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입구 쪽에서 터져 나온 소란은 순식간에 연회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샹들리에의 황금빛 아래 술렁이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일순 뚝 끊기더니, 곧 낮은 탄식과 수런거림으로 뒤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서은을 향해 있던 눈길들이 마치 물결처럼 방향을 바꾸었고, 그 시선의 흐름은 마치 누군가 연회장 한복판에 돌을 던진 듯 파문처럼 번져나갔다. 서은은 그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며, 손에 쥐고 있던 리본핀을 살짝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유일하게 확실한 것처럼 느껴졌다.
"세아 아가씨께서 다치셨어요!"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연회장은 완전히 다른 공기로 바뀌었다. 음악을 연주하던 악단조차 손을 멈추고 그쪽을 돌아보았으며, 잔을 든 채 담소를 나누던 이들도 저마다 목을 길게 뻗어 소란의 근원을 확인하려 애썼다. 곧 자작부인이 치맛자락을 붙잡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고, 아버지 권도현 역시 서둘러 그 방향으로 향했다. 그의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마저 다급하게 들렸다. 서은은 잠시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관심이라는 얇은 막이, 한순간에 찢겨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이번엔 또 뭘까.*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서은은 스스로도 놀랐다. 걱정보다 먼저 의심이 앞서는 자신이, 마치 오래 병을 앓아 감정이 굳어버린 사람 같았다.
곧이어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세아가 등장했다. 한쪽 팔을 부축받은 채, 발목을 살짝 끌며 걸어오는 그 모습은 애처로워 보였으나, 서은의 눈에는 그 걸음이 지나치게 정갈하다는 것이 먼저 들어왔다. 절뚝이는 다리마저도 마치 무대 위에서 연습한 동작처럼 각도가 일정했고, 고개를 떨구는 타이밍조차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다친 사람의 걸음이라기보다는, 다친 척을 연습한 사람의 걸음에 가까웠다.
"세아야, 대체 무슨 일이니." 자작부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으며 딸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 손끝은 세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느라 미세하게 떨렸는데, 그 떨림에는 진심이 담겨 있는 듯도 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어요." 세아가 여리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으나, 그 떨림 사이로 언뜻 스쳐 지나가는 눈빛이 서은을 향해 던져졌다. 그것은 상처 입은 자의 눈빛이 아니라, 승리를 확신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마치 사냥을 마친 뒤 먹잇감을 확인하는 어린 짐승의 눈처럼, 잠깐이었으나 분명했다.
사람들이 세아를 향해 몰려들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어쩜 이런 날에." "가엾어서 어떡해요." "저 어린것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 목소리들이 서은의 귓가에 겹겹이 쌓이며, 방금까지 자신에게 향했던 관심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마치 눈이 쌓여 발자국을 지우듯, 자신이 서 있던 자리조차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서은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이 자리에서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자신이 더 나쁜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웃어야 할 자리에서 웃지 못하면 냉정한 사람이 되었고, 걱정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매정한 언니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에게 허락된 표정은 오직 하나, 근심스레 눈썹을 모으는 것뿐이었다.
"어머, 세아야. 파란 드레스가 참 예쁘구나. 언니 것이랑 어울리는 색인가 보네." 한 부인이 그렇게 말하며 세아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서은의 눈이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커졌다. 세아가 입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서은이 오늘 아침 몰래 맞춰 입었던 것과 같은 색의 드레스였다. 정확히는, 서은의 것과 같은 재단사에게 은밀히 주문해 만든 여벌이었다는 것을, 서은은 그 순간에야 깨달았다. 새벽부터 재단사의 가게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치수를 재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시녀 하나만 데리고 다녀왔던 그 일이 이미 새어나갔다는 뜻이었다.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서은은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려 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가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세아가 자신의 뒤를 밟았다면, 혹은 시녀 중 누군가가 입을 놀렸다면. 어느 쪽이든 자신을 둘러싼 사소한 것들조차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이 리본도 예쁘네." 세아가 손을 뻗어 서은의 손에 쥐어져 있던 리본핀을 슬쩍 가져갔다. "언니, 이거 나 줄 거지? 나 다쳐서 속상하니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이미 결정된 사실을 통보하는 말투였다. 서은은 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으려 했으나, 세아는 이미 그것을 머리에 꽂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 웃음은 방금까지의 여린 얼굴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환했으며, 아픈 사람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도 생기가 넘쳤다.
"어쩜 저렇게 사이가 좋을까." 누군가 감탄하며 말했다.
서은은 그 말에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으나, 억지로 그것을 삼켰다. 목 안쪽이 뜨겁게 조여드는 느낌이었으나 겉으로 드러난 것은 그저 옅은 미소였다. 반지도, 금화가 든 주머니도, 세아의 손으로 하나둘 옮겨가는 것을 그녀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항하면 저항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것이고, 침묵하면 침묵한다는 이유로 당연시될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녀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 시작이야.*
그 생각이 들자 서은의 등줄기가 서늘하게 굳었다.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다짐했던 것들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그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거울 속 자신에게 오늘만은 웃으며 넘기지 않겠다고, 적어도 한 번쯤은 제 것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 다짐이 지금 세아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리본핀처럼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주변의 부인들은 여전히 세아를 둘러싸고 저마다 위로의 말을 늘어놓았고, 그 사이로 자작부인의 안도한 듯한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마치 딸의 상처보다 딸이 받는 관심에 더 만족하는 사람처럼, 자작부인의 눈빛에는 근심과 흡족함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서은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문득, 이 모든 것이 애초에 짜인 무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연회장 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아 양, 괜찮습니까?"
서은의 시선이 그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이는, 그녀의 혼약자인 이한결 백작이었다. 짙은 색 예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여느 때처럼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으나, 오늘만큼은 그 걸음의 속도가 유독 빨랐다. 그의 시선은 곧게 세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그 걸음걸이에는 서은을 향한 눈길 한 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서은은 손안에 남은 리본핀의 빈자리를, 그리고 그보다 더 크게 빈 자리를 동시에 느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연회장의 불빛은 여전히 황금빛으로 눈부셨으나, 그녀가 선 자리만은 어스름 속에 묻힌 듯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