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신전에서의 시간은 저택에서의 시간과 다르게 흘렀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아침, 낮, 저녁으로 나뉘었지만 신전에서는 기도, 수련, 정화로 나뉘었다. 새벽 종이 울리면 기도, 해가 중천에 오르면 수련, 해가 기울면 정화. 그 세 마디가 하루 전부를 설명했다. 나는 그 셋 다 성녀 후보들 중 가장 늦게 배운 아이였다.
처음 신전 문을 넘던 날, 나는 새 옷의 뻣뻣한 옷깃이 목을 긁는 감각을 기억한다. 순백의 천은 저택에서 입던 옷들과 달리 무늬 하나 없었고, 그 단순함이 오히려 나를 작게 만들었다. 늙은 신관이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몸이 약하구나. 마력의 흐름이 늦게 트였구나. 다른 아이들은 벌써 초급 정화문을 외운다는데. 그런 말들이 첫날부터 쌓였다.
첫 해에는 아무도 나를 특별하게 보지 않았다. 백화신전에는 나 같은 아이가 열두 명 있었고, 그중 절반은 나보다 어렸고 절반은 나보다 컸다. 우리는 모두 같은 흰옷을 입고 같은 기도문을 외웠다. 식사 시간에도 정해진 자리에 앉아 정해진 순서로 그릇을 받았다. 밤이 되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각자의 가족을 그리워했다. 옆방에서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조용히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만 그리워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조금 안심이 됐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훌쩍임이 며칠 뒤 뚝 끊겼다는 것, 그 아이가 어느 날부터 웃으며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저택에 편지를 쓴 건 도착한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신관이 나눠준 종이는 얇고 거칠어서 펜이 자주 걸렸다.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쓰며 문장을 골랐다. 어머니에게, 다희는 괜찮은지, 아버지는 잘 계신지, 도현 오빠는 여전히 검술 수업을 듣는지 물었다. 편지 끝에는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라고 적었다. 그 한 줄을 쓰는 데 가장 오래 걸렸다.
답장은 석 달 뒤에 왔다. 나는 그 편지를 받은 날 저녁 수련을 빠지고 방에서 봉투를 뜯었다. 짧았다. 다희가 요즘 마법 수업에서 좋은 성과를 보인다는 소식과, 신전 생활에 성실하라는 당부 두 줄. 그게 전부였다. 나는 종이를 몇 번이나 뒤집어 보았다. 뒷면에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해서. 없었다. 내 안부를 묻는 문장은 없었다.
그 뒤로도 편지는 계속 갔다. 나는 매달 한 번씩, 때로는 그보다 자주 종이를 채웠다. 답장은 점점 뜸해졌다. 두 달에 한 번, 그다음엔 넉 달에 한 번.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저 내가 더 노력하면, 더 도움이 되는 아이가 되면, 답장이 길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수련에 매달렸다. 기도문을 남들보다 두 번씩 더 외웠고, 정화 의식을 자원해서 맡았다. 손끝에 물집이 잡히도록 정화문을 그렸고, 무릎이 시릴 때까지 기도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신관들은 그런 나를 보고 성실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성실하다는 말이 언젠가 어머니의 답장에도 적힐 줄 알았다.
그해 봄, 신전에 낯선 손님이 왔다. 그날 아침부터 신전 전체가 부산스러웠다. 청소를 두 번씩 하고, 정원의 꽃을 다시 심고, 예배당 바닥을 광이 나도록 닦았다. 왕궁에서 마차가 온다는 소식에 어린 후보들은 창가에 붙어 서서 목을 빼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마차는 흰 말 네 마리가 끌었고, 문양이 새겨진 검은 옆판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그 마차에서 내린 소년은 금빛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봄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빛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가 보라색이라는 걸 알았다. 신전의 백색 속에서 그 색은 유독 도드라졌다. 흰옷, 흰 벽, 흰 기둥 사이로 그 보라색 눈동자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분은 첫째 왕자님이십니다."
늙은 신관이 우리를 줄 세우고 소개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도 그의 신발 끝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걸음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그는 줄을 따라 걸으며 우리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확인했다. 몇몇 아이 앞에서는 잠깐 멈춰 이름을 물었고, 몇몇 앞에서는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내 앞에서 멈췄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참았다.
"눈이 예쁘구나."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다희와 비교하지 않고, 도움이 되는지 따지지 않고 그냥 바라봐 준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 심장이 벅찼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그 한마디가 몇 달 치 편지보다 크게 느껴졌다.
"이름이 뭐지?"
"선우다인입니다."
"다인."
그가 내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몇 번이나 그 목소리를 흉내 내며 되뇌었다. 다인. 다인. 이상하게도 내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 더 예뻐 보였다.
그는 신전에 사흘 머물렀다. 그 사흘 동안 나는 그와 세 번 대화를 나눴다. 정원에서, 예배당 앞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떠나기 전 마차 앞에서. 정원에서는 그가 나비를 좇는 나를 보고 웃었고, 예배당 앞에서는 내가 외우던 기도문을 몇 소절 알아듣고 함께 읊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발끝이 땅에 붙지 않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또 오면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
"정말요?"
"그래. 약속할게."
약속. 그 단어가 그토록 무거운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여덟 살 때 였나, 그 나이의 나는 약속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세상 모든 약속이 지켜지는 줄 알았다. 왕자가 나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는 마차에 올랐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 마차가 신전 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서 있었다. 마차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후보 하나가 부럽다는 듯 나를 흘겨보았지만 그날의 나는 그런 시선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문쪽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창가에 서서, 혹은 정원을 지나며, 무심코 신전 대문 쪽으로 눈이 갔다. 그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놓치지 않으려고. 신관들은 내가 부지런히 아침 산책을 한다고 오해했다.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버릇이 나를 몇 년이나 붙잡아둘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