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함선이 흔들렸다. 대기권 진입이다.
케이스 안에서 몸이 튕겨나갈 것 같았다. 무릎이 케이스 벽에 부딪히고, 팔꿈치가 반대편 벽을 찍었다. 좁은 틈 안에서 몸을 웅크릴 수 있는 만큼 웅크렸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덜컹.
한 번.
덜컹.
두 번.
덜컹.
세 번.
이러다 케이스가 열려서 발각되는 게 아니라 뼈가 부러져서 발각되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숨죽인 채로 이를 악물었다. 소리를 내면 끝이다. 여기까지 와서 들키면 그건 진짜 웃음거리다.
마침내 진동이 멈췄다.
[착륙 완료 - 청람성 궤도 하부 캠프]
단말기 알림에 안심이 됐다.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등이 케이스 벽에 툭 기댔다. 나는 숨을 몰아쉬다가, 이 상황에서도 안도할 여유가 있다는 게 스스로 어이없어서 짧게 웃었다.
케이스 틈으로 바깥을 살폈다.
격납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형들, 그리고 낯익은 두 얼굴.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얼굴들인지.
"어이구, 이게 청람성이란 말이지."
고연승이 지팡이 짚듯 총을 짚으며 걸어나왔다. 한때 진화 12단계였다던, 지금은 7단계까지 퇴화한 몸이지만 눈빛만은 젊었을 적 그대로라고 다들 말한다. 걸음걸이는 느려도 시선만큼은 캠프 전체를 한눈에 훑는 게 여전했다.
"고 대장님, 아직도 그 지팡이질이세요."
최지훈이 웃으며 장비를 하나씩 점검했다. 정비공다운 손놀림이었다. 렌치를 돌리는 손목의 각도, 부품 하나를 살피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군더더기 없었다.
"이게 편해. 늙으면 다들 이렇게 다니는 거야."
"그건 대장님만 그런 거고요."
"어허."
고연승이 짧게 눈을 흘겼지만 입가는 웃고 있었다. 저 두 사람 사이의 저 실랑이는 몇 년째 변한 게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형들이 캠프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기범아, 저쪽 좀 잡아줘."
기웅이 텐트 폴대를 던졌다. 기범이 무심하게 받아 꽂았다. 한 방에 땅속 깊이 박혔다.
"손 힘 좀 조절해. 폴대 부러지겠다."
"조절한 거야."
짧은 대답. 늘 그런 식이다. 기범은 원래 말이 적었고, 그 적은 말수 안에서도 늘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뱉었다. 기웅은 그런 기범 옆에서 혼자 투덜거리는 역할을 도맡았다.
"저번에도 텐트 폴대 세 개나 부러뜨렸잖아."
"그건 지반이 안 좋아서 그런 거고."
"매번 지반 탓이지."
나는 케이스 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형들이 저렇게 웃는 걸 보는 게 얼마 만인지. 함선 안에서는 다들 표정이 딱딱했다. 임무, 경계, 긴장. 그런 단어들로 가득한 얼굴들이었는데, 여기 내려오니 조금은 사람 같아 보였다.
청람성의 공기는 옅은 초록빛이 섞인 대기였다. 하늘도 초록빛에 가까웠다.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거대한 나무들이 솟아 있었다. 나무 둥치 하나가 웬만한 건물 기둥만큼 두꺼웠고, 그 위로 뻗은 가지들은 서로 얽혀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낯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습하고, 조금은 비릿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달큰한 냄새. 지구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향이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가, 캠프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다들 흩어진 틈에 케이스를 밀고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랜 시간 접혀 있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무릎을 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발끝에 감각이 없었고, 몇 걸음 걷는 것도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텐트 뒤편 수풀로 몸을 숨겼다. 슈트의 은신 모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다시 확인했다.
[은신 모드 - 정상 작동 중]
다행이었다. 이거 하나 믿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
"신호가 이상한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배민, 연구용 태블릿을 들고 캠프 중앙에 서 있었다.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이 평소보다 느렸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요."
할아버지가 다가갔다.
"지표 아래 생체 신호가 잡혀요. 그런데 패턴이... 우리가 알던 어떤 생물군과도 안 맞아요."
"오류 아니오?"
"세 번 재측정했어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세 번 다 같은 결과였어요."
캠프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텐트를 세우던 기웅도 손을 멈췄고, 최지훈도 렌치를 든 채 고개를 돌렸다.
"뭐, 새로운 행성이니 새로운 생물이 있는 게 당연하지."
할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태블릿을 쥔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당연하다고 넘길 패턴이 아니에요. 이건 무리 지어 있어요. 규칙적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임에 방향성이 있어요. 마치..."
할머니가 말을 끝내지 못했다.
나는 수풀 속에서 그 대화를 다 들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어제 함선 안에서 봤던 그 이상한 신호. 지금 할머니가 말하는 신호와 같은 종류일까. 그때도 분명 비슷한 패턴이었다. 규칙적이고, 어딘가 의도가 느껴지는 움직임.
확인해보고 싶었다. 손목 단말기의 해독 모듈을 켰다.
[대기 중 - 외부 통신망 접속 필요]
캠프 통신 중계기에 연결하지 않으면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좀 더 가까이 가야 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고 캠프 외곽으로 이동했다. 텐트 뒤로 붙어서 중계기 근처까지 접근했다. 발밑에 낙엽처럼 깔린 이파리들이 밟힐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야."
기범의 목소리였다. 등 뒤에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발소리가 다가온다.
한 걸음.
두 걸음.
숨을 참았다. 슈트 은신 모드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근육 하나도 움직이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기범이 내가 숨은 수풀 바로 옆을 지나쳤다.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발걸음 소리가 바로 옆에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네."
그가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뱉었다.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몸이 조금 앞으로 기울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손목 단말기가 그 순간, 짧게 진동했다.
[외부 신호 포착 - 발신 지점: 행성 지하 약 4km]
그리고 화면 아래, 작은 숫자 하나가 떠올랐다.
생체 반응 개체 수. 1,247.
순간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1,247개의 생체 신호가, 우리가 캠프를 세운 바로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내가 보는 앞에서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