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훈련이 시작된 지 두 달째, 이강은 마을 어귀까지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기운을 되찾았다.
처음 열흘은 방 안에서 벽을 짚고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웠다.
'허, 이 몸뚱이는 어찌 이리도 부실하단 말인가.'
서른 해 넘게 산 넋이라 한들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이강의 몸은 고작 여덟 살 남짓한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근골이 여물지 않았으니 아무리 속에 산이 들어있어도 겉껍질은 여전히 종이짝처럼 얇았다.
박도철은 매일 아침 이강을 마당으로 끌어내 나무막대를 휘두르게 했다.
"팔이 후들거려요, 아저씨..."
이강은 진짜로 후들거리는 척, 팔을 늘어뜨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사실은 하품이 나올 지경이거늘.'
속으로는 하품을 씹어삼키며 겉으로는 죽어가는 시늉을 했다. 그런 나날이 쌓이고 쌓여 두 달, 마당 몇 바퀴를 도는 것도 헐떡거리던 몸이 이제는 마을 어귀까지 걸어 나갈 만큼은 되었다.
변경 마을은 작았다. 낡은 잡화점 하나, 대장간 하나, 그리고 흙먼지 날리는 좁은 골목길이 전부였다. 지붕들은 하나같이 낮고 기울었으며, 그 틈으로 빨래가 걸려 바람에 흔들렸다. 어디선가 닭이 우는 소리가 났고, 대장간에서는 쇠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작다. 하지만 작다고 하여 볼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
이강은 걸음을 옮기며 눈을 굴렸다. 겉으로는 그저 신기한 것을 두리번거리는 아이의 눈이었으나, 속으로는 마을의 지형과 사람들의 왕래를 하나하나 새기고 있었다.
'저 골목은 대장간 뒷길로 이어지는군. 저기 저 우물은 마을 중심에 있으니 사람이 몰릴 것이고.'
잡화점 앞을 지날 때, 노인이 먼저 이강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이, 꼬맹이. 이리 와보아라."
잡화점 노인은 이강을 볼 때마다 삶은 감자 하나씩 손에 쥐여주곤 했다.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감자였다. 껍질이 살짝 갈라진 자리로 하얀 속살이 비쳤다.
"박도철 그 양반이 애를 데려왔다더니, 진짜였네."
노인의 이름은 여씨였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박도철과 말을 트고 지내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 저 감자 진짜 좋아해요."
이강은 순진하게 웃으며 감자를 받았다. 두 손으로 감자를 받쳐 들고,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만졌다.
'이 노인, 마을 소식을 다 꿰고 있는 자로군. 나쁘지 않은 인맥이다.'
속으로는 이미 여씨를 정보원으로 점찍고 있었다. 잡화점이란 곳이 원래 그러하지 않던가. 오가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며 이런저런 말을 흘리고, 그 말들이 노인의 귓가에 차곡차곡 쌓이는 법이다.
"그래. 도철이가 애를 잘 돌보는지 모르겠구나."
"엄청 잘해주세요!"
이강은 대답하며 슬쩍 마을 분위기를 살폈다. 여씨가 다른 손님을 상대하는 틈을 타, 감자를 한 입 베어 물며 눈으로는 계속 골목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나저나 이 감자는 확실히 맛이 좋구나. 전생에 먹었던 그 어느 산해진미보다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이강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산해진미와 삶은 감자를 견주는 자신의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골목 끝, 낡은 창고 앞에 몇몇 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마을에서 소문난 불량한 무리였다. 셋이었다. 하나는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땅바닥에 침을 뱉고 있었으며, 흉이 있는 소년이 가운데 서서 무리를 이끌고 있는 듯했다.
"어이, 저 꼬맹이 좀 봐라."
무리 중 하나가 이강을 향해 턱을 들었다. 얼굴에 흉이 있는 소년이었다. 눈썹 위로 길게 남은 흉터가 웃을 때마다 씰룩거렸다.
"박도철네 애새끼 아니냐."
다른 하나가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팔 없는 그 늙은이가 주워왔다며. 그 감자 내놔봐."
이강은 감자를 손에 꽉 쥐었다. 겉으로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살짝 떨었다.
"이, 이거 제 거예요..."
'허, 이런 잔챙이들이 텃세를 부리는군. 딱 좋은 시험 상대다.'
속으로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런 자들의 협박이라니, 마인들의 살기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몸이거늘. 그러나 지금은 어린아이의 몸을 빌린 처지, 힘을 재는 것도 한 번쯤은 필요한 일이었다.
