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5500년 전, 이듬해 3월.
신족 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날의 기억은, 5500년이 지난 지금도 조각조각 남아 있다.
장로파와 개혁파의 갈등이 결국 무력 충돌로 번졌다. 아버지 이강수가 이끄는 장로파의 병력이 개혁파 근거지를 향해 진군하던 밤, 나는 한소이와 함께 마을 외곽 전각에 있었다.
전각은 낡은 목조 건물이었다. 기둥마다 오래된 결계 문양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창호지는 여기저기 찢어져 바람이 들 때마다 펄럭거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종종 만났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아무도 나를 이강수의 둘째 아들로만 보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다.
한소이는 바닥에 앉아 무릎에 턱을 괴고 있었다.
"오늘은 좀 이상해." 한소이가 말했다. "마을 전체가 조용하잖아."
"...그런가." 나는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평소엔 이 시간에도 저잣거리 쪽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아무 소리도 안 나."
나는 그녀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창밖의 어둠을 바라볼 뿐이었다.
"서하야." 한소이가 나를 불렀다. "너 요즘 잠 못 자지."
"어... 어."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눈 밑이 시커멓잖아."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눈가를 가볍게 두드렸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해."
나는 그녀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웃으려 애썼다.
그 순간,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쾅!
먼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저거." 한소이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어." 나는 대답했다.
또 한 번, 더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쾅!!
전각의 창호지가 진동에 흔들려 찢어진 부분이 더 크게 벌어졌다.
"나가봐야 해." 한소이가 일어서며 말했다.
"위험할지도 몰라." 나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래도 여기 계속 있을 순 없잖아." 그녀가 말했다.
전각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문이 부서졌다.
쾅!
개혁파의 병사 셋이 전각 안으로 들이닥쳤다.
각자 검은 갑주를 입고 있었고, 검에는 낯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강수의 아들이 여기 있다고 들었다." 병사 하나가 말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물러났다.
"뭐, 뭐 하는 거야."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인질로 쓰기에 딱 좋겠군." 다른 병사가 웃으며 검을 뽑았다.
"이강수 대인이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던데." 세 번째 병사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직접 보니 별거 없구먼."
나는 그 순간까지도 제대로 저항할 힘이 없었다. 신족의 힘을 겨우 발현하기 시작한 정도였고, 셋을 동시에 상대할 능력은 없었다.
한소이가 내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물러나!" 그녀가 외쳤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몰라!"
"몰라도 상관없다." 병사가 대답했다. "이강수의 자식이라는 사실 하나면 충분해."
검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서하야!"
한소이가 소리치며 내 앞으로 뛰어들었다.
찰싹!
아니, 그것은 검이 살을 가르는 소리였다.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한소이의 몸이 나를 감싸며 검을 대신 받았다.
"소이야!"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에서 붉은 피가 아니라, 하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검에는 봉인범주가 새겨져 있었다. 개혁파가 준비한 특수 무기, 신족의 힘을 영구히 가두는 저주의 검이었다.
"뭐, 뭐야 이건." 병사 중 하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다. 목적은 이뤘으니." 다른 병사가 말했다.
그들은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전각을 빠져나갔다.
"안 돼, 안 돼!" 나는 그녀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한소이의 몸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하얀 빛이 그녀를 감싸며 결정체처럼 변해갔다.
"소이야, 눈 떠." 나는 그녀의 얼굴을 흔들며 말했다. "제발, 제발 눈 좀 떠봐."
"서하야."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말하지 마, 힘 아끼고."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녀가 웃으려 애썼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한테 말한 적 없잖아." 그녀가 말했다. "네 진짜 마음. 가족한테 느끼는 거."
나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아버지가 미워." 나는 말했다. "내가 아니라 형만 봐서. 그런데도... 아버지가 인정받으려고 애쓰다 이 전쟁을 만든 걸 알아서, 그게 더 미워."
한소이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는 계속 말했다. "이 신족 사회 전체가 미워. 나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든 이 모든 규율이."
"그런데도." 나는 울며 말을 이었다. "엄마가 아파하는 걸 보면, 나도 아파. 그게 제일 견디기 힘들어. 미워하면서도 아파하는 게."
한소이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만졌다. 그녀의 손끝이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고마워, 말해줘서." 그녀가 말했다.
"소이야, 제발." 나는 그녀를 붙잡고 흔들었다.
"내가 깨어나면." 그녀가 희미하게 말했다. "그때는... 네가 웃는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싶어."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의 몸이 완전히 수정처럼 굳어졌다. 백색 의복을 입은 채로,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채로, 그녀는 관 속에 잠긴 것처럼 멈춰버렸다.
으어어엉...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병사들은 이미 목적을 이루었다는 듯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전각 밖에서는 여전히 폭발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나는 굳어버린 그녀를 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예전처럼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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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돌아와, 나는 기숙사 방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깨어나면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5500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웃지 못했다.'
책상 위의 목함을 열었다. 아홉 칸 중 표시된 것은 여전히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여덟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5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겨우 하나였다.
'이 속도로 가면, 언제 그녀를 깨울 수 있을까.' 나는 목함을 닫으며 생각했다.
창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계단을 오르는 소리였다.
강송이 급히 방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서하, 안에 있어?" 그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나는 목함을 서둘러 책상 서랍에 넣고 문을 열었다.
강송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서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학원에 신족 사자 대표가 방문한다는 공고가 붙었어."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공고문 봤는데." 강송이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이름이 적혀 있더라고."
"...누군데." 나는 물었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강수 대인이야." 강송이 말을 이었다. "네 아버지가 직접 오신다는 뜻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강송이 내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그가 물었다. "얼굴이 하얗게 됐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손끝의 떨림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