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견습 집사, 운명을 바꾸겠습니다

5화

소하가 저택 뒤편에 이상한 정원이 있다고 말한 건 어느 날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다들 각자의 방으로 흩어질 시간이었다. 소하는 윤재의 소매를 슬쩍 붙잡고는 복도 구석으로 끌고 갔다. 누가 볼세라 주위를 두 번이나 살피는 그 모습이 대단한 비밀이라도 발설하는 사람 같았다. "아무도 안 가는 곳이 있어." 그녀가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모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곳." "왜 가지 말라고 했는데요?" "몰라. 그냥 무섭다고만 했어." 무섭다는 말과 함께 눈을 반짝이는 아이라니. 보통이라면 이상하게 여겨야 할 조합이었지만, 이 저택에서는 이미 이상한 축에도 못 드는 일이었다. 윤재의 눈이 반짝였다. 게임 속 기억 어딘가에서 '숨겨진 서고'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원작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됐던 장면인지, 혹은 아예 다른 게임의 기억이 섞여 든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파편적인 기억의 한계였다. '뭐였더라. 분명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머리를 쥐어짜 봐도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은 이제 익숙할 지경이었다. "가 볼까요." 윤재가 제안했다. 소하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진짜? 지금?" "지금은 늦었으니 내일 낮에요." 윤재가 웃으며 답했다. 밤중에 어린 아가씨를 데리고 몰래 저택을 돌아다니다 걸리면 그의 집사 견습 자리부터 위태로워질 게 뻔했다. 게다가 지금 시각에 정원 어딘가를 헤매다 넘어져서 무릎이라도 깨지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견습 집사의 몫이 될 터였다. 소하는 못마땅한 얼굴을 했지만 곧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을 기다리는 게 못 참을 만큼 힘든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표정이었다. *** 다음 날 오후, 두 사람은 저택 서쪽 끝, 오래된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벽 앞에 섰다. 겉보기엔 그냥 담장이었지만, 소하가 가리킨 곳을 자세히 보니 덩굴 사이로 낡은 철문이 숨겨져 있었다. "여기." 소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치 자신이 이 문을 직접 세운 것처럼 뿌듯한 얼굴이었다. 윤재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담쟁이덩굴을 살폈다. 잎사귀가 촘촘한 것치고는 문 주변만 유독 헐거웠다. 누군가 자주 여닫은 흔적이었다. 윤재는 철문을 밀었다. 예상외로 쉽게 열렸다. 오랫동안 방치된 것처럼 보였지만, 경첩에는 최근에 기름을 친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관리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 생각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소하는 이미 신이 나서 문 안쪽으로 성큼 들어가고 있었다. 어린애답게 위험 감지 능력이라는 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조심해요." 윤재가 뒤늦게 팔을 잡아끌었다. "뭐가 조심해? 아무것도 없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정원이 나타났다. 잡초로 뒤덮여 있었지만, 한가운데 놓인 낡은 석조 벤치와 그 뒤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벤치 표면에는 이끼가 두껍게 앉아 있었고, 계단 손잡이는 반쯤 부서져 나가 있었다. 계단 끝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작은 서고가 있었다. *** 서고 안은 먼지투성이였지만 책장은 상당히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낡은 가죽 표지의 책들,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이상한 물건들 — 손잡이가 부러진 검,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반지, 낡은 초상화 한 장. '먼지는 쌓여 있는데 정리는 되어 있다니.' 이 두 가지 사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누군가 오랫동안 이곳을 드나들면서도, 손을 대는 부분은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윤재는 초상화 앞에 멈춰 섰다. 그림 속 여인은 소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지만, 눈동자 색이 달랐다. 소하의 눈은 옅은 갈색이었는데, 초상화 속 여인의 눈은 진한 남색이었다. "이거 누구야?" 소하가 초상화를 가리키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윤재가 솔직히 답했다. 게임 속 기억에도 이런 장면은 없었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정보야.' 소하는 초상화를 잠시 노려보더니 곧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책장 아래쪽 서랍에서 반지를 발견하고는 냉큼 집어 들어 손가락에 끼워 보려 했다. 하지만 반지는 그녀의 손보다 훨씬 컸다. "이상하게 생겼어." 그녀가 반지를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무거워." 윤재는 그 순간 서늘한 예감을 느꼈다. 이 서고와 안의 물건들이 단순한 잡동사니가 아니라는 확신이었다. 부러진 검, 낯선 문양의 반지, 눈동자 색만 다른 초상화. 어느 것 하나 이 저택의 평범한 역사와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이걸 여기에 모아놓은 거지.' *** "이곳을 우리 둘만의 비밀 장소로 하죠." 윤재가 제안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요." 소하는 그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좋아. 우리만 아는 곳."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비밀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법의 주문처럼 아이를 움직이는 걸 보며, 윤재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이 서고를 찾았다. 겉으로는 소하의 교육을 위한 조용한 장소였지만, 윤재에게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저택 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게임 속 기억과 이곳의 정보를 대조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낮잠 시간이면 소하를 벤치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는 척하며, 실은 책장을 하나씩 훑어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지루한 가문의 회계 기록이거나 오래된 편지 묶음이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윤재는 책장 깊숙한 곳에서 낡은 일기장 한 권을 발견했다. 다른 책들 뒤에 숨겨진 듯 끼워져 있어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표지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지만,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는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가 죽는 것을 보았다.' 윤재는 그 자리에서 몸이 얼어붙었다. 소하는 마침 벤치에 앉아 낮잠에 빠져 있었고, 서고 안에는 그와 그 문장뿐이었다. 자신보다 먼저, 이 저택 안에 소하의 미래를 알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누구야. 대체 누가 이걸 썼어.' 일기장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다음 장을 넘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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