'이참에 이 몸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시험이나 해볼까.'
흉진 소년이 손을 뻗어 감자를 낚아채려 했다.
이강은 그 손목을 살짝 비틀며 몸을 틀었다.
"...!"
흉진 소년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흙바닥에 코를 박듯 쓰러졌다.
퍽!
흙먼지가 자그맣게 튀어 올랐다.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뭐, 뭐야 이거?"
넘어진 소년이 당황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며 이강을 노려보았다.
이강은 얼른 겁먹은 표정을 다시 만들었다.
"저,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일부러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실제로는 손목 하나 비트는 것도 힘을 절제해가며 계산한 결과였다.
'조금만 더 세게 했으면 뼈가 나갔을 것을. 잘 참았다, 이강아.'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힘의 크기를 정확히 재고, 상대가 넘어질 정도로만, 딱 그 정도로만 쓰는 것.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서른 해 넘게 묵은 감각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세밀한 조율이 가능하겠는가.
곁에 있던 다른 두 소년의 눈빛이 흔들렸다. 벽에 기대 있던 소년이 몸을 세우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흉진 소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새끼가...!"
소년의 손이 뒤춤에서 낡은 단검을 뽑아들었다. 칼날이 오후의 흐린 볕을 받아 희미하게 번뜩였다.
순간 골목의 공기가 확 얼어붙었다.
'단검이라. 이건 좀 과하구나.'
이강의 눈빛이 아주 짧게 서늘해졌다가, 다시 겁먹은 아이의 눈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 이강은 이미 소년의 팔놀림, 칼끝의 방향, 자신이 취해야 할 회피 동작까지 모두 계산을 마쳤다.
'베이는 시늉을 해줄까, 아니면 저놈의 팔을 부러뜨려버릴까.'
두 가지 선택지가 머릿속을 스쳤다. 어느 쪽이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저, 저기요..."
이강은 뒷걸음질치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감자를 여전히 손에 꽉 쥔 채였다.
소년이 칼을 든 채 다가오는 순간, 뒤에서 커다란 손이 소년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콱!
"뭣들 하는 짓이냐."
박도철이었다.
소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바, 박도철 어르신...!"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흉진 소년은 단검을 쥔 손이 힘없이 풀려 그대로 떨어질 뻔했다.
박도철은 소년의 손에서 단검을 가볍게 빼앗아 들고, 무심한 눈으로 나머지 소년들을 훑었다. 그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이 자리에서 무엇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무게감만이 배어 있었다.
"다시 이 아이 건드리면."
말을 끝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소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망치는 그들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다.
박도철은 단검을 잡화점 노인에게 던져주며 짧게 말했다.
"돌려줘."
여씨는 얼떨결에 단검을 받아 들고는,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이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박도철은 이강을 향해 몸을 돌렸다.
"괜찮으냐?"
"네! 아저씨가 구해주셔서요!"
이강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감자를 든 손을 흔들어 보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조금 전 자신의 손목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저 아저씨가 봤을까.'
박도철의 눈은 무심해 보였다. 그러나 이강은 알고 있었다. 저 사내가 그저 무심한 얼굴로 흘려보내는 것들 중, 정말로 흘려보내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마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박도철은 아무 말 없이 이강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앞장서 걸었다. 그 손길은 투박했으나, 이상하게도 따스했다. 팔 하나 없는 사내의 손이 이강의 머리 위에서 잠시 머물다 떨어졌다.
이강은 그 뒷모습을 따라 걸으며, 감자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이 아저씨, 겉으로는 무뚝뚝한데 속은 물먹은 솜처럼 여릴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여씨는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에 쥔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방금 본 것을 곱씹었다. 흉진 소년이 넘어지던 그 순간, 이강의 손목이 움직이던 그 각도, 그 힘의 조절. 어린아이의 몸짓이라기엔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이강이 저 녀석, 손목 비트는 게 보통이 아니던데."
혼잣말이었지만, 그 말은 며칠 뒤 마을을 떠도는 소문의 씨앗이 되었다.
여씨는 그날 밤, 잡화점을 정리하며 옆집 아낙에게 지나가듯 한마디를 흘렸다. 아낙은 그 말을 대장간 주인에게 옮겼고, 대장간 주인은 다시 저잣거리를 오가는 행상에게 그 말을 옮겼다.
그리고 그 소문은, 생각보다 빨리 마을 밖으로 흘러나갔다.
행상의 수레가 다음 마을로 넘어가던 그 순간, 소문은 이미 변경 마을의 담벼락을 넘어서고 있었다.