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쇠붙이 냄새가 코끝에 배어들었다.
나는 숫돌 위에 검을 올려놓고 천천히 손목을 움직였다. 스륵, 스륵. 규칙적인 마찰음이 훈련장 구석을 채웠다. 새벽 공기 속에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가 흩어졌다. 청류성의 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3년이 지났는데도 이곳의 겨울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숫돌의 거친 결이 익숙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 감촉조차 낯설어서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곤 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 나는 검날을 들어 햇빛에 비춰보았다. 날 끝에 이가 빠진 곳은 없는지, 기름칠이 골고루 되었는지 확인하는 손짓이 자연스러웠다.
검날에 비친 내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열여섯 살의 얼굴이었다. 열세 살 때보다 턱이 각지고 눈매가 깊어졌다. 그때는 마르고 여린 소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근육이 붙은 어깨, 굳은살이 두껍게 박인 손. 매일 새벽 훈련장을 청소하고, 관리인의 잔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홀로 검을 휘두르며 보낸 3년이었다. 나는 손질을 마친 검을 검집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인식이 사흘 뒤였다.
나는 그 사실을 되뇌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사흘 뒤면 청류성을 떠나 다시 본가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3년 전 나를 이곳으로 밀어낸 그 사람과 다시 마주해야 한다.
'현원소 친화력 0.'
그 여섯 글자가 내 인생을 이곳으로 밀어넣었다. 명문가의 자제라면 열세 살에 현원소와의 친화력을 측정받고, 그 등급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나는 그 측정에서 0을 받았다. 역사에 남을 만한 수치였다고, 훈련장 관리인은 몇 번이나 혀를 찼다. 그날 이후 나는 본가에서 쫓겨나듯 청류성으로 보내졌다. 패가자들의 유배지라 불리는 이곳으로.
나는 훈련장 한쪽에 놓인 나무 걸상에 검을 기대어 놓고 마당을 가로질러 걸었다. 우물가에서 손을 씻으려는데,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나는 돌아보았다.
먼 길을 온 듯 흙먼지가 옷자락에 묻은 청년이 서 있었다. 짙은 남색 도포에 금실로 가문의 문양이 수놓여 있었다. 윤씨 세가의 문양이었다. 허리에는 옥으로 장식된 검이 걸려 있었고, 그 검의 손잡이만 봐도 값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은자 오십 냥은 넘을 물건이었다. 신발까지도 흙길을 걸어온 사람의 것치고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윤성민이었다.
3년 만이었다. 그는 더 넓어진 어깨와 더 깊어진 눈매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일곱이 된 그의 얼굴에는 예전의 소년 같은 구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어떤 알아봄의 기색도 없었다.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심장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훈련장 관리인이 어디 있는지 아나?"
그가 물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저쪽 별채에 계십니다."
"저쪽?"
그가 턱짓으로 방향을 확인하며 되물었다.
"안내해라."
명령이었다. 반문할 여지도 주지 않는 말투였다. 나는 검을 허리에 차고 그의 앞을 걸었다. 등 뒤로 그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걸음이 무겁고 자신만만했다. 신발 밑창이 흙바닥을 밟는 소리조차 당당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패가자들 유배지라지."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 여기 오면 명문가에서 버려진 애들만 모여 있다고."
그가 훈련장 담벼락을 흘깃 보며 덧붙였다. 담벼락에는 이끼가 잔뜩 껴 있었고, 갈라진 틈으로 잡초가 자라 있었다. 나는 그 담벼락을 3년 동안 매일 지나쳐 걸었다.
"현원소 친화력 0짜리 자식이 아직도 여기 있다던데."
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자식 지금 뭐 하고 사나 궁금하네. 아직 검이나 붙잡고 있는지."
나는 그 순간 걸음을 멈췄다.
발밑의 흙이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돌멩이 하나, 마른 풀잎 하나까지도.
그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왜 멈춰? 계속 안내해."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3년 전 매일 마주쳤던 사람이 지금 내 뒤에서 나를 조롱하며 걷고 있었다. 나는 그때도 그의 눈에 이런 존재였을까. 이름조차 기억할 가치가 없는, 그저 '현원소 친화력 0짜리 자식'.
별채 앞에 다다랐다. 나는 문을 가리켰다.
"여기입니다."
그는 나를 다시 한번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흙먼지 묻은 내 옷과 굳은살 박인 손을 훑는 시선이었다. 그러더니, 픽 웃었다.
"수고했다."
그가 은전 몇 개를 내 발치에 던졌다.
찰그랑.
동전이 흙바닥에 굴렀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떨렸다. 3년 전에도 그는 이런 식이었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 속으로는 나를 하찮게 여기던 그 태도. 성인식에서 이기고 나면 다시는 이 얼굴을 볼 필요가 없을 거라고,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도 그는 지금처럼 웃고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하며.
나는 동전을 줍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리인과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가 뒤이었다.
"오, 윤씨 세가 도련님이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관리인의 목소리에는 아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발밑에서 동전이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나는 우물가로 돌아와 다시 손을 씻었다. 물이 차가웠다. 손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차가웠지만, 그보다 더 차가운 것이 가슴 속에서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3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그날, 내 인생이 무너진 그날.
대전 한가운데서,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가 나를 밀어냈던 그 순간이 다시 눈앞에 그려졌다. 사흘 뒤, 나는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때와는 다른 얼굴로 그를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