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몰락 명가의 환생 신동

2화

2화. 형과 아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세 번, 규칙적으로. 예의를 갖춘 듯 보였으나 그 안에는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 동수가 먼저 나가 문을 열었다. 붉은 옷깃을 두른 사내가 서 있었다. 진가의 하인이었다. 반듯한 걸음, 곧게 편 어깨. 그러나 눈빛에는 이미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기색이 있었다. "조가의 마지막 빚 문서요." 그가 문서를 던지듯 내밀었다. 동수가 그것을 받았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손이 떨렸다. "이달 안에 갚지 못하면 남은 땅뙈기도 넘어간다는 내용입니다." 동수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나는 문서를 건네받았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결이 거칠었다. 오래된 종이 같았다. 글자를 읽었다. 도장이 찍혀 있었다. 진가의 이름이었다. 붉은 인장. 크고 선명했다. "진가라 하면." "진태욱 공자님의 가문입니다." 동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공자님이 원래 조가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르신 살아계실 적에는 두 집안이 왕래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갑자기 이렇게 빚을 죄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왕래를 했다는 게." "명절이면 서로 곡물을 나누고, 잔치가 있으면 초청을 하고 받고 했습니다. 도련님이 기억하시기에는 너무 어릴 적 일일 겁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기억이 없었다. 당연했다. 이 몸의 기억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으니. 전생에서는 이런 문서 앞에서 분노를 참지 않았다. 종이를 찢고, 상대의 목을 겨누고, 그 자리에서 결판을 냈다. 이번에는 삼켰다. 분노를 삼키는 것이 더 어려웠다.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왔다. "동수야." "예." "이제부터 우리는 갈 곳이 없다는 뜻이구나." 동수는 답하지 못했다. 시선을 떨구었다. 마당의 흙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바람이 불었다. 처마 끝의 서리가 조금씩 녹고 있었다. 녹아내리는 서리는 물이 되어 처마 밑으로 떨어졌다. 똑, 똑. 규칙적인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 집도 저 서리처럼 녹아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흘 뒤, 나는 마을 어귀 장터에 나갔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힘겨웠다. 몇 걸음 걷다 숨을 고르고, 다시 걸었다. 전생에서는 하루에 백 리를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백 걸음도 버거웠다. 동수가 옆에서 부축하려 했다. "형님, 아니, 도련님.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아니다. 걸어야 한다." "몸이 아직 온전치 않으신데." "걸어야 다리에 힘이 붙는다." 동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장터에 도착하니 활기가 있었다. 상인들의 외침,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이 소란스러움이 낯설었다. 전생의 서고는 언제나 조용했다. 장터 한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행상 노인이 진가의 하인들에게 짐을 빼앗기고 있었다. "세를 내지 않으면 좌판을 못 편다고 몇 번을 말했나!" 하인의 목소리가 컸다. 주변 사람들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올해는 흉년이라 자릿세를 못 냈을 뿐입니다, 나리…" 노인의 목소리는 떨렸다. 등은 굽어 있었고, 손은 짐 보따리를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노인의 손이 하인의 옷깃을 붙잡았다. 뿌리쳐졌다. 노인이 바닥에 넘어졌다. 흙바닥에 짐이 쏟아졌다. 말린 나물, 몇 개의 그릇, 낡은 옷가지들. 주위 사람들은 눈길을 피했다.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는 그저 지나쳐 갔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전생에서는 강한 자를 응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검을 들면 상대는 이미 죽은 것과 같았다. 이번에는 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 몸은 약했다. 병을 오래 앓았고, 근력이라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발이 먼저 움직였다. 동수가 내 옷깃을 붙잡았다. "도련님, 위험합니다." 나는 그 손을 가만히 떼어냈다. "잠시." 하인이 나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값어치 없는 물건을 보는 눈이었다. "뭐냐, 네놈은." "자릿세 규정을 보여주시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했다. "규정에 흉년의 예외가 없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하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규정이라니, 애송이가 뭘 안다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 놀라움이 있었다. "진가에서 걷는 자릿세는 관아의 규례를 따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관아의 규례에는 흉년 시 자릿세 삼분지 일 감면 조항이 있습니다." 하인의 표정이 굳었다.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처음으로 나를 다시 보는 눈이었다. "작년 재해로 이 고을이 흉년 판정을 받은 것은 관아 공문에 있습니다.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주변이 조용해졌다. 장터의 소란이 잠시 멈춘 듯했다. 상인들도, 지나가던 사람들도 이쪽을 주목했다. 하인은 나를 잠시 노려보았다.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어디서 헛소리를…"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관아에 가면 압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손끝은 여전히 떨렸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숨을 삼켰다.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러나 눈은 피하지 않았다. 전생에서 익힌 것은 무예만이 아니었다. 법전을, 규례를, 사람을 다스리는 이치를 익혔다. 그 지식이 이 몸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인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관아를 언급한 이상, 더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했다. 