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정령님, 제 스승 해주실래요?

2화

접수처 창구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임무를 누가 미치지 않고서 받으려 하겠는가. 게시판에 붙은 임무 공고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임무들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신청하느라 접수처 앞이 시장통처럼 붐볐는데, 흑림 은빛늑대 정수 채집 임무 앞에는 파리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당연하지. 죽으러 가는 길인데 누가 줄을 서겠어. 창구 안쪽에서 늙수레한 남자가 졸고 있다가 내가 종이를 내밀자 화들짝 깨어났다. "으어어, 어? 뭐여?" 침이 살짝 흘러 있는 걸 보니 정말 깊게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눈을 몇 번 비비고서야 내 얼굴과 종이를 번갈아 확인했다. "뭐여, 이걸 왜 다시 가져왔댜." 사투리가 짙게 배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접수하려고요." "진짜여? 이거 진짜 받을라고?"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걱정과 재미가 섞인 얼굴로 바뀌었다. "아, 니가 그 고아 총각이제? 소문 들었어. 학비 없어서 발버둥 친다드만." 소문이 그렇게까지 퍼져있었다니. 민망함에 등이 뜨거워졌지만 참았다. [전도서 7:21, 무릇 사람이 너를 저주하는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남 얘기하는 소리에 마음 둘 필요 없다는 말씀이신데, 지금 딱 그 상황이다. 소문이 벌써 학원 전체에 퍼진 마당에 마음을 안 둘 수가 있나. "네, 맞아요. 접수해주세요." "됐고, 이거 받으면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거 알고 있제?" "알아요." "모르는 거 같은디." 남자는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계속 뭔가를 설명하려 들었다. 손가락이 서류 위를 툭툭 두드리는 모양새가, 마치 계약서 도장 찍기 전에 몇 번이나 되짚어주는 부동산 중개인 같았다. "1급 마수라는 게 그냥 숫자만 1급이 아니여. 은빛늑대라는 놈이 요새 자주 나오는디, 그거 하나 상대하려면 최소 5급 투사는 돼야 혀. 니는 지금 1급이자너." "1급 투사끼리 붙는 거 아니에요?" "참여 자격이 3급 이상은 불가라는 거는, 3급 이상은 어차피 실력이 아까워서 이딴 데 안 보낸다는 소리지, 니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여." 그 말에 뭔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전도서 1:15, 굽은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을 셀 수 없느니라] 내가 지금 없는 실력을 세려고 하는 건가. 그래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참고로 말여, 작년에도 1급짜리 총각 하나가 이 임무 받아갔는디." "...어떻게 됐어요?" "몰러. 안 돌아왔으니께."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마치 배달앱 리뷰에 '재주문 안 함' 딱 한 줄 남겨놓은 것처럼, 결과는 짐작할 수 있는데 과정은 알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래도 접수해주세요." 남자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니가 그렇게 나오면 나야 도장 찍는 게 일이지, 뭐. 대신 이건 꼭 알고 있어야 혀." 남자는 서류를 뒤집어 뒷면을 보여줬다. '주의사항: 임무 중 사망 시 학원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음.' 글씨가 어찌나 담담한지,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마치 편의점 삼각김밥 유통기한 표시처럼 별거 아닌 척 굴고 있었지만, 그 뒤에 숨은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 밑에는 더 작은 글씨로 '학원은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시신 수습 또한 개인 부담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와, 진짜 끝까지 친절하네. "싸인혀." 나는 손이 떨리는 걸 애써 감추며 서류에 이름을 적었다. 강준서. 세 글자를 적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은 없었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사각, 사각. 마치 관에 못 박는 소리 같았다. 아니, 이건 좀 과한 비유인가. "근디 말여, 총각. 그 목걸이는 뭐여?" 남자가 갑자기 내 목을 가리켰다. 어머니가 남긴 별빛목걸이였다. 작고 낡은 은빛 사슬에 손톱만 한 별 모양 장식이 달린, 딱히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물건. "어머니 유품이에요." "아, 그려? 근디 그거 되게... 뭔가 이상하게 생겼다이. 옛날에 어디서 본 것 같은디."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목걸이를 살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녀, 내가 늙어서 헛것 봤나부다. 신경쓰지 마러." 