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며칠이 지나 발목의 부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무렵, 산중의 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으나 앞마당의 눈은 조금씩 녹아 검은 흙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도현은 매일같이 발목에 붙인 습포를 갈아주며 서아의 걸음이 나아지는 것을 살폈고, 황서아는 그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발목을 감싸는 동안 낯선 온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애써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곤 했다. 그렇게 평온한 며칠이 흘러가는가 싶던 참에, 오두막 앞마당에 낯선 사내가 나타나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사내는 자신을 곽초라는 사냥꾼이라 소개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는데, 어깨에 짊어진 낡은 자루와 허리춤에 매단 손질된 산짐승 가죽이 제법 그럴듯하여 겉모습만으로는 산에서 흔히 마주치는 여느 포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서도현은 산에서 만난 이를 내치는 법이 없다는 사문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순순히 방 한 칸을 내주었으니, 이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새기듯 배운 도리였다. "산을 오르는 자는 산을 나누어 쓰는 법이지요." 서도현이 담담히 말하자 곽초는 고개를 주억이며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는데,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어딘가 미끈거리는 것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황서아는 곽초의 눈빛이 자신에게 머무는 순간마다 이상하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으니, 그것은 여인의 직감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궁중 예법 속에서 사람을 살펴온 자만이 알아챌 수 있는 위화감이었다. 곽초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가 등에 지고 다니는 낡은 짐 보따리에 잠깐씩,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장사꾼의 눈처럼 머물다 사라지곤 했다. 저녁상을 물릴 때에도 곽초는 넉살 좋게 산 아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도 은근히 두 사람의 근본을 캐물었는데, 서도현은 스스럼없이 답하였으나 황서아는 짧게만 대꾸하며 그 손이 아궁이 불빛 아래에서 유난히 두껍고 거칠다는 것을, 산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손이 아니라 사람을 억누르는 데 익숙한 손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지자 곽초는 잠든 척하던 자세를 풀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는데, 그의 발걸음은 방바닥을 삐걱이는 소리 하나 내지 않을 만큼 익숙하고 노련하였다. 그의 손끝은 황서아의 짐 보따리 속에 숨겨둔 옥패, 천궁문의 문양이 새겨진 그 옥패로 곧게 뻗어갔다. "이것 참, 산골에서 이런 물건이 나올 줄이야."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매달았는데, 그 웃음 속에는 이 여인을 산 아래 도적 두목에게 팔아넘기면 얼마를 받을지 계산하는 냉소적인 속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옥패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무게를 가늠하며 "이만한 옥이라면 최소 은자 백 냥은 받아낼 수 있겠군" 하고 혼잣말을 흘렸으니, 그 목소리에는 사람의 목숨보다 재물의 값어치를 앞세우는 자의 뒤틀린 태연함이 배어 있었다.
그때 잠결에서 인기척을 느낀 서도현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곽초는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어 칼을 뽑아 들며 외쳤다. "방해하지 마라, 애송이. 이건 내 밥벌이다." 쐐액! 그의 칼끝이 횡으로 베어오는데, 마치 낫으로 벼를 베듯 서도현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들었으나, 서도현은 몸을 비틀어 겨우 피하면서도 상대의 힘이 결코 산짐승이나 잡던 손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손목의 회전이 지나치게 매끄러웠고, 칼을 쥔 손아귀의 완력 또한 나무를 베는 도끼질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곽초는 정체를 숨긴 산채의 척후였으며, 이런 오두막을 돌며 값나갈 사람을 찾아 팔아넘기는 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황서아는 벽에 걸린 낡은 활을 무의식적으로 움켜쥐었는데, 그 순간 손끝을 타고 흐르는 낯익은 감각이 온몸을 관통했다. 활을 당기고, 시위를 놓는 그 짧은 순간의 동작이 마치 어린 시절 오라비의 훈육 아래 수천 번 반복했던 것처럼 몸이 저절로 움직였으니, 이는 그녀가 스스로도 잊고 있던 잠재된 궁술이었다. "숨을 고르고, 어깨의 힘을 빼거라." 오래전 오라비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듯 되살아났고, 황서아는 그 기억에 이끌리듯 시위를 힘껏 당겼다. 쐐액! 화살이 어둠을 가르고 날아가 곽초의 어깨를 정확히 꿰뚫자, 그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헉!
그러나 곽초는 그대로 죽지 않고 몸을 일으켜 다시 칼을 치켜들었고, 황서아는 두 번째 화살을 메기며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손끝이 식은땀으로 미끄러웠고, 심장은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듯하였다. "쏘지 않으면 저 사람이 죽어." 그녀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시위를 놓았고, 화살은 마치 매가 먹이를 내려찍듯 곽초의 목젖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쐐액! 곽초는 그대로 무너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으며, 오두막 안에는 순식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황서아는 활을 든 손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처음으로 사람의 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몸속 깊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방금까지 살아 움직이던 자가 눈앞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그녀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서도현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안았으나, 황서아의 눈은 여전히 곽초의 시신에 못 박혀 있었다.
그때, 멀리 숲 어귀에서 낮게 울리는 휘파람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짧고 규칙적인, 신호처럼 들리는 그 소리에 서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곽초 혼자만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 신호가 곧 산채의 남은 무리들에게 이 오두막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두 사람 모두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