결국 하인은 짐을 노인에게 돌려주고 자리를 떴다. 발걸음이 빠르고 거칠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노인이 내 손을 붙잡았다. "고맙소, 도련님. 정말 고맙소." 손이 거칠었다. 오랜 세월 흙을 만진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 손이 내 손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전생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법을 논했다. 조정에서, 대신들과 함께, 수많은 백성을 위한 정책을 세웠다. 이번에는 백성 한 사람의 손을 잡았다. 둘 다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이 늙은이가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갚을 것 없습니다. 다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규례를 기억해두십시오." 노인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 시선들 속에 낯선 온기가 있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수가 물었다. "도련님, 그런 법조문을 어찌 아셨습니까." 나는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책에서 읽었다." "어느 책입니까. 저도 읽고 싶습니다." 동수의 눈이 반짝였다.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나중에 알려주겠다." 동수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존경과 의심이 섞인 눈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동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참 신기한 분이십니다." "어떤 점이." "몸은 약하신데, 마음은 강하십니다. 아까 그 하인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습니다." "떨렸다." "…예?" "손끝이 떨렸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동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동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도련님." "말해라." "제가 도련님을 형님이라 부르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동수의 얼굴에는 결심이 있었다.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말인 듯했다. "주인과 종의 관계를 버리자는 것이냐." "이제 종이라 할 재산도 없지 않습니까." 동수가 웃었다. 이번엔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이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는, 진짜 웃음이었다. "게다가 도련님과 저는 나이 차가 크지 않습니다. 형제처럼 지내면 어떻습니까." "저는 형님과 함께 향시를 보고, 함께 도일서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도일서원. 이 아이가 그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너도 그곳을 아느냐." "성현의 유산이 남은 곳이라 하지 않습니까. 문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입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글을 배웠습니다. 비록 종의 신분이었지만, 어르신께서 저에게도 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동수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있었다. "돌아가신 어르신께서 그러셨느냐." "예. 어르신은 저를 종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해주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안의 어른,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 남긴 것이 이 아이 안에 있었다. "좋다. 형이라 불러라." "예, 형님!" 동수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처음으로 이 낡은 집 안에 웃음소리가 울렸다. 작은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동수가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나는 방에 홀로 앉아 그 소리를 들었다. 낯설고도 따뜻한 소리였다. --- 그 밤, 나는 다시 옥패를 꺼내 보았다. 품 안에서 옥패를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반쪽뿐인 문양이 등불 아래서 흐릿하게 빛났다. 문양의 나머지 반쪽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을 가진 자는 누구일까. 전생에서는 혼자 서고를 지켰다. 수많은 책과 함께, 그러나 사람 하나 없이. 이번에는 곁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하나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그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밖에서 동수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작고 규칙적인 소리였다. 나는 옥패를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서늘하고 맑은 빛이었다. 이 밤이 지나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마을에 방(榜)이 붙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수가 먼저 그 소식을 듣고 뛰어왔다. "형님! 방이 붙었습니다!" "무슨 방이냐." "향시입니다! 향시의 날짜가 정해졌다는 방입니다!" 숨을 헐떡이며 말하는 동수의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향시. 그 단어가 마음 한켠을 두드렸다. 전생에서는 이미 관직에 올라 백성을 다스렸다. 이번에는 그 첫걸음도 떼지 못한 처지였다. "가보자." 우리는 함께 방이 붙은 곳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미 여럿 모여 있었다. 방을 읽는 사람, 그 옆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방에는 향시의 날짜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그 방 아래, 이미 등록한 이름들의 목록도 함께 붙어 있었다. 동수가 목록을 훑어 내려갔다. "형님, 이 고을에서 향시에 응시하려는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나는 그 목록으로 시선을 옮겼다. 첫 줄에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진태욱. 글자를 다시 읽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번에는 서로 다른 이유의 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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