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혼인식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궁 안 곳곳에 등롱이 새로 걸렸고, 마당에는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붉은 물감 냄새가 났다. 목수들이 대문 앞에 세울 홍살문을 조각하는 소리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았다. 다들 바쁘게 움직였고, 다들 웃고 있었다.
아버지, 천풍왕 하명준은 인족 안에서 제이의 고수로 불렸다. 서연의 아버지인 대진황제 서태윤이 제일의 고수였고,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벗이었다. 그러니 이번 혼인은 두 가문의 결합이자, 두 고수의 우정이 맺어낸 결실이기도 했다.
다들 그렇게 말했다. 축복받은 혼인이라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축복받은 혼인이면 이렇게 초 치는 소문이 왜 자꾸 도는데.'
물론 겉으로는 그런 생각을 티 낼 수 없었다. 웃어야 했고, 고개를 숙여야 했고, 축하한다는 인사에 예 감사합니다, 하고 답해야 했다. 혼인이 코앞인 신랑이 표정 관리도 못 하면 그것도 흠이 되는 법이니까.
그날 아침, 시녀 하나가 서재에서 나를 찾는다고 전해왔다. 나는 붓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뭐 때문에 부르시나.'
아버지의 서재는 늘 그렇듯 조용했다. 향 냄새가 옅게 배어 있는 방이었다. 문을 열자 아버지는 창가에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뒷모습이 평소보다 조금 굽어 보였다.
"부르셨습니까."
"혼인식을 미룰까 한다."
뜬금없는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지,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예?"
"혼인식을 미루자고 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더 분명하게.
"왜 갑자기……."
"마혼월이다."
아버지가 짧게 말했다.
'그것 때문이라고?'
나는 순간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마혼월이라니. 그건 시골 노파들이나 겁 많은 아이들 겁주는 데 쓰는 말 아니었나.
"아버지, 마혼월은 그냥 전설이잖습니까."
"전설이 아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삼십 년 전에도, 예순 년 전에도 그날 밤에는 이유 없이 사람이 죽었다. 아무도 그걸 기록에 남기지 않았을 뿐이야."
나는 아버지의 눈을 봤다. 평소 흔들림 없던 그 눈에 처음으로 불안이 스쳐 있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아버지의 얼굴 반쪽을 가리고 있어서, 남은 반쪽만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진짜로 겁내고 있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다른 말이 나갔다.
"그럼 미루시죠."
"이미 초청장이 다 나갔다. 대진황제께서도 날짜를 바꿀 생각이 없으시고."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걸 수도 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손끝이 아까부터 창틀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버릇이 없는 사람이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으십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는 잠깐 나를 쳐다보다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없다. 가서 준비 마무리하도록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는 다시 하늘을 봤다. 나는 더 묻지 못하고 서재를 나왔다.
나는 서연의 악몽 얘기를 할까 말까 잠깐 고민했다. 사흘 전 밤, 서연이 나를 붙잡고 벌벌 떨면서 했던 그 얘기. 핏물이 세상을 덮는 꿈을 꿨다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다. 그때는 그냥 나쁜 꿈이겠거니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이랑 겹쳐 놓고 보니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결국 입을 다물었다.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나. 어차피 날짜는 안 바뀔 텐데.'
서재를 나서자마자 궁녀들이 지나가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음을 늦추고 못 들은 척 곁을 스쳐 지났다.
"글쓰기 하는 그 아이 있잖아, 사흘 전에 갑자기 헛소리를 하더니 오늘 아침에 죽었대."
"헛소리라니?"
"핏물이 온 세상을 덮는다고, 눈이 뒤집혀서 그랬다는데. 궁의(宮醫)도 못 살렸대."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그런 얘기가 벌써 궁 안에 돌고 있다고?'
핏물이 온 세상을 덮는다. 서연이 꾼 꿈이랑 똑같은 말이었다. 우연일까.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손끝이 차가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궁녀들은 내가 거기 서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걸어갔고,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냥 우연이야. 아이들 사이에 도는 헛소문이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그날 오후, 서연을 만났다. 서연의 처소에 들어서자 시녀들이 분주하게 혼례복을 손질하고 있었다. 붉은 비단이 사방에 펼쳐져 있어서 방 안이 온통 붉은빛이었다.
'……핏물처럼 보이는 건 나만 그런가.'
괜한 생각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서연은 여느 때처럼 웃고 있었다. 사흘 전 밤의 그 겁먹은 얼굴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밝아서 어색할 정도였다.
"하율, 나 이 옷 어때?"
서연이 혼례복 자락을 펼치며 물었다. 붉은 비단에 금실로 봉황이 수놓인 옷이었다.
"예쁘네."
"그렇지?"
서연이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완벽해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티 없이 웃을 수가 있나. 뭔가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사람 같았다.
'꿈 얘기는 이제 없는 척하는 건가.'
시녀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서연에게 다가가 작게 물었다.
"그날 밤 얘기……"
조심스럽게 꺼내려 하자 서연이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다.
"이제 괜찮아. 그냥 악몽이었어."
"하지만……"
"괜찮다니까."
서연이 말을 자르듯 다시 한번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웃음기를 띠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에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걸 느꼈다.
서연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걸 나는 봤다.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보다 짧게, 눈동자 안쪽에서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온 서연을 보고, 나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괜찮겠지. 다 잘될 거야.'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렇게 되뇌면 정말 그렇게 될 것처럼.
서연의 처소를 나서면서, 나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다시 떠올렸다. 아버지의 불안한 눈빛, 궁녀들이 전한 소문, 그리고 서연의 지나치게 밝은 웃음. 세 가지가 따로따로일 때는 그냥 우연이었지만, 한 줄로 이어 놓고 보니 자꾸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아버지도 그냥 늙어서 불안한 거고, 그 아이는 원래 몸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서연은 그냥 좋은 날 앞두고 밝게 있으려는 거고.'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만들면 만들어지는 게 이유였으니까. 나는 애써 그렇게 정리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혼인식 전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뜰에 나와 있었다. 하늘에 뜬 달은 여전히 은빛이었다. 크고 둥글게 떠서, 마당의 붉은 등롱 불빛과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가장자리에, 아주 미세하게 붉은 테두리가 번져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도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그냥 달이 그렇게 보이는 밤도 있는 거니까. 구름 때문일 수도 있고, 대기 중에 먼지가 많아서일 수도 있고.
그걸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조차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