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날 아침, 권서은은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했으나 그 사실을 축하해줄 사람은 저택 안에 아무도 없었다. 창밖으로는 겨울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고, 그 빛은 마치 이 저택의 무관심을 닮은 듯 서은의 방까지 닿기 전에 이미 힘을 잃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세아의 새 드레스를 고르는 데 온 시간을 쏟았고, 재봉사를 불러 옷감의 결을 확인하고 레이스의 폭을 재는 소리가 복도를 타고 서은의 방까지 들려왔다. 아버지는 서재에서 사교계 인사들에게 보낼 서한을 쓰느라 딸의 생일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했으며, 그 서한의 개수는 아마 오늘 하루 동안 서은의 이름이 아버지의 입에서 불리는 횟수보다 많을 것이었다. 서은은 그 무관심에 익숙했으나, 익숙함이 아픔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함은 아픔을 삼키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뿐, 그 아픔의 뿌리까지 뽑아내지는 못했다.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자신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거울은 오래된 것이라 은박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그 벗겨진 자리마다 낯선 그늘이 얼굴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갈색 머리칼은 윤기가 없었고, 눈매는 늘 무언가를 참는 사람의 그것처럼 조금 처져 있었다. 손끝으로 뺨을 가만히 눌러보았을 때, 그녀는 그 살갗이 유난히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이 방 자체가 계절과 무관하게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세아는 웃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다 끌어모으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서 있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걸까.*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지금까지는 그런 비교조차 사치라 여기며 삼켜왔던 마음이었는데, 오늘만큼은 그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열다섯 해 동안 쌓아온 인내가 오늘 아침, 아주 작은 균열을 내며 벌어지고 있었다.
세아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졌다. 부모의 웃음, 손님들의 관심,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서은의 것이었던 드레스와 장신구까지도. 그것은 세아가 원해서라기보다, 부모가 스스로 그렇게 내어준 결과였다. 세아가 울면 세상이 무너진 듯 달려가던 그들이, 서은이 아플 때는 하녀 한 명을 보내는 것으로 끝을 냈던 밤들이 있었다. 열이 펄펄 끓어 이불을 움켜쥐고 밤을 지새우던 날에도, 문틈으로 들어오는 발소리는 하녀의 것이었을 뿐, 어머니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는 한 번도 들려온 적이 없었다.
서은은 거울 속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추위 때문인지 억눌린 분노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떨림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손을 뻗어 화장대 위에 놓인 낡은 빗을 집어 들었다. 빗살 사이로 머리칼을 넘기며,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잊은 채 오래도록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오늘만큼은, 아무도 나를 지나쳐 가지 못하게 하겠어.*
그 다짐은 낯설었다. 지금까지의 서은이라면 그런 생각조차 죄스럽게 여겼을 것이었으나, 오늘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쪽, 오래된 손수건 아래 숨겨져 있던 것은 어머니가 오래전 잊어버린 듯 방치해둔 진주 귀걸이였다. 서은은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동안 바라보았는데, 진주알이 방 안의 흐린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것이 마치 오랫동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던 것들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기를 기다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것을 귓가에 걸었고,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조금씩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세아의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는데, 그것은 하녀에게 새 리본의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소리였다. "이건 너무 칙칙하잖아. 다시 가져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벽을 타고 서은의 방까지 스며들었고, 뒤이어 하녀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목덜미에 힘줄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이 점점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세아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즉시 채워졌다. 리본 하나, 드레스 하나에도 저택 전체가 움직였고, 그 소란스러움이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서은은 문득 자신이 태어난 날에도 이런 소란이 있었을까 생각했으나, 곧 그 생각을 지웠다. 답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아가 가진 것은 세아가 태어나며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니야. 내가 내어준 거지. 매번, 매번 내가.*
그 생각에 도달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오래 눌러둔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소리에 가까웠다.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게 웃고 있었다. 그 낯섦이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처음으로 스스로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그것이 귓가에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작은 흔들림조차, 지금까지의 서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종류의 사치였다.
서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에 이끌리듯 가벼웠다. 옷장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오늘을 위해 오래전부터 몰래 맞춰둔 파란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옷감은 짙은 남빛으로, 촛불 아래에서는 거의 검게 보일 정도로 깊은 색을 띠고 있었으나, 낮의 빛 아래에서는 은은한 광택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세아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그녀만의 작은 반항이었다. 재봉사에게 몇 달 전, 세아의 옷을 맞추러 온 김에 슬쩍 치수를 재게 하고 눈에 띄지 않을 색을 골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스스로를 위한 작은 위안이라 여겼을 뿐인데,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예정된 일처럼 느껴졌다.
*오늘 밤, 나는 더 이상 배경으로 서 있지 않을 거야.*
창밖으로 마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길을 구르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뒤섞여, 저택 전체가 서서히 잔치의 열기로 채워지고 있음을 알렸다. 서은은 드레스를 꺼내 몸에 걸치며, 그 천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낯선 흥분을 느꼈다. 단추를 하나씩 채워가는 손끝이 조금씩 떨렸지만,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거울 앞에 다시 선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낱낱이 훑어보았다. 파란 드레스 위로 흘러내리는 갈색 머리칼, 귓가에서 조용히 빛나는 진주,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 자리한, 처음으로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빛. 오늘은 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세아를 부르는 다급한 음성이었다. 서은은 그 소리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이내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지어본 적 없는 종류의 미소였고, 그 낯선 표정을 거울은 조용히 되비추고 있었다. 곧 손님들이 홀을 채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은은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서게 될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채로 방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