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유능한 말단, 신비한 솥을 얻다

2화

짐 정리라는 말이 하루 종일 머리에 붙어 있었다. 아침 회의 시간에 스치듯 들은 그 한마디가, 점심시간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커피를 마셔도, 모니터를 봐도, 자꾸만 그 말만 맴돌았다. '짐 정리 좀 해주시겠어요.' 조장의 말투는 사무적이었고, 그래서 더 이상하게 들렸다. 결국 그날 저녁, 나는 창가 옆 좋은 자리에서 복도 끝 캐비닛 앞자리로 옮겨졌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는 그 자리. 누구도 앉고 싶어 하지 않던 자리였다. 서류 상자 두 개, 그게 6년 흔적의 전부였다. 상자 안에는 오래된 사건 파일 몇 개, 커피 얼룩이 남은 메모지 뭉치, 신입 시절 받았던 표창장이 뒤섞여 있었다. 그걸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삼십 분도 되지 않았다. 6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가벼웠나, 싶었다. "이런 걸로 기죽지 마세요." 이강호가 상자를 옮겨주며 말했다. 말은 다정했지만 눈은 다른 데를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잠깐 조장실 쪽을 향했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저 인간, 뭔가 숨기고 있다.' "고맙긴 한데, 굳이 옮겨줄 필요는 없었는데요." "에이, 그래도 6년 선배님인데." 6년 선배라는 말이 묘하게 비어 있었다. 직급도, 위치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6년.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십 분 일찍 출근했다. 사원증을 태그하는 소리, 철컥. 경비실 앞에서 인사를 건넸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조용한 아침이었다. 1조 회의실. 문이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몇 번 흔들어봤지만 소용없었다. 불투명 유리 너머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분명 사람이 있었다. "회의 있어요?" 내가 지나가는 동료에게 물었다. "아, 조장님 주간 회의요? 방금 끝났는데." 방금 끝났다는 말이 이상하게 늦게 이해됐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한 번 헛돌았다. "저는 통보 못 받았는데요." "메일 안 왔어요? 이상하네." 동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메일함을 열었다. 마우스를 쥔 손끝이 살짝 차가웠다. 1조 회의 초청 메일이 있었다. 제목: [필수] 1조 주간 회의 안내. 발신 시간, 어제 밤 11시 47분. 회의 시작 시간, 오늘 아침 8시. 시간을 계산했다. 발신부터 시작까지, 정확히 8시간 13분. 누가 봐도 확인할 수 없는 시간에 보낸, 확인할 수 없는 통보였다. 내가 그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오늘 오후였다. 회사 시스템이 야간에는 알림을 보내지 않는다는 걸, 이강호는 알고 있었을 거다. 그는 이 팀에서 시스템 관리를 맡고 있었으니까. 손이 떨렸다. '일부러였다.'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나는 이강호의 자리로 걸어갔다. 그는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매운 냄새가 퍼지는 걸 보니 불닭 종류였다. 후루룩, 면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부조장님." 나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원래 내가 받았어야 할 직함이었으니까. 이강호가 젓가락을 멈췄다. 잠깐의 정지, 그리고 다시 웃음. "어, 임 과학원. 왜 그래요?" "회의 메일, 어제 밤에 왔던데요." 이강호는 면을 씹다가 잠깐 멈췄다. 국물이 조금 흘러 책상에 떨어졌다. 그는 그걸 티슈로 닦으며 시간을 벌었다. "아, 그거. 조장님이 급하게 잡으신 회의라." "제가 발표할 자료였잖아요." 내가 지난달부터 준비한 영수 등급 재분류 안건. 밤늦게까지 남아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통계를 다시 돌리고, 발표용 슬라이드까지 만들었던 그 자료. 그게 오늘 회의 핵심 안건이었다는 걸, 나는 회의가 끝난 지금 알았다. "진 조장님이 직접 발표하셨어요." 이강호가 컵라면 국물을 마시며 덧붙였다. "임 과학원 자료 좋았다고 칭찬하시더라고요." 웃음이 나올 뻔했다. 허탈해서. 내가 만든 자료를, 내가 없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 입으로 칭찬받는 상황.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부조장님은 알고 계셨죠." 내가 물었다. "뭘요?" "메일이 늦게 온다는 걸." 이강호가 나를 쳐다봤다. 웃음이 조금 흐려졌다. 컵라면 뚜껑을 만지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멈췄다. "...제가 뭘 알았겠어요." 말끝에 점 세 개가 붙은 듯한 침묵. '거짓말이다.' 직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연구소 규정에는 회의 소집 통보를 최소 24시간 전에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제3장 업무규정 17조. 대학 때 규정집을 통째로 외운 적이 있는 나였다. 그때는 형광펜으로 조항마다 색을 나눠 표시했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일이라고 웃었지만, 지금 그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이번엔 그 조항이 지켜지지 않았다. "규정 위반입니다." 나는 말했다. "업무규정 17조, 회의 소집은 최소 24시간 전 통보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이강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규정, 규정. 임 과학원은 참 규정을 좋아하네." 그는 웃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컵라면 그릇을 휴지통에 넣는 소리, 텅. "조장님한테 직접 얘기해보세요. 저는 잘 몰라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뒷모습이 평소보다 빠르게 멀어졌다. 나는 그를 잡지 않았다. 어차피 답을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조장실. 복도 끝, 문에 붙은 이름표를 봤다. '1조 조장 진월희' 글씨는 깔끔했고, 이름표는 새것처럼 반짝였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차가운 그 목소리. "자료는 잘 받았어요." 전화 통화였다. 나는 문틈으로 살짝 안을 봤다. 진월희가 등을 돌린 채 통화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는 흔들림 없이 곧았다. "임서준 씨 자료요." 내 이름이 그녀 입에서 나왔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쓸모는 있는데... 처리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처리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갈렸다. "삼촌은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삼촌. 그 단어가 머릿속에 박혔다. 누구의 삼촌인지, 왜 이 통화에 삼촌이 등장하는지, 생각이 갈래를 뻗어나가기 전에. 그 순간, 등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또각또각.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다른 진월희가 서 있었다. 아니, 같은 진월희였다. 방금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온 것이었다. 전화는 끊긴 채였다.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이 아직 밝았다. "뭐 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그 눈빛이 나를 그대로 관통했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완벽하게 평평한 시선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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