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혼인식 날 아침,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바람도 잔잔했다. 마치 오늘 하루만큼은 하늘도 축복해 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그럴 리가.'
사흘 전 밤, 서연의 눈에서 본 그 붉은빛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혼인식을 코앞에 두고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두 나라 사이에 무슨 소란이 일어날지 몰랐으니까.
'그냥 착각이었을 거야. 그럴 거야.'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 예복을 걸쳤다. 손끝이 옷고름을 매만지는 동안에도 계속 떨렸다. 시녀들이 눈치챘는지 자꾸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대전으로 향하는 길, 걸음마다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다. 양옆으로 두 나라의 신하들이 늘어서 있었다. 인족의 관복과 다른 나라의 예복이 뒤섞여 있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웠다. 오늘을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준비했는지, 걸음을 옮기며 새삼 실감이 났다.
아버지 하명준과 서태윤 황제가 나란히 서서 흡족한 얼굴로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저 두 분이 저렇게 웃는 것도 오랜만이네.'
두 사람이 나란히 웃는 얼굴을 본 게 언제였더라. 전쟁 끝나고, 화친 맺고, 그다음엔 계속 딱딱한 표정으로 회의만 하던 기억뿐인데. 오늘은 정말로 기쁜 모양이었다.
서연이 걸어 들어왔다. 붉은 혼례복을 입은 서연은 정말 아름다웠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감탄사를 내뱉는 소리도 들렸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저렇게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저 웃음, 진짜인 거지?'
나는 서연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서연의 손끝이 아주 차가웠다.
'긴장해서 그런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살짝 쥐었다. 서연이 나를 보며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이 조금 힘겨워 보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 같은 날 누구나 긴장하는 게 당연하니까.
의식이 진행됐다. 향이 타올랐고, 주례를 맡은 대신이 축문을 읽었다. 향 연기가 대전 안을 은은하게 채웠다. 모든 게 정해진 순서대로,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축문이 절반쯤 읽혔을 무렵, 밖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하늘…… 하늘 좀 보세요!"
모두의 시선이 창밖으로 쏠렸다. 나도 고개를 돌렸다.
달이 떠 있었다. 한낮이었는데도, 있어서는 안 될 달이 하늘 한복판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 달은 피처럼 붉었다.
혈월.
'……진짜였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걸 봤다. 서태윤 황제의 손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대전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왜, 왜 하필 지금.'
사흘 전 밤에 본 게 진짜였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때 말했어야 했나. 지금 말한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키기 시작했다.
"모두 진정하시오!"
서태윤 황제가 외쳤지만, 그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연이 손을 놓았다.
"서연아?"
돌아본 서연의 눈은, 사흘 전 밤에 본 그 눈과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눈동자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설마, 설마.'
나는 손을 뻗어 서연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닿기 전에 서연이 뒷걸음질을 쳤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서연이 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톱이 관자놀이를 파고들 정도로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붉은 혼례복 자락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하율, 도망가."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서연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가장 가까이 있던 대신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재가 되어 흩어졌다. 방금까지 축문을 읽던 그 사람이었다.
비명이 사방에서 터졌다.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며 문 쪽으로 몰려갔다. 넘어지는 사람, 밟히는 사람, 그 와중에도 무기를 꺼내는 호위무사들. 대전 안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다.
"서연아, 정신 차려!"
나는 서연을 향해 달려갔다. 아버지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의 손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사람이 쓰러졌다. 대신, 궁녀, 호위무사. 신분이나 무공의 고하는 상관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었다.
'말도 안 돼. 서연이가 이럴 수 있을 만한 힘이 아니야.'
인족 최고의 무사들도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저건 사람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몸은 서연인데, 안에 든 게 서연이 아닌 것 같았다.
서태윤 황제가 딸을 막으려 나섰다.
"서연아, 아비다! 정신 차려라!"
서연의 손이 아버지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다.
'……황제가, 인족 제일의 고수가, 저렇게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서태윤 황제가, 전쟁터에서 수백의 목숨을 베어 넘긴 그 사람이, 딸의 손 한 번에 그대로 무너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발을 멈추지 못했다.
"하율! 물러나라!"
아버지, 하명준이 나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뿌리쳤다.
"서연이는 제가 지킬 겁니다!"
말은 그렇게 나갔지만, 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서연에게로.
아버지가 대신 서연 앞을 막아섰다. 검붉은 기운이 아버지의 몸을 휘감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순식간이었다. 정말 순식간에, 인족 제일과 제이의 고수가 눈앞에서 쓰러졌다.
'이게, 이게 정말 서연이가 한 짓이라고?'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부정하고 있었다. 서연이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사흘 전 밤에도, 그 어느 밤에도, 서연은 나한테 늘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사람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게 도무지 이어지지 않았다.
서연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붉게 물든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율…… 도망가라고 했잖아."
목소리는 서연이었다. 그런데 손은 서연의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괜찮아, 서연아. 나 여기 있어."
나는 서연을 끌어안았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나는 놓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거야. 나까지 이렇게 되도 상관없어.'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서연을 놓아버리면 정말로 서연이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지금 이 손을 놓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미안해, 하율……"
서연의 목소리가 울음에 섞였다.
그리고 가슴 한복판이 뜨거워졌다.
뜨거운 게 아니라, 사실은 무언가가 몸을 뚫고 지나간 감각이었다.
나는 서연의 어깨 너머로 하늘을 봤다. 붉은 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피 냄새로 뒤덮이고 있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그저 서연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예쁘네, 서연이. 이런 순간에도.'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끝나가는 마당에 그런 걸 생각하고 있다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의식이 끊기는 순간, 나는 서연의 손이 내 등을 감싸안는 걸 느꼈다.
그리고 세상이 캄캄해졌다.
정말로, 그게 끝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