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청림 학원의 정문을 처음 지날 때, 나는 이곳이 명성만큼이나 위압적이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 거대한 석조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줄지어 서 있었고, 정문에서부터 본관까지 이어지는 대로에는 마차 몇 대가 나란히 서서 짐을 부리고 있었는데, 그 마차에 새겨진 문장들만 훑어봐도 이 나라 상위 귀족가의 절반은 여기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사이를 지나는 학생들의 교복은 하나같이 반듯했고, 걸음걸이마저 어딘가 훈련된 듯 절도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곳에는 왕국 각지의 유력 가문 자제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이 공기 중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숨 쉬기도 눈치 봐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손에 든 입학 서류를 괜히 한 번 더 확인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약학과 S반 명단에 내 이름이 걸려 있는 걸 확인하고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안에 있던 모든 학생이 남학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열한 명 남짓 되는 얼굴들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고, 나는 잘못된 강의실에 들어온 사람처럼 문고리를 잡은 채 얼어붙었다.
"어, 여학생?"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오고, 뒤이어 몇몇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강의실 안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리는 걸 느끼면서 나는 이게 앞으로 몇 년간 익숙해져야 할 상황이라는 걸 직감했다. 약학과 자체가 원래 여학생이 적은 학과이긴 했지만, 이번 기수 S반에는 나 혼자였다는 사실을 담당 교수에게 전해 듣고서야 실감이 났다. 교수는 서류를 넘겨보며 대수롭지 않게 "올해는 지원자가 자네 하나였네" 하고 덧붙였는데, 그 말이 위로인지 조롱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심드렁했다. '올해 여학생 지원자가 나 하나였다니, 이건 좀 웃기지도 않네.' 자리를 찾아 앉는 동안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위아래로 훑는 게 느껴졌는데, 그중 몇은 순수한 호기심이었지만 몇은 명백히 다른 종류의 관심이었다. 나는 애써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창가 쪽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옆자리 학생이 슬쩍 몸을 틀어 거리를 벌리는 걸 보고서야 '아, 이것도 익숙해져야겠구나' 싶었다.
첫 수업은 약재 분류학이었는데, 교수가 칠판에 도표를 그려가며 설명하는 내용은 이미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보다 세 단계는 앞서 있었다. '역시 명문은 명문이구나.' 필기를 따라가느라 손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서던 중, 창밖으로 훈련장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딱히 볼 생각은 없었는데, 쇳소리가 유리창을 넘어 복도까지 울릴 정도로 요란해서 자연스레 눈이 그쪽으로 갔다. 기사과 학생들이 검을 맞대며 훈련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시선을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햇살 아래 마치 조각된 금속 세공품처럼 정교하게 흩날렸고, 서늘하게 가라앉은 푸른 눈은 마주친 상대의 숨을 멈추게 할 듯한 위압감을 담고 있었으며, 검을 휘두르는 몸짓 하나하나가 마치 대리석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정연함을 갖추고 있었다. 상대하던 학생이 세 번 연달아 검을 놓치고 뒤로 밀려났는데도 그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고, 그가 검을 거두는 순간 주변 생도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는 걸 보고서야, 나는 저 사람이 이번 입시에서 수석을 차지했다는 강도윤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역시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네.' 입학식 날 명단 발표에서도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 순서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문득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창가에서 물러났는데, 그 짧은 눈맞춤 한 번이 왜 이렇게 심장을 덜컹하게 만드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장이 괜히 한 번 크게 뛰었다가 이내 잦아드는 걸 느끼며 나는 복도 벽에 등을 붙이고 잠시 숨을 골랐다. '괜히 얽히지 말자.' 파혼 사건 이후로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것 자체가 조건반사적으로 불편해졌고, 특히 저렇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사람과는 애초에 거리를 두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용 앞에 얼쩡거리는 개구리는 결국 밟히거나 먹히는 법이니까.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기숙사로 돌아온 저녁, 다은이 짐 정리를 도와주며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물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옷가지 몇 벌과 책 몇 권이 전부였는데도 다은은 마치 대단한 이삿짐이라도 되는 양 옷장 안을 정리하며 종알거렸다. "아가씨, 첫날인데 다들 놀라진 않았어요? 여기 원래 남자들만 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 그래도 좀 낯설긴 해." 대충 그렇게 웃어넘겼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종일 느꼈던 낯선 시선들의 무게가 쌓여 있었다. 강의실에서의 시선도, 복도에서 마주친 그 서늘한 눈빛도, 하나같이 익숙해지기엔 아직 멀어 보였다.
다은은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목소리를 낮췄다. 그 낮아진 어조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가씨, 그런데 얼마 전에 사교계에서 들었는데요." 그 말투에서 이미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걸 짐작한 나는 숨을 살짝 죽인 채 다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손끝이 저절로 옷장 손잡이를 매만졌다. "조민혁 도련님이랑 백서린 영애, 정식으로 혼약을 맺는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 안쪽이 잠깐 뻐근하게 조여드는 걸 느꼈다. "그래? 잘 됐네." 목소리가 다행히 흔들리지 않고 나온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다은은 눈치를 살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나는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면서 이 소문이 곧 학원 안에서도 조용히 퍼져나갈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청림 학원처럼 귀족 자제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이런 소식이 도는 속도는 아마 기사과의 검보다 빠를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이 퍼지고 나면, 오늘 강의실에서 받았던 그 낯선 시선들이 어떤 종류의 것으로 바뀔지는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