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검술 수업이 끝난 뒤, 나는 대련장 구석에서 검을 정리하고 있었다.
땀에 젖은 도복이 등에 붙어 있었다. 대련장 바닥에는 아직도 다른 학생들이 흘린 땀자국이 얼룩덜룩하게 남아 있었고, 나무 기둥에는 오래된 검흔이 켜켜이 새겨져 있었다. 그 검흔 하나하나가 이 학원에서 얼마나 많은 서열 다툼이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흑죽검은 학원 안에서 평범한 훈련용 검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검신은 검은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었고, 자루는 낡은 가죽으로 감겨 있었다. 검집에 넣을 때마다 손끝에서 미미한 떨림이 느껴졌지만, 그 떨림을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오늘도 나랑 붙어볼 사람 없나?" 이천호가 대련장 한가운데서 소리쳤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다들 검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슬그머니 이천호의 눈을 피했다. 이 학원에서 이천호와 대련한다는 것은, 이기든 지든 며칠은 몸이 성치 않을 걸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거기, 하서." 이천호가 나를 지목했다. "너 나와봐."
"싫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뭐?" 이천호가 눈을 치켜떴다. "1성짜리가 감히 명을 거절해?"
주변에서 몇몇 학생들이 숨을 죽이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1성이라는 계급은 이 학원에서 가장 낮은 자리였고, 그런 내가 이천호의 청을 거절한다는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난 네 밑에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말했다.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천호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확 올라왔다.
"이 자식이." 이천호가 검을 뽑았다. "버릇을 가르쳐줘야겠네."
짝!
검의 옆면이 내 어깨를 스쳤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소리가 대련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누군가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깨에 남은 얼얼한 감각보다, 이천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우월감이 더 신경 쓰였다.
"이천호 학생." 백리결 도사가 대련장에 들어서며 소리쳤다. "수업 시간이 아닌 곳에서 검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천호가 검을 거두며 씩 웃었다.
"장난이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 녀석이 워낙 재미없는 얼굴을 해서요."
주변 학생들이 슬금슬금 흩어지기 시작했다. 백리결 도사의 눈치를 보는 학생도 있었고, 이천호의 눈치를 보는 학생도 있었다. 이 학원에서 힘의 균형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는 그 시선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백리결 도사가 나를 잠시 살펴보았다. 그의 눈빛에 뭔가 다른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미미한 신적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내 어깨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내 눈으로 옮겨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가 무언가를 확인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서, 괜찮은가?" 백리결 도사가 물었다.
"네." 나는 대답했다.
백리결 도사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이천호를 향해 한 번 더 낮은 목소리로 경고를 던지고는 대련장을 가로질러 갔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이천호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계속 들려왔다.
'저 웃음소리.' 나는 걸으며 생각했다.
그 순간, 어깨에 남은 검의 잔열이 마치 5500년 전의 어떤 순간을 되살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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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년 전, 4월.
신족의 내전이 막 시작되던 그해, 나는 열여섯이었다.
신족 사회에서 나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아버지 이강수는 신족의 사자였지만, 나는 힘의 발현이 늦었고, 성정이 온순하지 못했다. 형 이도현은 태어날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고, 나는 그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집안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형의 이야기를 했다. 형이 몇 살에 몇 성의 힘을 발현했는지, 형이 어떤 시험을 몇 등으로 통과했는지. 그 이야기 속에 내 이름이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신족 마을 외곽의 작은 전각에서 홀로 지냈다. 전각은 낡았고, 지붕 한쪽 기와가 깨져 비가 오면 마루에 물이 새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 전각이 좋았다. 아무도 나를 형과 비교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었으니까.
어머니 윤미경은 자주 나를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서하야, 밥 먹었니." 어머니가 물었다.
"응." 나는 짧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그 대답에 더 묻지 못하고, 문 앞에 밥그릇을 놓아두고 돌아가곤 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서걱거렸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해 봄, 나는 처음으로 한소이를 만났다.
그녀는 백색 의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소녀였다. 신족 사회의 규율을 감시하는 감사원 소속 가문의 딸이었지만, 그녀는 나에게 규율을 들이대지 않았다.
내가 전각 뒤뜰에 쭈그리고 앉아 마른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의미 없는 선을 긋고 있을 때, 그녀가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감사원 가문의 딸이 규율을 무시하고 남의 담을 넘는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넌 왜 여기 혼자 있어?" 한소이가 물었다.
"...상관없잖아." 내가 대답했다.
"상관없긴. 심심하잖아." 그녀가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그녀의 옷자락에서 옅은 매화 향이 났다. 나는 그 향을 어색하게 견디며 계속 흙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날부터, 그녀는 매일 내 전각에 찾아왔다.
어떤 날은 손에 떡을 들고 왔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그냥 담장을 넘어와 내 옆에 앉기만 했다. 나는 처음엔 그녀가 왜 자꾸 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웃는 법을 다시 배웠다.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것이 나를 조금씩 편안하게 만들었다.
"너 그거 아니? 웃으면 얼굴이 완전히 달라져." 한소이가 말했다.
"...그래?" 나는 어색하게 되물었다.
"응, 훨씬 나아."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내 앞에서 검지로 자기 입가를 끌어올리며 웃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우스운 표정에 나는 결국 소리를 내어 웃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더 크게 웃었다.
"봐, 방금 그거." 그녀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게 훨씬 좋아."
그 웃음이, 5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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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돌아와, 나는 학원 기숙사 방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은 세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었다. 낡은 목재 책상 하나, 삐걱거리는 침대 하나, 그리고 창문 아래 작은 서랍장이 전부였다. 나는 그 서랍장 위에 손을 얹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이천호의 웃음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저 아이는 형의 아들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도현의 핏줄이 5500년의 시간을 건너 이런 얼굴로, 이런 웃음으로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낯설었다. 이천호는 형의 그 오만한 눈빛을 그대로 물려받았지만, 그 눈빛 아래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목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홉 개의 칸이 그려진 종이가 있었고, 그중 한 칸에만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남은 여덟 개. 그리고 남은 시간, 2년 10개월.
나는 손끝으로 표시되지 않은 칸들을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 그 칸들이 앞으로 내가 지나가야 할 시간이었고, 그 시간 안에서 이천호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창밖에서 이천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누군가와 대련을 하며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소리의 리듬을 세듯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5500년 전 그 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소이의 웃음소리와 이천호의 웃음소리가 묘하게 겹쳐 들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다시 목함 속 아홉 개의 칸을 떠올렸고, 그 칸들 중 남은 여덟 개가 앞으로 어떤 얼굴들로 채워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