 입술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늘, 나는 나의 정비를 발표하겠다."
그래, 그러시겠지. 나 아니면 서윤이겠지.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음 순서를 그리고 있었다. 정비가 되면 해야 할 일들, 인사해야 할 사람들, 외워야 할 새로운 예법들. 육 년을 준비했으니 하루 만에 못 할 것도 없었다.
"자작령의 다연을 정비로 책봉한다."
순간 대전 안의 모든 숨소리가 얼어붙었다.
다연이라니. 그게 누구지.
내가 그 이름을 떠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삼 초쯤이었다. 한지훈. 이도현의 유일한 친우이자, 어릴 적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하인. 그자의 여동생.
평민이었다.
대전 안이 술렁였다. 아주 작은 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부채를 쥔 손이 흔들리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누군가 헛기침을 삼키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겹쳐 대전을 낮게 웅웅거리게 만들었다.
"……전하."
누군가 신음처럼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부 관료였던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 얼굴이 얼마나 하얗게 질렸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사람, 오늘 책봉식 절차를 짜느라 밤을 새웠다고 들었는데. 다 헛일이 되었겠구나.
나 역시 다르지 않았을 거다.
육 년.
열넷의 나이에 왕태자궁으로 불려 들어와,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웠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어느 손으로 집어야 하는지, 어느 순간에 웃어야 하고 어느 순간에 무표정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여섯 해에 걸쳐 몸에 새겼다.
밤마다 시를 외웠다. 새벽마다 국서를 필사했다. 손끝에 먹물이 밴 날이 며칠이었는지 세는 것도 그만둔 지 오래였다.
그게 오늘, 이 한 문장으로 무효가 되었다.
"두 사람의 혼약은."
이도현이 나와 서윤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것으로 처리하겠다."
자연스럽게, 라니. 무엇이 자연스럽다는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섯 해를 함께 지낸 두 사람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면, 이 나라의 법도라는 게 대체 뭘 위해 존재하는 건지.
그러나 얼굴에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 하나는 육 년의 교육이 제대로 해낸 일이었다.
옆에서 서윤의 손끝이 아주 살짝, 내 손을 스쳤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그 애가 지금 웃고 있다는 것을.
웃음이라니,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곁눈질로 서윤을 살폈다. 입꼬리는 그대로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냉정한 얼굴. 하지만 나는 그 애의 눈빛을 안다. 저건 계산하는 눈이다. 육 년을 붙어 지내면서 배운 게 예법과 시뿐만이 아니었다. 강서윤이라는 사람을 읽는 법도 함께 배웠다.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는 거지.
다연이 단상 위로 불려 나왔다.
화려한 예복을 입었지만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자꾸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시선은 바닥과 이도현 사이를 불안하게 오갔다. 누가 봐도 이 자리가 처음이고, 이런 시선이 낯선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저 모습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저 여자는, 나보다 여기 어울리지 않는다.
옹졸한 생각인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지우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오늘부로 왕태자궁에서의 임무를 마친다."
이도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육 년을 함께 지낸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서류를 읊는 어조였다. 눈길조차 오래 주지 않았다. 발표를 끝낸 그의 시선은 벌써 다연에게 가 있었다.
서운했나. 잠깐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의외로,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가 가슴 안쪽에서 훅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뚝 끊어진 것처럼. 육 년 동안 나를 조이고 있던 게 뭔지 이제야 알겠다는 느낌이었다.
대전을 나서는 길, 서윤이 내 소매를 슬쩍 잡아당겼다.
"은채야."
"응."
그 애의 목소리는 대전에서와 똑같이 낮고 차분했다. 방금 자기 혼약이 파기된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오늘 저녁, 별당으로 와."
짧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 서윤이 뭔가를 벌써 생각해 두었다는 것.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했다.
대체 저 애 머릿속에서 지금 무슨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복도를 걸으며 나는 창밖을 보았다. 봄볕이 유난히 밝았다. 회랑을 따라 늘어선 매화나무에 아직 꽃이 몇 송이 남아 있었다. 육 년 만에 처음으로, 이 궁이 나를 옭아매는 곳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지나가는 시녀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파혼당한 여자, 육 년을 헛수고한 여자. 그런 말들이겠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예전처럼 뾰족하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날 밤, 별당에 도착했을 때 서윤은 이미 촛불을 여러 개 켜 놓고 서류 뭉치를 뒤지고 있었다. 방 안이 온통 종이 냄새와 먹 냄새로 가득했다.
"뭐 하는 거야, 이 밤에."
"우리 혼약 문서."
서윤이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낡고 누런 종이였다. 육 년 전, 우리가 왕태자궁에 처음 들어오던 날 작성된 문서라는 걸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이거, 왕실 법도상 완전히 파기된 게 아니야."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파기가 안 됐다니, 방금 대전에서……"
"말로만 소멸이라고 했지, 절차는 밟지 않았어."
서윤의 눈이 촛불에 반짝였다.
"혼약을 완전히 파기하려면 예부의 인장이 세 곳에 찍혀야 해. 지금 이 문서에는 한 곳뿐이야."
그러니까 대전에서 있었던 그 선언은, 법적으로는 아직 절반짜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아직 우리 손에 있는 카드야."
나는 그 애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저 눈빛, 알고 있다. 뭔가를 얻어낼 궁리를 하고 있을 때의 눈빛. 육 년 동안 저 눈빛이 나를 향한 적은 몇 번 없었다. 대부분은 남을 향했다. 그런데 지금, 저 눈빛이 나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뭘 하려고?"
서윤은 대답 대신 웃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