그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사냥터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저짜 뒷산 너머, 흑림이라는 데여. 거기 은빛늑대들이 자주 출몰헌디, 니 혼자는 절대 못 이겨. 하나라도 마주치면 그냥 도망쳐야." "정수 열 개를 모아야 하는데 어떻게 도망만 쳐요." "그러니께 내가 하는 말이여. 니 죽으러 가는 거자너." "혹시 다른 방법은 없어요? 함정을 파거나, 몰래 숨어서 기다리다가..." "함정? 야, 은빛늑대가 그렇게 허술한 놈인 줄 아냐. 코가 개코여, 아니 늑대니께 늑대코지. 니가 숨 쉬는 냄새까지 다 맡는다." "그럼 대체 어떻게 정수를 모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자꾸 말리는 거자녀. 이거 진짜 미친 짓이여." 남자는 진심으로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남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뭔가 결심한 듯 서랍에서 작은 부적 하나를 꺼냈다. "이거 가져가. 위험할 때 찢으면 잠깐 눈속임 정도는 되는 부적이여.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고맙습니다." "고맙긴 뭘. 니 죽으면 이 접수처 다시 문 닫아야 하니까 그러는 겨." 뻔한 츤데레 대사였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잠언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있을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지당한 말씀이다.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접수처를 나오며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남자는 벌써 다시 졸고 있었다. 방금 사람 하나 죽음의 문턱으로 보내놓고 저렇게 태평하게 잘 수 있다니. 아니, 어쩌면 저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매번 이런 임무 접수받으면서 매번 마음 졸이다간 그 사람이 먼저 병나서 죽을 판이니까. 그날 밤, 나는 짐을 싸며 몇 번이나 다시 계획을 되짚었다. 은빛늑대. 1급 마수. 정수 열 개. 숫자로만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저 남자의 표정을 떠올리면 그게 아니었다. 방 안 낡은 책상 위에 지도를 펼쳤다. 흑림 지형도라고 하기엔 너무 부실한, 손으로 대충 그린 것 같은 종이 한 장이었다. 그마저도 학원 도서관에서 겨우 빌려온 거였다. '출몰 빈도 높음'이라고 적힌 붉은 동그라미가 흑림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절반이라니. 이게 지도야, 아니면 경고문이야. 낡은 검 한 자루, 며칠치 마른 식량, 그리고 목에 걸린 별빛목걸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검은 손잡이가 낡아서 미끄러질 것 같아 천을 덧감아뒀다. 식량은 딱 사흘치. 그 이상 버틸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걸로 죽음의 확률 90퍼센트짜리 임무에 도전한다는 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되니까 도전하는 거다. 말이 되는 방법이 있었으면 벌써 그렇게 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심장이 벌써부터 쿵쾅거리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두려움 밑에 다른 감정이 하나 더 있었다. 이제야 뭔가 시작할 수 있다는,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것. 학비 걱정만 하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몸으로 부딪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합리화라는 거 안다. 근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합리화라도 안 하면 뭘 붙잡고 서 있어야 하나. 창밖으로 흑림의 시커먼 산자락이 보였다. 달빛조차 삼켜버릴 듯한 짙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생각을 하니 배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이제 물러설 곳은 없었다. 짐을 다 챙긴 나는 목걸이를 옷 속에 깊이 갈무리했다. 어쩐지, 그 순간 목걸이가 아주 살짝 따뜻해진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접수처 남자가 헛것을 봤다고 했던 말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것도 기분 탓이었을까.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옛날에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그 말. 설마 이 목걸이에 뭔가 있는 건가. 아니,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내일이면 흑림으로 떠나야 하고, 은빛늑대와 마주칠 확률이 90퍼센트라는데 목걸이 정체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마치 이제 돌아올 곳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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